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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리베카 솔닛.

 

대부분 타인이 얽혀 있는 우리 삶의 문제들은 예고 없이 불쑥 일상을 깨뜨린다. 저자의 집에 어느 날 들이닥친살구 더미처럼. 저자의 삶에 끼어든 문제적 타인은 어머니였다. 평생 불화해온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저자는 어머니와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두텁지 않은 부피의 산문이지만 이 안에 짜여 들어간 이야기들을 다 펼쳐 놓으면 대작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시작해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 아이슬란드 여행, 체 게바라와 친구들을 거쳐 다시 어머니와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들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직조의 기술이 놀랍다. 수식어들의 도움 없이도 얼마나 글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전범으로 나는 늘 이 책을 떠올린다.

흔히들 공감이라고 번역하는 감정이입 (empathy)에 대한 과잉 기대와 폄하의 양 극단을 오가던 내가 균형점을 찾은 것도 이 탁월한 에세이 덕분이었다.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만날 때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감정이입이다. ‘공감이라는 단어의 느낌 때문에 감정이입이 오로지 감정의 문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감정이입은 상상하고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저자가 마치 여행지라도 되는 듯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 안에 새기고 이해하는 과정을 풀어 쓴 이 책은 그 자체로 감정이입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타인의 존재를 알아보는 동시에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어에는 시그노미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라는 뜻을 모두 담은 이 단어는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이해를 위해 공감이 필요하고, 공감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공감은 또한 용서임을, 이 모든 과정이 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뤄지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 책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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