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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셔윈 눌랜드.

 

이 책의 구판을 선물받았을 때는 20대 후반이었다. 삶이 창창했을 뿐 죽음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때였다.

수십 년간 죽음을 지켜본 의사인 저자가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상이 실제와 거리가 멀다고 설명할 때, 두렵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됐다. 평온한 종말은 착각이었다. 모든 생명체가 죽음으로 생의 무대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건 자연의 섭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예컨대 노화로 방광 조절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도 그 섭리의 일부라는 자각엔 몸서리가 쳐졌다.

저자는 최후의 승리는 늘 자연이 거두게 돼 있는 섭리를 억지로 외면하는 인간의 총체적 저항을 불필요한 의지라 불렀다. 끝없이 치료를 시도하는 의료진의 행위가 무의식중에 환자를 학대하는 결과로 끝나고 마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형의 죽음을 겪으면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해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를 말살시켰다고 아프게 털어놓는다.

서늘한 자각으로 남았던 이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나이가 들어 나도 가족의 죽음을 겪어본 뒤다. 나 역시 불필요한 의지가 앞서고 거짓된 희망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경험을 했다.

사람은 대부분 평온이 깃든 임종을 맞지 못한다. 자연은 그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우리에게 길을 뚫어주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들이 죽었기 때문에 우리도 기적적인 생을 받을 수 있었다. “자연의 평형 속에서 이뤄진 한 개인의 죽음은 개인에겐 비극일지 모르나 계속 살아 숨 쉬는 모든 개체의 승리. 저자는 이러한 섭리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찾아야 할 존엄성은 몇십 년간 살아온 삶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나는 이와 비슷한 말을 10여 년 전 혼자 스페인을 여행할 때 만난 낯선 외국인에게 들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존엄하다는 말. 가족의 미학적죽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무거운 자책이 그제야 스르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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