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30 00:23

버찌를 다루는 방법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놈의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어렸을 때 나는 버찌에 미쳐 있었어요. 돈이 없어서 한꺼번에 많이 살 수는 없고… 조금 사서 먹으면 점점 더 먹고 싶어지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화가 났습니다. 창피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한 줄 아시오? 아버지 주머니를 뒤져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시장으로 달려가 버찌 한 소쿠리를 샀지요. 도랑에 숨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배가 아파오고 구역질이 났어요. 그렇습니다. 두목. 나는 몽땅 토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보기만 해도 견딜 수 없었어요. 나는 구원을 받은 겁니다. 언제 어디서 버찌를 보건 내겐 할 말이 있습니다. 이제 너하고는 별 볼 일이 없구나 하고요.
훗날 담배나 술을 놓고도 이런 짓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마시고 피우지만 끊고 싶으면 언제든 끊어버립니다. 나는 내 정열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고향도 마찬가지예요. 한때 몹시 그리워한 적이 있어서 그것도 목젖까지 퍼 넣고 토해버렸지요….
두목, 웃을 필요는 없어요.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돼요. 생각해봐요,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


나도 조르바처럼 하기는 한다.
그러나 내 문제는, 조르바와 달리 기억력 대신 망각력이 탁월하게 좋다는 것,
그 탓에 탐욕의 대상을 터질만큼 처넣고 토해버려도, 시간이 좀 지나면 토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
반쯤 악마는 되었으나, 악마를 전혀 다루지 못하고 매번 진다는 것.
아, 정말 대책없는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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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아 2009/10/30 05:23 address edit & del reply

    조르바의 저 대목은 정말 두고두고 생각이 나요. 고독에서 저 책 토론할때도 저 부분 얘기가 나왔던가 기억이 가물하지만요. 생각해보니 전 고2때 복숭아 7개-지금 생각해도 넘 맛있었음..침 꼬올깍~쩝;;)- 한자리에서 꿀꺽하고 음악회 갔다가 토사곽란이 일어나 응급실에 실려갔던 기억이.. 저 이런 사람이예요 언니.ㅠ.ㅠ 근데 요새도 뭔가(특히 먹지 말아야할 것들)가 자꾸 땡길땐 조르바의 저말을 떠올리며 실천하는 중. ㅋㅋ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9/11/09 01:32 address edit & del

      너네는 고딩때 이런 재밌는 책도 토론했단 말이냐.
      우리는 맨날 '논어''중용' 뭐 이런 것들만 해서, 내가 지금도 '고전'을 싫어하잖니...ㅠ.ㅠ

  2. Favicon of http://mitan.tistory.com BlogIcon 미탄 2009/10/30 09:44 address edit & del reply

    버찌를 한 소쿠리가 아닌 4분의 3만 드셨거나,
    버찌가 아닌 보리수나 산수유에도 적용되기를 기대했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고 해도,

    대책이 없다기 보다,
    그게 사람이 아닌가 싶어지는데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9/11/09 01:34 address edit & del

      말씀대로 그냥 그게 사람이려니 하고 살아야겠지요?
      안그러면 스스로가 넘넘 싫어진다는.....

  3. lebeka58 2009/10/31 11:28 address edit & del reply

    ㅋㅋ~~ 글제목보고 한방 먹었네요. 글구 방금 막 생각났어요. 움베르토 에코의 ' 장미의 이름' '연어와 함께 여행하는 법''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과 같은 科네요.혹 산나님두 이쪽 계열이신감요? 산나님은 광고 카피라이터하심 매우 탁월한 끼를 발휘하셨을거란 100%확신이 들어요.그리구 글내용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닌게 아니라 조르바의 해법이 통하는 것이 제법되는거 (?) 같아요.허나 아닌 것두 쬠되는데요? 아마두 산나님이 머리를 쥐어박고 싶으신 상황은 물론 후자이지 않을까해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9/11/09 01:35 address edit & del

      저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과는 절대로 못됩니다.
      괜히 혼자 화내는 바보라서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인간이라면 또 모를까~ -.-;

  4. 현숙 2009/11/01 01:01 address edit & del reply

    나한텐 "버찌"라고 할만한게 없는거 같어, 라고 쓸려다가 하나하나 생각남. ㅠ,ㅠ 건강히 잘지내고 있군요. 가을바람이 찰텐데 옷 튼튼히 입고 다니고, 잘 챙겨먹도록 하세요 :)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9/11/09 01:36 address edit & del

      여긴 몹시 춥다가 또 가을 날씨란다.단풍 지기 전에 산에 가야하는데 괜히 마음만 초조해지네.

    • lebeka58 2009/11/10 22:04 address edit & del

      멀리 가지 않아두 가까운 산 어디나 다 이뻐요. 진짜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초딩 때의 공부가 절로 수긍이 간답니다.저는요, 남한산성, 청계산 , 관악산 음~~ 글구 울 집뒷산에서 늦가을을 실컷 온 몸으루 느끼고 있답니다.하긴 제가 준백수라 가능한 거 같긴해요.

  5. 이쁜이 2009/11/04 11:37 address edit & del reply

    오 완전 공감.
    첫째는 망각의 문제요, 둘째는 토할 때까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 여부 아니겠습니까. 쇼핑의 욕구가 치밀어오를 때 물릴 만큼 무언가를 사댈 수 있는 돈이 있어야 그것도 가능한 처방......에휴.
    그래도 이 글 멋지다. 읽어봐야지.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9/11/09 01:38 address edit & del

      '쇼핑의 욕구'를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그게 '욕구'에 속한다는 사실이
      이해불가능하지만,어쨌든 그건 이 방법으로 해결불가능할 것같다.
      네말대로 토할 때까지 사들일 돈이 있어야 말이지.^^

  6. lebeka58 2009/11/10 22:18 address edit & del reply

    볼수록 재미있고 유쾌한 글제목이네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9/11/15 20:21 address edit & del

      레베카님 취향에 제가 '지대루'어필한 것같네요 ^^;

  7. Favicon of http://sodami.com BlogIcon sodami 2009/11/17 10:08 address edit & del reply

    책 샀어요.... 조르바가 너무 궁금해져서... ^^

    좋은 글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9/11/21 02:57 address edit & del

      멋진 아저씨이지요 ^^
      조르바가 쏟아내는 생명과 열정의 언어들에 기꺼이 감염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