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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09 안도 다다오-빛의 교회 (23)
일본 오사카 근처 이바라키 시에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빛의 교회를 찾아갈 때였다. 길을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주택가였지만 유명한 건물이니 표지판 같은 건 있을 줄 알았다. 아니면 교회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높은 십자가라도.
웬걸,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모양인지,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안도 다다오”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따라오라며 길을 보여주었다. 가까이에서 봐도 교회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지판은 없었다. 노출 콘트리트 담벼락에 그저 ‘일요일은 교회에’라고 적힌 크지 않은 표어가 붙어있을 뿐이다.
육중한 미닫이문을 열고 교회 예배당 안에 들어서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천장에 등도 없고 어둑한 공간을 비추는 유일한 빛은 정면 벽에 뚫린 십자형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십자가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빛의 십자가는 크고 압도적이었다. 노출 콘크리트 벽에 가로세로로 기다랗게 교차하는 창을 뚫어놓았을 뿐이지만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 십자가는 다른 교회나 성당의 대형 십자가보다 더 위엄 있고 경건했다.
예배당 안엔 난방 시설도 따로 없이 석유난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안도 다다오가 빛의 십자가를 착안하게 된 계기는 극도로 부족한 예산이었다고 한다. 교회 신자들이 모아 준 건축비가 "너무나 안쓰러운 수준"이었던 탓에 단순한 박스형 공간으로 최대한 종교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1년을 고심해 내놓은 설계였다.
십자가 창을 통한 안과 밖의 뚫림이 주는 느낌은 묘했다. 빛의 십자가로 어둑한 공간을 그 어느 곳보다 종교적 느낌이 강한 수도원의 분위기로 만들어 내면서도, 동시에 그 앞에 무릎꿇은 사람에게 '구원은 저 밖에 있나니, 밖으로 나아가라'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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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2010/05/07 06:41
출장에서 돌아와 인천공항에서 수도권으로 접어들때 즈음 항상 마음 답답한 부분이 있습니다. 고속도로 양 옆을 가득 메운 개성없이 시들한 아파트, 일률적인 색감, 문자 가리면 일본인지 중국인지 애매한 특성이 버무려져 무개성의 개성을 드러냅니다. 건물 하나하나를 조각처럼 깎아내린 유럽의 건물에 굳이 비교하진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건축은 용도만 있고 예술은 없는걸까요. 고대 한국의 미감은 근대화의 효율성 앞에 영원히 단절되는게 마땅할까요. 이런, 제 의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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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10/03/09 23:42
이전에 종교건물건축을 해본 적이 있지만 이 교회처럼 신자들의 공동체적 열망이 강한
종교건물을 건축해보는 것이 자기 꿈이었다고 하더군요.
열악한 환경과 천재의 꿈이 만나 작품을 이룬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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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깨비 2010/03/09 11:47
외부 회의가면서 글과 교회 사진을 보고서 감동받아서, 회의끝나고 같이 회의하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였답니다. 정말 멋있는 교회같습니다.
저녁에는 어떻게 예배를 보냐는 질문도 나오더군요. ^^-
sanna 2010/03/09 23:43
저도 그게 궁금했는데 벽에 작은 등이 달려있는 게 사진에서 보이실겁니다.몇개 안되지만..
그렇게 어둑하게 밝혀놓고 달빛 십자가 아래서 기도하는 맛도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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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10/03/09 12:40
부족한 예산 때문에 나온 아이디어라니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다시금 생각케하네요.맞아요, 풍요로움이 항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건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많이 보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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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ing 2010/03/09 13:04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주위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제 자신이 조금 부끄..;;
매일 떠오르는 빛만으로도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운 지 알 수 있는 거 같습니다다
한 줌의 흙이나 빛에도 희망이 있는 거 같아요 ^^ -
엘윙 2010/03/09 21:49
독특하군요. 밖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이 구원의 손길같이 보여요. (구원이 필요한 늙은 양입니다. -_ㅜ)
근데 비가 오거나 바람불면 춥겠는데요. 크크.-
sanna 2010/03/09 23:54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책에 보니까,
저 단순한 건축물도 짓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그럼 지붕 얹지 말고 열린 하늘로 놔두자 그랬대요.
비가 오면 우산받고 예배보고 그러다가 돈 생기면 나중에 지붕얹으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요.^^
사진의 장의자들도 공사장 비계로 쓰이는 참나무 판자로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꽃다운 엘윙님께서 늙은양이라시면....저는 뭐란 말입니까....털썩....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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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 Han 2010/06/19 02:50
저도 올 여름 나오시마부터 오사카까지 돌 예정입니다.
'구원은 저 밖에 있나니, 밖으로 나아가라'.. 안과 밖을 연결하는 십자가, 정말 탁월한 시각이십니다.
더 빨리 보고 싶어졌습니다^^-
sanna 2010/06/19 12:16
와~ 좋으시겠습니다.
참고로 빛의 교회는 예약을 하고 와달라고 부탁하는 곳이구요.
전 시간이 안맞아 못갔는데, 물의 절 꼭 가보세요. 사진만 봐도 환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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