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블로그에서 보고 따라쟁이 컨셉으로 퍼온 공연 동영상.
멕시코 작곡가 아르뚜로 마르께스의 ‘단쏜 2번’. 요즘 내가 열공 중인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지난해 말 한국에 와서 유명세를 탄 그 ‘엘 시스테마’의 가장 큰 오케스트라다. 지휘자는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인 구스타보 두다멜.
며칠 전 이들을 다룬 DVD를 본 뒤 계속 콧노래로 흥얼거리던 곡이었는데 오늘 무심코 들른 후배 블로그에서 또 만나다니, 이건 무슨 계시인가, 하는 엉터리 생각도 해본다. 심지어 오늘 본 영화 ‘업’에서도 비행기 티켓에 선명히 찍혀 있던 ‘베네수엘라’ 글자가 유독 눈에 띄더라는…. -.-;; (옆길로 새면 ‘업’은 하도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초반 30분가량을 지나고 난 뒤부터는 별 감흥이 없고 그저 그랬다. 픽사 스튜디오가 다른 주옥같은 영화들에서 보여준 스토리텔링 능력을 생각하면 이건 그냥 범작이다.)
이 동영상에서도 DVD에서 본 얼굴들이 눈에 띄어 혼자 반가웠다. 가령 동영상의 1분30초 어름에 화면에 잡힌 바이올리니스트는 23살 난 조안나 시에르랄타다. (이름이 Jhoanna 인데 스페인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몰라서 일단 조안나로…) 그녀는 금으로 된 목걸이 같은 걸 하고 나갔다간 곧장 빼앗기고 만다는 우범지역에 산다. 집 맞은 편 산등성이의 판자촌을 가리키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의 아이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거나 오케스트라의 보호를 받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런가하면 5분46초 어름에 잠깐 솔로 연주자로 등장하는 플루티스트는 카트리나 리바스.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개인 악기를 살 돈이 없어 오케스트라가 대여해주는 악기로 연주를 배웠고, 총을 든 괴한들이 출몰하는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오가며 “위험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면서” 아슬아슬하게 산다.
그런 이들이 “음악은 내 삶이고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할 때, 그 울림은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악기를 갖고 개인지도를 받으며 성장한 음악가들의 열정과는 사뭇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조안나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바이올린 연주 뿐 아니라 사람을 빈부, 피부색, 나이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도 했다.
음악이 어떻게 이들을 바꾸고 성장시킬 수 있었을까. 음악은 본디 위대하다는 흔한 설명은 나 같은 문외한에겐 별 설득력이 없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 한두사람이 아니라 특별히 음악적으로 두드러질 것도 없던 카리브해의 한 나라에서 30년간 무수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었던 음악의 힘, 그게 도대체 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했을까. 요즘 내가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들이다.
DVD에서 이 '단쏜 2번'이 흘러나올 때 화면은 카라카스의 허름한 뒷골목을 걸어가는 어린 소녀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돌아다닐법 하지 않은 길거리를 볼품없는 옷차림새로 걸어가던 소녀의 찰랑거리던 검은 머리를 보면서, DVD의 제목인 '음악의 약속'과 가장 잘 어울리는 화면이 아닌가 생각했다. 왠지 저 아이 곁에 음악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단쏜의 처연한 곡조가 보이지 않는 보호막처럼 그 아이를 부드럽게 휘감아 지켜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 묘한 안도감을 주는 장면이었다.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돌아왔습니다 (18) | 2010/02/23 |
|---|---|
| 사라진 떡집 (4) | 2009/09/26 |
| 봉숭아물 (24) | 2009/08/28 |
| 음악의 약속 (14) | 2009/08/02 |
| 뒷담화 (41) | 2009/07/26 |
| 제발 전화를 하란 말이야! (28) | 2009/04/01 |
| 죽었을 때 함께 묻어주세요 (19) | 2009/03/27 |
| 눈보라 (12) | 2008/12/31 |
-
lebeka58 2009/08/03 01:28
심심할 때도, 기분이 울적할 때도 가장 손이 먼저 가면서 찾게 되는게 음악인거 같아요. 특히, 자동차안에서 밀폐된 공간에서의 울림을 전 좋아하지요. 글쎄요, 더 선율에 몰입하게 되서 그러지 않나싶어요,그 순간은 때때로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것에서 잠시나마 눈을 감는 일종의 도피(?) 인 셈이죠.
-
sanna 2009/08/03 10:22
음악과 별로 안 친한 저도 운전할 땐 많이 듣게 되더군요.전 노래방을 싫어하지만 운전하면서 혼자 차 안에서 누리는 나홀로 노래방은 무척 좋아하는 편입니다.^^
-
-
-
-
lebeka58 2009/08/03 13:16
따라쟁이루 올리신 동영상으로 들어 본 '단쏜 2번'첨 들어봤어요.ㅋㅋ~~ 남미 특유의 정서.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즐거움이 있고 , 그 속에 어떤 애잔함이 배어있는 느낌이네요. 사실, 그동안 음악두 일종의 편식(?)을하지 않았나하는 반성을 살알짝 하게 되네요. 문화에 대한 선입견과 편식.
이 모두가 저의 무지에서 비롯됨을 통감하옵니당!!-
sanna 2009/08/03 13:56
저도 무지에서 비롯된 선입견과 편식 때문에 유럽에서 비롯된 클래식에 잘 친해지질 않네요.-.-;
아무래두 전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들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듣다가 나도 몰래 발을 까딱까딱, 어깨를 으쓱으쓱 하며 리듬을 맞추게 되는 라틴음악 쪽 체질인듯.^^
이 오케스트라가 '에로이카' 연주할 때보다 '단쏜' 연주하는 게 훨씬 좋더라구요.
-
-
지아 2009/08/04 14:10
라틴 음악이 끌리신다면 쌀사를 강력히 추천함돠~~~ 쌀사 아주 매력적인 춤이예요. 물론 남자의 리드가 굉장히 중요한 마초 춤이긴 하지만 그래도 설명하기 힘든 온 몸으로 느끼는 행복이라고나 할까 ㅎㅎ 유명하고 인기있는 클래식을 전부 쌀사풍으로 편곡한 앨범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아주 색다르고 좋더라구요. 제게 좋은 음악(장르 불문하고)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이예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베토벤이 더 좋아지는데.. 피아노 소나타 30, 31, 32번 강추임돠. 한번 들어보시와요~~
-
sanna 2009/08/04 21:07
아,내가 말했잖냐.
맛뵈기로 쌀사 쬐끔 해봤는데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라고...
배 불뚝 나오고 나보다 키작은 아자씨랑 파트너 걸렸을 땐 정말 울고 시퍼떠...ㅠ.ㅠ
(그 아자씨도 같은 심정이었을 수도..^^)
그나저나 잘 도착한 거지?
-
-
-
Playing 2009/08/30 12:13
안녕하세요 ^^
정말 감동적인 음악과 영상 잘 봤습니다(카메라 워크가 곡과 너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네요)
힘든 상황속에서 이렇게 멋지게 성장하기까지 도대체 음악은 이들을 그 오랜시간동안 어떻게 변화시킨 걸까요? 하루하루 힘든 삶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거듭 머리속을 잡아끄네요 (마음속에서 울리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살겠습니다 (__))-
sanna 2009/08/31 09:06
생각해보면 덜 혜택받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하는 사례가 많은데,
유독 엘시스테마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같아요.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음 속에 울리는 것들,저도 외면하지 않고 살겠습니다.
-

Prev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