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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28 봉숭아물 (24)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가 길가에 핀 봉숭아 꽃잎을 따와 봉숭아물을 들였다.
어릴 때 봉숭아물을 들여 아주까리 이파리로 감싸고 실로 꽁꽁 싸맨 뒤 자고 일어나면 손톱에 예쁘게 물이 들었던 기억이 그 시절의 자질구레한 다른 일들과 함께 되살아나 괜스레 가슴까지 콩닥콩닥해가면서.
봉숭아 꽃잎을 빻아 백반과 섞어야 하는데 집엔 백반이 없었고, 밤에 사러 나가기도 그렇고, 결국 백반 대신 식초와 소금을 섞어 (왜냐고 묻지 마시라. 나도 모른다) 물을 들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손톱엔 슬쩍 기운만 비치고 말았는데 주변 손가락 살이 더 진하게 물들었다. 이건 뭐 로맨틱한 기억을 다시 살아보기는커녕 김장 담그다말고 온 손 형국이로세. -.-;;
혹시 지울 수 있나 궁금해 뭘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네이버 지식인에게 한번 물어봤다. 나 같은 사람이 여럿 있었던지 뜨거운 소금물에 담가도 보고 칼로 긁어보고 아세톤으로 닦아보고 별 짓 다해도 안 지워진다며 울상인 질문들이 많다. 괜히 찾아봤다 싶은 대답이야 ‘지우려면 아예 하지를 말던가’ 같은 하나마나한 소리부터 시작해 수술 전 환자가 봉숭아물을 들이면 손톱을 뽑는다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있다. 초딩들의 헛소리이겠거니 했는데, 수술 중 손 발톱의 색깔로 저산소증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수술 전 환자는 봉숭아물을 들이면 안 된다는 의사의 코멘트가 실린 기사까지 있다. 참 나…. -.-;;
지하철을 탔는데 고속터미널 역에서 짐보따리를 잔뜩 들고 타서 내 옆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내 손을 보더니 키들키들 웃기 시작했다.
“여그 손톱 가상에 크림을 쬐께 발르고 허면 되는디…”
아주머니가 집게손가락으로 내 손톱 위에 조그맣게 원을 그리며 말했다. 따라 웃으며 손을 들어 보여주었다.
“그러게 말예요. 손톱에는 물도 잘 안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이번엔 아예 내 손가락을 잡고 들여다보며 웃었다.
“그랑게, 아, 손톱은 멀쩡허구 가상 자리에만 죄다 물이 들었고만이~ 그려도 봉숭아물 들잉거 봉께 촌에서 왔는갑네”
아주머니가 그제야 내 얼굴을 바라보며 반가운 듯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엔 누가 고향이 시골이냐고 물으면 내가 촌티가 나나? 하고 슬쩍 삐졌는데 요즘은 촌에서 왔다는 걸 누가 알아봐주면 괜히 반갑다. 이젠 서울에서 산 기간이 시골에서 산 기간보다 긴데도 말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그닥 많이 변하진 않았구나' 하는, 얼토당토않은 안도감 같은 걸 느낀다고나 할까. 참 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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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09/08/29 01:35
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엄마가 심어 놓으신 봉숭아로 열손가락에 물을 곱게 들이고 왔어요. 봉숭아 물들인 손톱이 제일 예뻐보일때는 물이 조금씩 빠지고 손톱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손톱끝에 봉숭아 물이 남아 있을때인 것 같아요. 살에 들은 물은 이주정도면 말끔히 없어지니 당분간은 보기 싫더라도 좀 참으시구요. 꽃잎도 꽃잎이지만 맨 위에 나있는 잎파리를 넣어 찧어야 색이 곱게 든다죠? 식초와 소금은 완전 에러임돠.. 둘다 아무 소용없는 재료되겠슴돠. 백반 아주 조금 넣으면 색이 더 짙어지지만 안 넣고 말갛게 들여져도 예쁜듯. 제건 아주 빨개요.. ㅎㅎ 제 블로그에 인증샷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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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자 2009/08/29 19:23
전 남자인데도 아주 어릴 적에 봉숭아물을 들이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구요.
아무튼 물들인 손톱이 자라나 손톱을 깍아낼 때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마냥 물들인 봉숭아 빛깔이 점점 작아지는 걸 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옛날 생각나네요. 아, 저도 촌에서 올라왔습니다. ^^ -
마음산 2009/08/31 10:09
오늘 아침 자동차에서 조지 마이클의 "where did your heart go"를 들었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나의 봉숭아물 손톱 사랑'은 어디로 갔는지...아조 애수에 젖는고만요...
봉숭아..봉숭아...나의 순수여(오버 연속임다!)^^ -
코미 2009/08/31 15:52
만나뵙게되어 반갑습니다!
"즐거운 공부!"되시기를~ "학문의 즐거움"을 만끽하시는 가을되시길 바라겠습니당~ ^^*
덧니> 봉숭아물, 참 예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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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09/09/01 15:46
알록달록한 인공적인 색 보담 자연의 색이 훨 예쁘네요. 한 여름 ,마당 평상에서 엄마가 손톱에 물들여 주실 때 세수대야에 발담그고 텀벙대며 장난치던 기억등등 오래 오래전 한여름 밤을 기억나게 하는 '봉숭아물'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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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댁 2009/09/05 16:00
하하..잘 지내시죠?
우리집 둘째도(머슴아임당) 검지, 중지,새끼 손톱만 들여 아주 이뻤답니다.
그 가장자리 물든건 며칠 지나니 빠지고 손톰에 이쁜 색만 남았던걸요.
오늘도 이쁜 하늘이랑 친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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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 2009/09/06 17:15
아주 어렸을 적, '봉숭아 물 들이는 날'이 있어서, 언니들부터 줄줄이 순서대로 할머니 앞에 앉아가 물들이던 게 생각납니다. 물이 덜 들면 다음 날, 다시 그 전날의 풍경이 재연되고는 했었죠. 그 땐 손가락이 아프기도 하고, 백반이 무섭기도 하고(뱀을 쫓아준다는다는데, 왜 제가 무서웠는지..), 어딘지 손이 파충류과 같이 보이기도 해서 싫었더랬어요. 그치만, 산나님 글 읽으니, 불쑥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젠 백반도 안 무서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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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2009/09/10 20:18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
다들 변해가지...
퇴행(Regression?)이 있다네....
많은 사람들이 바랄지도 모르는...
여기 사람들 멤버가 많이 모였어...
명절 새고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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