치트완 정글로 가는 길은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는 어여쁜 아가씨들의 뒷모습도 보고~
앳된 엄마와 씩씩한 아들도 만나고~~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네팔 차도 마시고~~~
그러다가....
재난(?^^)은 예고없이 찾아옵니다. 자세히 쓰기 좀 뭐한 사정으로 치트완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직행했지요. 첫 인상은 여기서 병 얻어가겠다 싶을만큼 지저분하더군요.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그것도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외국의 병원에서 영어로 증세를 설명하는 것, 참 난감한 일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증상 말이죠.
"설사는 그쳤는데 계속 배가 부글거려요. 머리가 아픈 건 아닌데 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요..." ^^;
시골 병원인데도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영어를 꽤 잘하는 편입니다. 가령 동해의 동네병원같은 곳이면 외국인이 갑자기 들이닥쳤을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3층짜리 건물로 병상 22개가 있는 이 병원엔 간호사는 12명이 근무하지만 전속의사는 없습니다. 의사 1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3개 병원을 순회하면서 환자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시골 병원에 좀처럼 올 일 없는 외국인이 왔다는 소문이 퍼진 모양인지, 다른 입원실의 환자들, 병원의 모든 스탭, 심지어 엑스레이 기사까지 3층의 병실로 올라와서 구경하고 갔습니다.^^
병원의 따뜻한 환대를 뒤로 하고 다시 길에 올랐습니다. 밤중에 작은 강을 건너 정글 가운데 있는 섬의 리조트로 가야 합니다. 비는 오고 앞은 안보이는데 작은 카누를 타고 가야 한다더군요. 약간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안내인에게 물어봤습니다. "악어는 없죠?"
역시 제 말투와 비슷한 어조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돌아온 대답.
"있어요"
.....괜히 물어봤습니다. ^^;
길고 좁은 카누엔
잔뜩 쫄아서 탔는데 막상 타고보니 비가 내리는 밤의 물안개가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물안개 찍겠다고 잊고 있던 카메라를 꺼내 사방을 찍어댔는데 그냥 노를 젓는 뱃사공 아저씨만 잡혔군요. ^^;
배를 타고 밤에 비내리는 강을 건너가자니 마치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 길이 이렇게 아름답기만 하다면!
섬 안의 방갈로는 모터를 돌려 전기를 쓰기 때문에 밤 9시가 되면 모든 불이 꺼지고 석유램프를 써야 합니다. 화장실 천장엔 도마뱀이 기어다니고, 정글 속이라 온통 눅눅하지만 그런대로 낭만적인 맛이 있습니다.
다음날 새벽엔 2시간 코스의 가벼운 정글 트레킹을 나가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는 코뿔소도 보고 호랑이 발자국도 봤습니다. 우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탓에 거머리에게 헌혈도 하구요. 거머리가 옷속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제 티셔츠가 피로 빨갛게 물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지르는 다른 사람들 덕택에 흡혈중인 거머리를 현장 체포했습니다. 식사중인 거머리를 잡아 뜯으면 잘 떨어지지도 않고, 지혈도 잘 안되더군요. ^^; 그 뒤로도 거머리에게 두번 더 물렸는데 악~ 소리지르는 대신 원숭이가 이 잡는듯 태연한 자세로 그냥 뜯어냈습니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그저 놀라울 따름! ^^
정글 산책을 마치고 다시 강을 건넜습니다.
코끼리를 모는 사람은 양 발과 쇠갈코리를 이용해 코끼리에게 방향과 행동을 지시합니다. 두 발로 코끼리 귀 뒤를 밀어 방향을 지시하는데 코끼리 귀 뒤가 닳고 닳아 하얗게 벗겨질 정도였어요. 갈코리로 코끼리 머리를 툭툭 치면서 방향 지시하는 것도 좀 보기에 안좋고...
네팔이나 인도에서 떠받드는 신 중 가네시 신은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데, 신의 형상을 한 코끼리를 학대하는 게 좀 이상해 보였어요.
코끼리는 정글 속의 무성한 풀들을 코로 잡아채어 계속 먹으며 길을 갑니다. 작은 폭포처럼 콸콸 흐르는 오줌과 짚처럼 생긴 똥을 푹푹 싸면서 말이죠. ^^
도중에 코뿔소도 다시 만났습니다. 숲속의 코끼리와 코뿔소는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코끼리는 풀을 뜯어먹고, 코뿔소는 웅덩이에서 잠깐 뒹굴다가 또 별일 아니라는듯 각자 제갈길을 갑니다.
블로깅을 하는 지금도 코끼리 등에 타서 그 눈높이에서 바라본 깊은 숲의 이미지가 생각납니다. 코끼리와 코뿔소의 젖은 피부, 비가 내리는 숲속을 젖은 채로 돌아다닐 짐승들...
코뿔소가 비오는 숲에서 물을 먹다가 말없이 돌아서 깊은 숲속으로 사라질 때 쿵,쿵,쿵 하던 묵직한 발소리가 귓전에 에코처럼 맴돕니다. 홀로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는 어떤 존재의 위엄같은 걸 목격한 듯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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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2007/10/15 06:28
고생하셨네요.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도 정말 멋진 여행하셨네요. 저는 지금 미국에 와 있는데, 제가 하는 여행보다는 boundarycrosser님이 하신 여행이 진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여행에서의 추억거리 가끔씩 나누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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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 2007/10/15 18:00
뭘요. 하프타임용 여행으론 김호님이 '지대루' 하고 계시는 것같은 걸요~ 전 이렇게 시간을 쓸 때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맨날 다음번엔 어딜갈까 하는 계획만 짜고 있습니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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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lue 2007/10/15 11:19
아 저는 신혼여행때 태국에서 반나절 코끼리 트래킹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섭지 않던가요? 전 코끼리가 너무 흔들어대서 떨어질까봐 무섭던데..
네팔이란 곳이 추운곳인줄 알았는데, 정글이 있는걸 보면 잘못 알았나 봅니다. ㅎㅎ -
UFO 2007/10/15 20:13
두번째 거머리를 태연이 떼내다니.....
지금 시기가 거머리 천국이란 말은 들었지만...
도마뱀은 차라리 귀엽기나 하지..
거머리는 그래도 무서웠을텐데..
우욱~~예전의 수산나님이 아니여~~ -
엘윙 2007/10/15 20:45
와..정말 멋지네요.
눅눅한 것을 즐기시다니!! 저같으면 막 짜증이 났을거에요. 사실 생각만하는데도 엄두가 안나네요. 푸하하.
여행가서 많은 것을 얻어오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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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 2007/10/16 23:31
앗, 홍선배! 안녕하시죠? 인사도 제대로 못드리고 휙 사라져 버려서 죄송했는데...이렇게 노는 걸 들켜버렸네~ ^^; 디저트야 뭐 홍선배 파워로 여전히 최고의 학습조직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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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 2007/10/17 04:20
아.. 정말 사람의 적응력이란...
거머리를 떼어내는 산나님을
상상해봐요.. 후덜덜덜;;
그리고.. 생각할수록 재미있네요...
코끼리의 눈높이로 보는 풍경... 새로운 느낌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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