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16 20:34

글쓰기 생각쓰기

'글쓰기 생각쓰기'. 이 밋밋한 제목은 이 책에 어울리지 않는다.
제목은 마치 논술대비용 참고서 같다. 이 책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기초 기술, 단어와 문장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할 거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은 ‘글쓰기’보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다뤘다. 원제도 ‘On Writing Well’이다.

그냥 무난히 쓰는 것 말고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이 계속 던지는 질문이다. 저자가 중요하게 삼는 기준은 ‘어떻게 남들만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남과 다르게 쓸 것인가’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잘 쓴 글’이란 꼭 ‘나’를 주어로 삼지 않더라도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다. 이를 위한 글쓰기의 원칙, 태도와 함께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비평 유머 등 각각의 형식에 맞는 글 잘 쓰기의 요령을 소개하고 있다. 번역서라서 예문의 느낌이 둔하다는 단점이 있긴 해도 저자의 조언은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창작이 아닌 논픽션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두 개의 키워드는 명료함과 온기였다. 명료함이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온기란 글에 글쓴이, 곧 나의 체온을 담는 것이다.


명료함에 대해 저자는 “글쓰기 실력은 필요 없는 것을 얼마나 많이 걷어낼 수 있느냐에 비례한다”고 단언한다. 내 주변에도 형용사와 부사 없이 명사와 동사만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문장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상투적 수식 없이 그런 방식으로 글을 ‘잘’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조금만 써보면 안다. 명료한 문장을 쓰기가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지를 역설하며 저자도 이렇게 말한다.

"명료한 문장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심지어는 세 번째까지도 적절한 문장이 나오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절망의 순간에 이 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온기란 글에 얼마나 사람이 실려 있느냐의 문제다. 글쓴이의 개성 뿐 아니라 장소와 사물을 다룰 때에도 인간미가 실려야 좋은 글이다.

저자는 “좋은 글쓴이는 글 바로 뒤에서 자신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글에서 ‘나’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를 생각하면서 쓰거나, 초고를 일인칭으로 쓴 뒤 ‘나’를 빼면 비인간적인 문체에 온기가 돌 것이라고 권고한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이유는 되도록 불리한 처지에 빠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쓰며, 쓸 때도 자기 자신을 팔아야" 한다.


저자가 권하는 명료함과 온기는 별개의 과제가 아닐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물어야 한다. 알고 쓰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걸 모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뭘 말하고 싶은지를 알아야, 내 생각과 의도가 분명해야, 명료한 문장을 쓸 수 있다. 또 ‘공기처럼 우리 주위를 떠다니면서 언제나 도움을 주려는 친구처럼 기다리고 있는’ 진부한 문구를 없애버려야 글에 나의 체온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글을 시작하고 끝내는 방법, 인터뷰 기술, 여행기 쓰는 요령 등에 대한 쓸모있는 조언들이 많다. 실용적 조언 중 눈에 띄는 두 가지 팁.

인터뷰 기술을 설명하며 저자는 가급적 녹음기에 의존하지 말고 받아 적을 것을 권한다. 일로 인터뷰를 할 때 수첩에 받아 적는 구닥다리 방식을 고쳐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같아 괜히 반가웠다. 받아 적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마음에 든다. ‘글 쓰는 사람은 자기 소재를 눈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성긴 문체를 피하는 요령으로 자신이 쓴 글을 큰소리로 읽어보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 직접 느껴보라고 권한다. 그래야 글의 리듬이 느껴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가진 연장은 단어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을 독창적이고 조심스레 사용하는 법을 배우자. 그리고 또 하나, 다른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1976년 초판이 나온 이후 영미권에서 30년 동안 여덟 번에 걸쳐 개정을 거듭하며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글쓰기 길잡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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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복 2008/01/16 20:44 address edit & del reply

    '글씨가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라는 말과
    '다른 누군가 듣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는 말이... 또릿하게 와닿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저에게는...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본다는 게 가장 어렵게 느끼지는 것 같아요...

    산나님 말씀대로 내용에 비하면 제목이 너무 논술서적-_-스럽네요... 켈룩...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산나 2008/01/17 13:44 address edit & del

      저도 그게 제일 어려워요. 게다가 10여년간 받은 수업이라곤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글쓰기 밖에 없으니...순전히 제 집인 블로그에서도 그게 쉽지 않더군요.

  2. Favicon of http://realfactory.net BlogIcon 이승환 2008/01/16 23:02 address edit & del reply

    뭔가 클래시컬한 이야기이면서도 거부하기 힘든 이야기네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산나 2008/01/17 13:46 address edit & del

      글쓰기라는 게 클래시컬할 수밖에 없는 종목같아요. 아무리 뭐가 발전해도 글 잘 쓰도록 해주는 도구,프로그램 같은 건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요

  3. hojai 2008/01/18 10:35 address edit & del reply

    10명 가까운 편집장을 거치면서 느낀점은, 제 글쓰기에 '먼가' 문제가 많다는 건데요. 사람 스탈이라 그런지 잘 고쳐지지도 않고,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려워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산나 2008/01/18 23:08 address edit & del

      내 생각엔 hojai글은 '자기 시각'이 또렷해서 좋던데? 퇴고에 조금만 공을 들이면 훨씬 좋아질 거라고 생각함.

  4. 배혜경 2008/01/24 21:47 address edit & del reply

    지금 읽고 있는 책이에요. 다 읽어가네요.
    몸으로 체득해야할 사항들이지만요. 명료하고 유용한 책이더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가려다 몇 자 남깁니다. 알라딘 리뷰 당선도 축하드리구요^^
    전 알라딘에 둥지를 틀고 있어요.
    '처녀자리의 책방'입니다. 반갑습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산나 2008/01/24 22:03 address edit & del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처녀자리 책방' 검색해서 가보니 제가 이미 rss 구독중인 서재이더군요.^^ 저도 혜경님 서재에서 좋은 글 잘 보고 있답니다.

  5. Favicon of http://sophiako.tistory.com/ BlogIcon 초하(初夏) 2008/02/19 00:36 address edit & del reply

    꼭 찾아보고 싶은 책이네요.
    블로그와 글쓰기 능력에 관한 글을 올렸기에 검색해 들왔다가 잘 보았습니다.
    관련 글도 엮어놓습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산나 2008/02/19 10:37 address edit & del

      글쓰기에 관심있는 분께 유용한 책입니다. 초하님 블로그 초기화면이 멋지군요.^^

  6. Favicon of http://sophiako.tistory.com/ BlogIcon 초하(初夏) 2008/02/20 02:58 address edit & del reply

    글 엮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 신나님, 초기화면에 대한 말씀 감사합니다. ^^ 자주 놀러와 쉬어가시길 기대합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산나 2008/02/27 16:38 address edit & del

      네~그럴께요 ^^

  7. Favicon of http://futureshaper.tistory.com BlogIcon 쉐아르 2008/02/20 05:24 address edit & del reply

    한RSS에 산나님 블로그가 추천되어 있기에 들어와 봤습니다. 그리고 하나 하나 너무나 좋은 글에 취해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요즘 글쓰기에 관심이 많이 생겨 이 포스팅에 댓글을 남깁니다.

    '글쓰기가 힘들다'라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또한 가져야할 자세라는 생각도 듭니다. 쉽게 뱉어내는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겠지요. 제 블로그에 올리는 글에 대해 더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자극 받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산나 2008/02/27 16:39 address edit & del

      아, 쉐아르님 블로그에 저도 종종 들어가 '눈팅'만 하고 오곤 했답니다.^^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