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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터닝포인트]<10> 윤학 씨- 변호사에서 공연장 대표 겸 잡지 발행인으로
변호사 일을 접었지만 면허를 반납한 것은 아니니 여전히 변호사인 건 마찬가지다. 그런 그의 인생 전환도 절박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화이트홀 윤학 대표(52)를 만나러 가던 날도 ‘돈이 많은데 뭔들 못하겠나’하는 삐딱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물어보았다. “여전히 변호사인데, 인생을 걸고 방향을 바꾸셨다고 할 순 없지요?”
그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인생을 걸고? 아, 너무 비장하시네! 하하하~, 전 여전히 그대로예요. 예전엔 한 사람만 변호했을 뿐이고, 지금은 문화를 통해 다수를 변호하니 그게 좀 달라진 점이랄까.”
커다랗게 웃느라 금세 실눈이 되는 그의 웃음엔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순수의 세계에 대한 열망”을 강조했다. “고향 뒷산에서 내려다본 바다 수면 위에 부서지던 햇볕”을 묘사하면서 금세 그리운 표정이 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처음에 삐딱했던 마음도 스르르 풀렸다. 열정은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다.
그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공연장 화이트홀, 갤러리 화이트의 대표이자 월간 ‘가톨릭 다이제스트’와 ‘월간 독자’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너무 힘들고 바빠 도저히 병행할 수가 없어” 지난해 여름 변호사 업무를 완전히 정리한 뒤 이 일에 전념하고 있다.
12년 전 그가 인수하기 전, 고작 500부 발행되던 ‘가톨릭 다이제스트’는 지금 정기구독 독자만 6만여 명이다. 종교를 뛰어넘은 교양지를 표방하면서 2007년 창간한 ‘월간 독자’는 매달 3만부 가량 나온다. 아직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손해 보는 짓”이다. 화이트홀, 갤러리 화이트가 들어선 5층짜리 빌딩이 그의 소유라서 임대료로 적자를 메우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도 발행규모를 축소하기는커녕 ‘월간 독자’ 영문판 발행을 궁리 중이다.
“법률문서를 쓸 때는 ‘내가 이것 잘 써서 뭐하나’ 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있었어요. 내가 글을 쓰면 판사 한 명만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훨씬 재미있어요.”
그는 갑자기 일어나면서 “1000만 원짜리 카드 한번 보실래요?” 하더니 한 수녀님이 ‘월간 독자’를 읽고난 소감을 적어 보낸 감사 카드를 들고 와 보여주었다.
“제가 ‘월간 독자’ 만들면서 한 달에 2000만 원 넘게 써서 없애는 형편이지만 이런 카드 한 장 받으면 아, 정말 가슴이 뛰어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도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품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오랜 세월 그에게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외면할 수 없던 가치였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너무 밝은 달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날, 퇴근을 하는데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다 보니 그날따라 달이 유난히 밝더라고요. 하필 그날 새 사건을 수임하면서 받은 수표가 주머니 여기저기에 가득 들어있었어요. 달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내가 지금 뭐하면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사무치는 거예요. 눈물이 핑 돌았어요. 결국 내가 찾는 세계는 돈이나 권력, 명예가 지배하는 이 세계가 아니라는 생각을 그 때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오랫동안 속해 있던 세계에서 그도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전남 신안 흑산도에서 자란 그는 중학교 졸업 후 대도시 명문 고등학교 입시를 쳤다가 떨어졌다. 대학입시에도 떨어져 두 번 재수를 했고 사법시험에는 세 번 연거푸 떨어졌다. 변호사를 할 땐 ‘네가 꼭 필요하다’는 말에 넘어가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실패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후기 모집으로 들어간 고등학교에 다닐 때, 5월 어느 날 교정에 성모성월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때의 기분을 그는 “전 우주가 내게로 달려오는 듯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클래식의 세계, 그때까지 몰랐던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았다.
선거에서 떨어지면서 겪은 공개적인 실패도 그를 키워주었다. 그동안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허무맹랑하게 들렸고, ‘내 길’을 생각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속해있던 세계에서 최상위의 명분은 ‘정의’였지만 그것 역시 나의 잘못은 덮어둔 채 남의 약점만 물고 늘어지는 불공정 게임일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마흔 넘기며 칭찬도 하루아침에 비난으로 변한다는 것도 체득했지요.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평가에 왜 내 인생을 겁니까. 고작 그런 사람이 되자고 정작 나를 잊고 살 수는 없지요. 그래서 나 자신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일에 정성을 기울이고 사람이 서로 진심으로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싶고요.”
임대료 추가 수입이 꽤 나올만한 공간에 공연장과 갤러리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했다. “좋은 글과 음악, 미술만큼 사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많은 사람이 자신의 본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정말로 뜬금없이 물어봤다. “그런데, 돈을 그렇게 다 써버리면 자녀들에겐 뭘 물려주시려고요?”
“돈요? 자기가 직접 벌지 않은 돈은 쥐약이에요. 그걸 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줍니까? 그보다는 좋은 생각을 심어주는 게 더 중요하지요. 나는 아이들에게도 뭐가 됐든 글을 쓰라고 늘 이야기해요. 글을 쓰면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남이 좋다는 것에 휩쓸리지 말고, 다른 사람의 가슴속 언어를 알아듣는 귀를 키우라고 말이죠. 그렇게만 할 줄 알면 자기 꿈은 스스로 실현할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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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테라의 느낌
2009/04/29 10:18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평가에 왜 내 인생을 거는가'' — 그녀, 가로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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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09/04/29 10:44
ㅎㅎ ~ 저도 산나님처럼 '삐딱한 생각'을 잠시 했었죠, 근데 우리 주변을 보면 더 많은 부를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황금의 마이다스손을 갈망하며 끝없는 집착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 진짜 많거든요. 그런면에서 보면 윤학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크죠, 음~ 얼마전부터 저도 '내게 있는 달란트는 뭘까? '하고 고민(?) 중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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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05/02 01:45
'달란트'. 성경의 그 '달란트'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
1달란트 그냥 갖고 있다가 그마저 빼앗긴 종의 이야기를 처음 읽을 땐,
그 주인 참 가혹하다, 생각했었는데,
안젤름 그륀 신부님 해석을 듣고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자기 인생을 파묻은 꼴이 아니냐고 해석하시더군요.
1달란트 마저 잃을까봐 두려워 자기 인생을 파묻어선 안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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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_cake 2009/04/30 00:56
그런데 요즘 쓰시는 글을 보면 탐사/조사 능력이 21세기 초반보다 엄청 늘었어요.. 비결이 뭔가요. 여유? 하여간 글빨로는 editor in chief 떼어 논 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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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ing 2009/05/05 09:25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아직 어린 분(학생)들에게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번의 실패로 모든 걸 잃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저에게도요 ~ _~ -
UFO 2009/05/28 11:36
자신의 신념을..
깜끔한 의지를 행동화했다는데...
놀랍고 경의를 표할만한 분인 듯...
우린 머릿속으로만 정의,가치를 그릴 뿐...
흔적을 못남기는데..
이 분은 만나진 못했지만...글은 거의 읽는데...
그런 부분에서 존경..
[중년의 터닝포인트]<9> 최해숙씨- 디자이너에서 소믈리에로
Before: 인테리어 소재 디자이너
After: 소믈리에
Age at the turning point: 35
나이가 들면 사람은 잘 안변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최해숙 씨(43)는 인생의 행로를 바꾼 뒤 얻은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로 ‘이전과 달라진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을 꼽았다.
안정감 있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인상인데, 그는 예전엔 안 그랬다며 손사래를 쳤다.
“늘 스스로를 끈기가 없고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해왔어요. 내가 강하거나 악착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길을 바꿔보니 내게 강한 면이 있더라구요. 육체적으로 힘든 일처럼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고 상상하던 일을 해냈다는 충족감도 커요.”
그에게 인생 전환은 ‘지금까지 속해있던 상자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두렵고 불안했지만 바깥으로 한 발짝 내딛고, 낯선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지내다 보니 이번엔 달라진 자기 자신이 보이더라고 했다.
LG화학에서 인테리어 소재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35살에 길을 바꿔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소믈리에로 변신했다. 현재 건국대 와인학 석사과정 겸임교수, 와인나라 아카데미 강사로 일하며 소믈리에를 꿈꾸는 사람들을 가르친다.
만약 길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그는 “열의 없이 일을 하면서 ‘이것 말고 다른 세계가 있을 텐데…’ 하며 답답해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똑같이 바빠도 어떤 일은 힘을 소진시키는가 하면, 또 어떤 일은 되레 에너지 공급원이 된다. 그에게 전환 이후의 세계는 후자처럼 보였다.
● 하나의 기회가 새로운 기회를 낳고
대기업에 다니던 10년 전쯤, 그는 늘 ‘내 것’과 ‘창의적인 일’에 목이 말랐다.
전문직이었지만 실제로는 차별화할만한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는 일이 시장, 자재의 트렌드에 제한을 많이 받아 말이 디자이너지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외환위기 때 여자 선배들이 줄줄이 그만두는 것을 보고 ‘내 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도 커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은데 그게 뭔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좀 막막했어요. 그래도 답답하니까 그냥 모호하게 디자인과 관련된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바람이 딴 데서 불어오듯’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2000년, 잡지에서 일하던 아는 이가 요리 코디네이터를 해달라고 부탁해온 것.
“그저 디자이너니까 이것도 잘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부탁했던 모양이에요. 재미있겠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해서 몇 달 독학하며 준비해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내가 찾던 게 바로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요리와 미(美)를 결합하는 일에 매료된 그는 내친 김에 퇴근 이후 이탈리아 요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2001년 회사를 그만둔 뒤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입학했다.
요리를 배우면서 와인의 세계에도 눈을 떴다. 요리 학교를 졸업한 뒤 요리사로 일하면서 소믈리에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요리사로 일하던 소도시 캄피오네 디탈리아는 스위스 안의 이탈리아령. 이탈리아 북부 코모 주의 소믈리에 학교에 가려면 편도 3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다. 그 길을 1년간 1주일에 두 번씩 다니면서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스위스 레스토랑에서 6개월간 소믈리에로 일한 뒤 귀국했다.
결국 요리 코디네이터에 매료돼 요리사가 되었고 지금은 소믈리에로 일한다. 이전에 한 번도 ‘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그의 삶이 된 것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가 새로운 기회를 낳고, 그렇게 우연의 여지를 열어두고 사는 게 재미있잖느냐”고 말했다.
“어떤 일을 하든 저는 3년 단위로 끊어 생각해요. 예를 들면 10년 뒤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질문은 제게 너무 커요. 3년, 그리고 그 안에서 기간을 더 잘게 쪼개어 생각하면 구체적인 목표가 서고, 거기에 도달하고 나면 또 다른 조건이 형성되고 하는 거잖아요. 인생을 미리 어떻게 계획하겠어요. 엄청난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 해보고 후회하자
인생 전환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에게도 마치 계획이나 된 듯 시기가 딱딱 맞았다. 미리 예견하고 준비해서 그리 된 게 아니라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처음에 회사 그만두고 요리 유학 간다니까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하고 많은 일 중 왜 하필 요리를 배우냐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에서 어찌나 걱정들을 하던지…. 우리 엄마만 해도 딸이 요리 공부하러 갔다고는 말씀을 못하시고 디자인 공부하러 유학 갔다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이탈리아에서 1년 반을 지낸 뒤 한국에 잠깐 왔을 땐 그를 대하는 사람들 태도가 달라졌다. 왜 그런가 했더니 ‘대장금’ 영향이라고들 했다. 와인을 배우고 다시 돌아오니 이번엔 웰빙 트렌드를 타고 와인 붐이 불었다.
“시기가 우연히 맞았을 뿐 전략적으로 좇은 건 아니에요. 저는 남들이 많이 하는 일엔 관심이 별로 안 생겨요. 남이 별 관심 없거나 ‘그건 좀 빠르지 않아?’할 때 슬슬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지요.”
독자적인 판단으로 길을 열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도 처음에 고민을 시작할 때는 남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내가 뭘 잘 할 것 같은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친구들 중엔 ‘넌 요리를 잘하니까 그런 건 어때?’했던 사람도 있었고 성격이 외향적이니 사람 대하는 일을 하라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 말을 들을 땐 서로 연결이 잘 안되는 일이라 그냥 한 귀로 흘렸는데, 소믈리에가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요. 어떨 땐 주변 사람들이 더 나를 잘 보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늘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그는 ‘내 것’과 ‘창의적인 일’을 갈망하던 꿈을 이룬 것일까. 그는 절반 이상은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요리와 와인, 여행이 결합되는 지점에서 사업을 해보는 게 그의 목표다. 소믈리에 선생으로 일하는 요즘에도 손이 굳을까봐 계속 집에서 디저트를 만든다.
처음에 "저처럼 저질러도 크게 잘못되지 않더라고 들려주면, 전환을 꿈꾸기만 하고 실행을 못하는 사람들도 기운은 나겠네요"하면서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던 그는 '저지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뭐든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나아요. 안 해보면 미련이 쌓이기도 하고, 해봐야 내가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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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
2009/04/22 01:40
살다보면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연애든, 사업이든, 만남이든,스카웃제의든, 작가 제의든. 문제는 그 기회라는 쪽지를 집어드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그 쪽지가 공수표인지 로또인지는 집어봐야만 안다. 때때로 독배일 수도 있다. 인생에서 아주 치명적인...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새벽 2시에 베란다에 가서 담배를 입에 댈 수도 있을 것이고, 평소에 친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만나자고 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곰곰히 몇번이고 자기가..
마감시간 안 지키면 죽는 줄 알고 살아온 게 어언 십여 년인데….
난생 처음으로 마감을 어겼습니다.
그저께 [중년의 터닝포인트] 인터뷰 시리즈 한 회를 빠뜨렸습니다. ㅠ.ㅠ
블로그에 연재하고 인터넷 뉴스로 잠깐 떴다 사라지는 시리즈라서 별로 보는 사람이 없긴 합니다만,
어쨌건 이 시리즈 봐주시는 몇몇 분들께는 죄송….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제 뜻대로 하는 시리즈이다 보니
느닷없이 몰려온 일의 쓰나미에 치여 그만 펑크가 나버렸네요.
전 누가 ‘쪼아대지’ 않으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타율적 인간이라는 자각과 함께,
난생 처음 마감을 펑크 낸 충격에 스스로 놀라고 있습니다.
(펑크 내도 안 죽는 구나….하는 놀라움 ^^;)
중년에 길을 바꾼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조지프 캠벨이 ‘신화의 힘’에서 인용한 트리스탄의 염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트리스탄의 말이라지요.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 하겠다. 내 세상을 가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
제가 만난 사람들이 터닝 포인트를 돌 수 있었던 동력 역시 ‘내 것’ ‘내 인생’에 대한 강렬한 소망이 아닐까 싶네요.
그 소망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없던 용기도 내게 되나 봅니다. 중복이 되어 다 쓰지 않은 이야기들 속에서도 그들이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용기”였습니다.
용기…라고 적고 나니, 언젠가 제 친구가 편식이 심한 아들에게 “시금치를 먹는 것도 용기”라고 했다던 말이 생각나는 군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 시도해본 ‘사소한 용기’는 평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던 사람에게 직설적 비판을 퍼붓는 대신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애를 써본 일입니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포용력이라곤 거의 없는 스스로를 반성하며…, 이미 빠진 삼천포로 퐁당~ ^^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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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09/04/17 05:36
데드라인에 죽고 살던 지난 십여년... 혼자 애 키우면서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그러면서 혹시라도 응급상황이 벌어져 데드라인 못 맞출까봐 늘 데드라인 일주일전까지는 일을 마칠 수 있게 계산하며 하루 16시간씩 뛰었던 기억이 ㅠ.ㅠ 최근 몇년간은 내가 24/7으로 구르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무반 여유반으로 떨어지는 프로젝트 튕겨준적도 있었지만요 ㅎㅎ.언니는 정말 이십여년 가까이 늘 마감에 맞춰 일을 해오셨겠네요. 대단해요. 난생 처음 어긴 마감이라.. 추카해요!!! 뭐든 시작이 어렵다니까요~~(퍽! 응? 이게 아닌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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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산 2009/04/17 16:59
한 회가 빠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역시 펑크가 나긴 났었군요. 트리스탄이 한 말이나 되새겨보면서 터닝포인트 읽은 셈을 쳐야 겠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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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09/04/18 13:25
'난생 처음 마감을 어겼습니다' 란 말씀에 충격을 받았어요, 전직장에서의 저의 행적 땜시찔끔 했네요, 물론 산나님의 기사마감과는 좀 다르지만요.. 하여간 반성 무지 했어요(?)
인터넷 켜고싶은 맘이 들게 하는게 "그녀 가로 지르다' 라면?? ㅋㅋ! 세상과의 좋은 만남의 네트워크란 생각이어요.-
sanna 2009/04/21 22:48
lebeka58님의 전직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군요.
lebeka58님 댓글을 읽으니 더 자주 써야 한다는 반성과 함께
안에 뭐 든게 있어야 더 자주 쓰지, 하는 자책이 교차합니다. 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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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윙 2009/04/19 18:17
마감을 처음 어기셨다니..아마 두번째부턴 충격이 덜하실겁니다.으흐흐흐.
10여년간 마감을 지키셨다니 그것이 제겐 충격입니다. 위의 레베카님과 비슷한 심정..-ㅅ--
sanna 2009/04/21 22:51
오늘도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정신이 없다보니, 에라이, 또 쓰지말까 하는 유혹이 모락모락....-.-;;;
역쉬 한번 저지르면 그 뒤부텀 쉬워지는 듯...
(근데 이거 사무실후배들이 보고 따라하면 안되는데..-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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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2009/04/19 22:45
아하하하 모범생이 그런 일을 하시다니..
펑크나도 아무일 없다는 큰 교훈 배우셨다니 의미있는 펑크네요.
이일로 산나님 터닝포인트가 당겨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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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꽃 2009/04/25 23:18
김호님 블로그을 가끔 들르는데 물결 타고 우연히 따라왔어요. 마음이 따스한 글에 감사합니다. 저 또한 서른 네살에 멀쩡한 회사 나와 바람 같이 물 같이 살다보니 공감되는 글들이 많네요. 감사합니다. 가끔 들려 읽고 가겠습니다. 왠지 펑크도 해볼만 한데요. ^^ - Sharon 노윤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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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04/28 21:31
앗, 인터뷰후보 리스트에 올려야 하겠군요.^^
인터뷰 대상자를 '서른다섯이후 전환'이라고 기준을 정해두었는데,
노윤경님 때문에 은근슬쩍 한살 내려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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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둑 2009/05/14 08:59
요즘 뭐 하시나 잠깐 둘러보고 간다는 것이 그만 터닝포인트 시리즈를 몽땅 읽고 말았네요. 참 재미있고 유익한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저에겐 많은 용기도 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중 '펑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터닝포인트를 결행한 사람들은 '내 것' '내 인생'에 대한 강렬한 소망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오히려 내 것, 내 인생만을 추구한 삶에서 무력해져서 터닝을 결행했을 것라는 생각...그렇다고 찾는 것이 '진정한 내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중년의 터닝포인트는 내 것만을 추구하다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몸부림이 아닐까요? 내 것만을 추구하다 망쳐놓은 관계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내 것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뭐 이런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모쪼록 강령하시옵기를...
[중년의 터닝포인트] <8> 최준영 씨- SADI 교수에서 보트 제작자로
Before: SADI (삼성 아트&디자인 인스티튜트) 교수
After: 보트 빌더
Age at the turning point: 37
갑자기 순간이동을 통해 다른 시, 공간에 들어서는 듯했다.
번잡한 대학로 한 복판에 시침을 뚝 떼고 서 있는 30여년 된 낡은 주택. 지하 공방엔 미완성의 배들이 목재의 맨살을 드러내고 누운 채 허공에 떠있는 완성된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조로 된 2층의 사무실에 걸린 카약 두 척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날렵했다.
“죽은 나무에 정성을 들여 물고기로 만들었더니 다시 살아서 바다를 헤엄치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멋지잖아요. 배를 만드는 일엔 그런 쾌감이 있어요.”
최준영 씨(41)가 나지막하게 말할 때, 나는 은밀하게 꿈꾸는 연금술사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반듯하게 켜놓은 죽은 목재에 비틀고 휘는 고통을 가해 생명을 불어넣어 바다로 돌려보내는 꿈.
어릴 때부터 그는 부모를 따라 해수욕장에 놀러가서도 물놀이 대신 근처 포구에서 배 구경을 즐겼다. 그에게 배는 물고기였다. 작은 배는 꽁치, 큰 배는 고래였다. ‘물고기’를 만드는 일이 언젠가는 자신의 일이 될 거라고 어렴풋하게 예감했다. 그 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약간의 우회로를 걸어야 했지만.
● ‘물고기’를 만들 운명을 좇아서
삼성의 디자이너를 거쳐 이노디자인 그래픽 총괄이사, SADI(삼성 아트&디자인 인스티튜트) 교수로 일하던 그는 2005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보트 빌더(Boat Builder)로 전향했다. 지금은 부모님이 살던 대학로 주택에 ‘올리버 보트’를 열고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며 주문 제작을 하고 있다. ‘항로 전환’이 궁금해 찾아 왔다고 하자 그는 “내가 방향을 확 틀었다고 할 수도 없는데…”하면서 당혹스러워 했다.
“전 어릴 때부터 종이에 디자인을 했고, 커서는 전자제품을 디자인했고, 지금은 주머니에 안 들어가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차이 밖에 없어요. ‘업(業)’을 넓혀 왔을 뿐이지요.”
어릴 적부터의 매혹을 잊지 못한 그는 97년 삼성에 입사할 때에도 “마흔 전엔 나와서 배를 만들어야지” 생각했다고 한다. 일찌감치 ‘터닝 포인트’를 점찍어둔 셈이다. 혼자서 꿈꾸다 제 풀에 시들해질 법도 하건만, 그에겐 준비를 결심하게 만든 만남이 있었다.
96년 그가 런던의 광고회사에서 잠깐 일할 때였다. 우연히 예순이 넘은 원로 파트너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네가 꿈꾸는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면 몇 살 때 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저도 모르게 ‘마흔’이라는 대답이 나왔는데, 그 분이 ‘그러면 10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하라’고 조언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요. 열 살 이전을 빼고 생각해도 첫 직장을 갖기까지 15년 넘게 준비하는데 두 번째 인생을 준비 없이 맞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 제겐 행운이죠.”
한국에 돌아와 직장에 다니면서도 혼자 계속 목선 제작 관련 자료를 모으고 습작을 거듭했다. 언제 쓰일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만들어둔 자료 앨범이 나중에 티켓이 됐다. 2005년 산업자원부가 모집한 ‘차세대 디자인 리더’에 그의 선박 디자인이 선정된 것. 주저 없이 사표를 내고 산자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 워싱턴 주의 노스웨스트 보트 빌딩 스쿨 (School of Northwest wooden boat building)로 떠났다. 37살 때의 일이었다.
● 오래 기다려온 보이지 않는 손
오래 꿈꿔온 길에 마침내 들어섰을 땐 어떤 기분일까. 정작 그는 “별 감흥이 없다”고 한다.
“뭔가 결단할 때는 스스로 대단한 용기라도 낸 양 생각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아, 그때 내가 그냥 운이 좋았구나’하고 깨닫게 되잖아요. 마찬가지죠. 터닝 포인트 자체는 사건일 수 있지만 그 뒤에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운명 같은 길을 좇아가면서도 불안한 건 여전했다. 아내와 가족 모두 그의 결정을 지지했지만 괜히 혼자서 ‘내가 이래도 되나’하는 고민을 끌어안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저축해놓은 돈과 시간을 계산해가며 ‘이 정도 총알이면 얼마를 살겠구나’ 하고 막막해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보이지 않는 손이 도와주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더라고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2006년 10월 한국에 돌아와 “배를 만들자”는 생각 이외에 아무 계획 없이 작업장을 열었는데 해양레저시설, 마리나(요트계류장)가 속속 들어서고 2008년 경기도가 제1회 보트 쇼를 열었다. “준비운동 마치고 나니 갑자기 대회 일정이 잡히듯” 그가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계속 생겼다.
그의 주요 수입원은 카약 제작이지만 사실 카약은 그의 주 전공 분야가 아니다.
미국에서 배 만드는 일을 배울 때 저녁 시간이 아까워 마침 근처에 살던 전설적인 카약 빌더에게 카약 만드는 법을 배웠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카약을 계속 만들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세일 보트, 파워 보트를 만들고 있는데, 우연한 방식으로 일이 풀렸다.
“작업장이 대학로에 있다보니까 카페인 줄 잘못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요. 그 중에 몇 명이 제가 만들어놓은 카약을 보고 감탄하더니 어떤 사람이 주문을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한두 대씩 팔리다보니 어느새 수입원이 되어버렸어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이 떠올랐다. 천복을 따라 살면 창세 때부터 거기서 날 기다리고 있던 길을 만나게 되고 늘 보이지 않는 손이 따라다니며 문을 열어줄 거라던….
그에게 이 말을 들려주자 그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까지는 모르겠고 다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어요. 누군가 어떤 꿈을 갖고 있다면 그걸 계속 꿈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객관화해서 생각해보면 틈새가 있을 것이고, 그 틈새의 문을 열고 나가면 꿈이 자기 현실이 될 수 있어요.”
틈새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다고?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 한두 개를 버리면 결정이 쉬워진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버리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닌 부모님, 가족 이외에 중요한 것인 월급봉투를 버리고 난 뒤 그에게도 길이 열렸다. 그는 “소중한 것을 못 버리고 전부 다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배도 만들고 예전처럼 안정성도 추구하고,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가치 있는 ‘생물’로서의 배
그는 선박학교를 열기 위해 지방교육청 한 곳과 이야기를 진행 중이며 부지 확보까지 마쳐놓았다고 한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9월 선박학교의 문을 연다.
배를 잘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손재주일까. 그가 고개를 저으며 “큰 선을 보는 눈”이라고 단언했다.
“전체를 보고 선을 그릴 수 있는 눈이 가장 중요해요. 선을 그리는 눈을 키우려면 논리력이 있어야 해요. 엉뚱할지 몰라도 저는 제자들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을 시킵니다. 논리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면 논리적 사고가 안 되고, 논리적 사고가 어려우면 선을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해내는 게 불가능하죠. 논리적인 사고와 그의 구현이 보트 빌더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그는 “고급 목조 연안여객선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면서 “가치 있는 ‘생물’로서의 배를 만들고 사람이 ‘짐’으로 배를 타는 게 아니라 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에게도 잘 묻지 않던 질문을 그에게 뜬금없이 던져보았다. 요즘 행복하신가요?
“글쎄요. 행복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어요. 다만, 날마다 그날 하다 만 작업을 꿈꾸면서 잠자리에 들고, 목재를 이렇게 잘라 저렇게 붙이고 하는 작업을 마저 하고 싶어서 눈이 떠져요. 그걸 행복이라고 부른다면 전 행복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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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ng 2009/04/08 12:50
여기저기 점으로 존재하던 분들이 네 글로 연결돼 커다란 그림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아....마지막에 고개 들어 전체를 보는 순간, 너마저도 아~~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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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산 2009/04/08 16:48
Turning Point의 글들은 정말 하나같이 왜 이리 품질이 높은 건지..산나님의 다른 글들이 못하다는 말은 아니고요..^^ 암튼 오늘도 훌륭한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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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 2009/04/09 18:23
배가 너무 이쁘다...^^ 전 내용도 내용이지만 첫번째 사진 뒷편 벽에 공구들 정돈된거 보고 감동~~아마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준비하셨겠죠? 정교한 삶의 설계도를 가진 사람은 남들 눈에 비치는 것만큼 자신을 낯설게 받아들이거나 색다른 감흥을 느끼지않고도 한발씩 나아갈 수 있는 건가. 앞의 분들과는 또다른 색깔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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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ing 2009/04/18 09:17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어제와 똑같이 행동하면서 내일이 달라지길 바라는 저에게
좋은 룰모델이 나타난 거 같아서 마음이 좋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런데 논리적인 말하기와 글쓰기를 강조하시는 거 보니 제자들의 성장이 벌써 눈에 보이네요
# 오전
“~~~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 듣든말든.”
오전에 띠리릭 날아온 메신저. 다 좋은데 끝의 "듣든말든"은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며칠 전에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내가 씹었단다. 난 받은 기억이 없다.
뭔가 착오다, 내가 메시지를 씹을 이유가 뭐가 있겠냐고 달랬더니, 분이 좀 풀리는지 대뜸 상대방이 말했다.
“몰라! 얼마나 약이 올랐는데!”
달래면서도 한편으로 드는 생각.
대답을 듣고 싶었다면 왜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마는 거지? 내가 안 보면 어쩌려고?
들을 사람이 건너편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크는 괜히 하고, ‘여보세요’하고 괜히 부르느냔 말이다.
# 오후
매주 정기적으로 하는 모임이 있다.
의도하지 않게 내가 좌장(?!)이며 가급적 ‘필참’을 요구하는 모임이다.
참석이 어려우면 미리 말해달라고 이야기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말을 (더군다나 나처럼 성질 더러운 사람에게) 하는 게 불편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그렇지. ‘늦게 일정이 있어 참석 어려울 것같습니다’, 이런 말을 왜 문자로 띡 보내고 말까?
쪼잔한 나는 이런 문자 받으면 화가 난다.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모임 총무한테 불참 통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꼭 전달되어야 하고, 더군다나 양해를 구해야 하는 사안이라면
직접 이야기를 ‘주고받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일방적인 메신저, 문자메시지로 나는 할 말을 다 했다고,
그러니 대답이 없거나 양해를 못하는 건 다 네 책임이라고 상대에게 떠넘기는
일방통행식 의사소통 (이건 소통도 아니다. 통보다)이 나는 어이없다.
오늘 모임에서 그러지 말라고 뭐라 했더니, 참석자 중 한 명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바쁘실 것 같아서….”
참 별 걱정도 다 하신다. 바쁘면 내가 알아서 전화 안받는다.
제발 혼잣말만 하고 ‘말 다했다’ 하지 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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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단 만나
2009/08/23 23:19
어느 토요일, 가족이 함께 외출하게 되었습니다. 딸 아이는 친구와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해야 했지요. 못 나간다고 문자를 보내고 가볍게 따라 나섭니다. 전 놀랐습니다. I: 그게 다니? D: 네. I: 전화 해야지? 나중에 보자고. D: 문자 보냈으니 됐어요. 들어보니 딸아이 친구들도 다 그런답니다. 요즘 아이들 쿨한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지만, 전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문자는 전화 통화가 어렵거나, 이미 이야기된 일을 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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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아날로그 대화의 미덕
2009/08/26 09:48
Face to Face라는 원제보다 좀 약한 일단 만나에 대한 inuit님의 서평, 그리고 최근 백수 생활을 즐기고 계신 sanna님의 제발 전화를 하란 말이야! 라는 절규. 면대면 >>>>> 전화 >>> 메신저 >> 메일 > 쪽지와 문자... 비단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말을 걸어볼 귀찮음을 버리지 못한 적이 한두번이겠는가? 예로 근처 사람과 메신저로 대화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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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빙 2009/04/01 22:20
비동기 대화 채널을 이용하면서 응답은 즉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죠. 비동기 채널이지만 응답이 있어야하는 최대 허용 기간에 관한 사양이 있는거라는 무언의 합의가 있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ㅡ.ㅡ; 만약 그렇다면 그 기간은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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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04/02 00:47
비동기 대화 채널이.....뭔가요...ㅠ.ㅠ (무식해서 죄송...)
그러니깐, 메신저로 메시지 날렸을 때 응답이 30분 없으면 상대방이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면, '일방통행'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말씀이시겠지요? -
도도빙 2009/04/03 08:00
동시식 대화는 일반적인 대면 대화(?) 또는 전화 대화 같은 것으로 A가 말을 하면 B가 즉각적으로 반응 (말, 표정 등등)하는 방식입니다. 비동시식은 메신저나 MSN 처럼 보내진 메세지를 상대방이 언제 받을 지 보장이 않되는 방식이지요. 반응 속도도 평균적으로 동기식보다 느린게 일반적이고요.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전달이 않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이슈이거나 응답이 일정한 시간 안에 필요하다면 직접 대화를 하는게 맞겠지요. 또는 비동기 대화를 하더라도 응답을 바란다는 내용을 꼭 언급을 하거나 또는 일정 시간 안에 자신의 메세지가 전달되었느지 여부를 직접 확인을 하거나요.
@ 그런 이런 단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네요. ㅡ.ㅡ;; -
sanna 2009/04/03 19:51
아, 그렇군요.
동시식=동기식이 비슷한 뜻인가봐요?
아이팟 다운받을 때에도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런 말이 뜨더라구요.
나중에 이게 '업데이트가 끝났다'는 말이라는 걸 알게되긴 했지만,
처음엔 '동기화'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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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_cake 2009/04/02 09:03
산나씨 성질은 절대 더럽지 않습니다. 너무 하얘서 무서워 하지요..지금보다 10%만 더러워졌으면 합니다. 참석율 100%를 꿈꾸는 눈치없는 총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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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ng 2009/04/02 08:11
맞어.. 사람이 말을 해야지말야... 맨날 흔적 안 남기고 읽고만 가는 얌체 그림자독자도 오랜만에 분위기 편승해 출석체크 함 하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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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 2009/04/02 09:38
음.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통의 문자 그것 조차도 안해서
바람맞는(혹은 무시 당하는) 1人 여기 있습니다.
어쩔땐 그렇게라도 답변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더라고요.
-지나가던 이--
sanna 2009/04/02 22:24
음...바람맞힌 상대가 아마 sol님의 문자 못봤을지도 몰라요.
저도 저녁 6~9시 무렵 대리운전 스팸문자가 쏟아질 때
들어온 다른 사람 문자 놓칠 때 많답니다.^^;
또 대리운전이려니 하고 안보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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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09/04/02 11:50
전화로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는게 피곤하고 싫은 저로선 이멜/메신저나 보이스멜/문자로 얘기하는게 넘 편하더라구요. ㅎㅎ.. 필요한 얘기가 있어 전화했을때 상대가 안 받고 보이스멜로 넘어가면 무척 안심이 된다니까요. 물론 일방적 문자라는게 오해를 불러올 소지도 많은 것 같긴 해요. 문자는 역시 재미로 주고 받을때 제 기능을 하는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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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04/02 22:26
마자.재미로 주고받아야 제 맛이지...
난처한 이야기일수록 나는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사귀던 애인한테 결별통보를 문자로 하는 사람도 있다더라..
그런 거 이해 안되는 거 보면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듯....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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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2009/04/05 01:43
산나님 포스팅에서 알게된 차백성님을 초대하여 좋은 자리를 가졌네요.
14명이 모인 작은 자기계발모임인데,
연륜에서 오는 확실한 철학을 은근한 달변에 <게다가> 유머까지 얹어
풀어내주셔서 모든 회원이 만족해했습니다.
의미있는 포스팅에 감사드립니다.-
sanna 2009/04/06 13:14
아, 그러셨군요. 좋은 시간이었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런데 14명이 모인 '작은 자기계발모임'도 하시는군요.
함께 공부할 사람들이 있어 좋으시겠어요. 부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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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윙 2009/04/06 22:36
엠에스엔 메신저는 가끔 문자 보낸게 안갈 때도 있으니까 저런 경우가 종종 생기더군요. 전화받기 곤란할 정도로 바쁘신것처럼 보였나봐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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