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에 해당되는 글 19건
- 2010/02/28 부러운 사람 (10)
- 2009/11/28 나는 모르겠어 (3)
- 2009/10/30 버찌를 다루는 방법 (15)
- 2009/10/26 바람의 말 (8)
- 2009/10/22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22)
- 2009/08/23 끊기의 괴로움? (16)
- 2009/05/24 나 그대 믿고 떠나리 (8)
- 2009/03/01 사랑과 지옥 (9)
- 2008/12/17 체실 비치에서 (15)
- 2008/12/04 굳고 정한 갈매나무 (10)
-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
오랫동안 내팽겨쳐 둔 세 번째 책을 위해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돌아다니고 원고를 쓰는 중이다. 얼마 전에 만났던 한 여성의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말을 다루는 일을 하다가 아주 구체적으로 사람을 돕는 일로 전업하게 된 그가 “땅에 발을 딛고 몸으로 부딪혀 세상을 배우는 구체적인 삶”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얼마나 기쁨에 차 있는지를 말보다 눈빛을 보고서 알았다. 새로 시작한 일을 들려줄 적마다 그의 눈은 유난히 반짝거렸고 덤덤한 표정에도 생기가 돌았다. 번번이 기억의 시계를 되돌려 이미 지나온 과거를 들려달라고 청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하워드 진의 에세이집에서 읽었던 위의 구절이 떠올랐다. 미국의 실천적 지식인으로 손꼽히던 하워드 진조차 간호학교에 입학하는 젊은 여성을 부러워했다. 추상적 개념을 다루거나 글과 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회의하며 ‘구체적 삶’을 동경한다.
집에 돌아온 뒤 나는 오래전 밑줄을 그어둔 이 구절 옆에 한 마디를 더 적어놓았다. ‘구체적 삶’이 변화시키는 대상은 다른 사람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고. “타자지향적인 목표와 가치, 연결선이 명확하게 보이는 일을 하게 되면서 나 자신이 달라진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서다.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만큼 그가 고양된 것은 커다란 보상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도 낮아졌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일이 얼마나 목적을 달성할지도 알 수 없다. 충만함은 그런 데에서 오는 게 아닐 것이다. 다시 하워드 진의 말에서 한 대목.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보상은 미래의 승리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는, 함께 위험을 무릅쓰며 작은 승리를 기뻐하고 가슴 아픈 패배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얻는 고양된 느낌이다.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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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10/02/28 06:00
구구절절 공감이예요. 언니 새 책은 그 전에 실었던 turning point에 대한 건가 보죠? 아흐... 저도 빨리 turn하고 싶은데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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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10/03/01 12:19
살면서 깜빡깜빡 잊고 있던 걸 다시금 일깨워주시는 글이네요.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다름으로 해서 구체적 삶의 방법이 다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말과 글의 힘은 정말 크고, 이또한 아무나 하고자 한다해서 할 수 있는건 아니거든요. 그런면에서 전 산나님이 넘 부럽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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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심 2010/03/03 02:01
선배가 책 글귀를 옮겨 놓으실 때마다 궁금한 게 있어요. 늘 다 외우고 계신 걸까, 한 단어나 맥락을 기억하다가 옮겨 놓으시는 걸까. ^^선배가 여기저기 흩어놓은 조각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리운 마음이 듬뿍 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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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10/03/03 15:22
'기억력'보다 '망각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내가 그걸 다 외울리가 있니~^^
막연하게 생각나면 찾아보는 정도야.찾아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경우가 훨씬 많고.
그건 그렇고,잘 지내지? 봄에 꼭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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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란 일반적으로 예술가 혹은 시인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영감을 받은 사람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며, 과거에도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뚜렷한 신념으로 자신의 일을 선택하고, 애정과 상상력을 갖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
영감, 그게 무엇이든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가운데 생겨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생계 수단으로 일을 합니다. 혹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일을 합니다. 스스로의 열정으로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의 조건들이 그들을 대신해 선택을 내리곤 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일, 그나마 그런 일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가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일. 이런 일들은 인간에게 닥친 가장 슬픈 불운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가올 21세기에 금세 행복한 변화가 일어날 것같지는 않습니다.
……
지금껏 쭉 이야기를 듣고 계신 청중 여러분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살인자, 사형집행인, 독재자, 광신자, 몇 개의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선동 정치가 역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또 열광적인 아이디어로 그 일을 수행하고 있지 않느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 오로지 그 하나만으로 영원히 족합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철저히 관심 밖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쪽을 향해 눈을 돌리는 순간, 자신이 주장하는 논쟁의 힘이 약해질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르겠어’라는 두 단어를 저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단어에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우리의 삶 자체를 폭넓게 만들어, 우리 자신과 우리의 불안정한 지구를 포함하는 드넓은 영역으로 확장시켜 줍니다. 만약 아이작 뉴턴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사과가 그의 눈앞에서 우박같이 쏟아져도 그저 몸을 굽혀 열심히 주워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저의 동포인 마리 퀴리가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월급을 받고 양가집 규수에게 화학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남았을 것이고, 그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기며 삶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시인과 세계’를 읽다가 옮겨놓음. 연설문 모음집인 ‘아버지의 여행가방’에서 재인용.
....공감하는 마음과 함께 괜히 어깃장을 놓고 싶은 심술도 자극하는 글. 무시무시한 살인자, 사형집행인, 독재자, 광신자의 카테고리에 함께 묶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나는 아주 작은 그 하나, 그게 뭐든 간에, 오로지 무엇 하나에 대해서만이라도 '알고 싶다'. '나는 모르겠어' 대신 '이것만큼은 나도 안다'고 말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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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놈의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어렸을 때 나는 버찌에 미쳐 있었어요. 돈이 없어서 한꺼번에 많이 살 수는 없고… 조금 사서 먹으면 점점 더 먹고 싶어지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화가 났습니다. 창피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한 줄 아시오? 아버지 주머니를 뒤져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시장으로 달려가 버찌 한 소쿠리를 샀지요. 도랑에 숨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배가 아파오고 구역질이 났어요. 그렇습니다. 두목. 나는 몽땅 토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보기만 해도 견딜 수 없었어요. 나는 구원을 받은 겁니다. 언제 어디서 버찌를 보건 내겐 할 말이 있습니다. 이제 너하고는 별 볼 일이 없구나 하고요.
훗날 담배나 술을 놓고도 이런 짓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마시고 피우지만 끊고 싶으면 언제든 끊어버립니다. 나는 내 정열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고향도 마찬가지예요. 한때 몹시 그리워한 적이 있어서 그것도 목젖까지 퍼 넣고 토해버렸지요….
두목, 웃을 필요는 없어요.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돼요. 생각해봐요,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
나도 조르바처럼 하기는 한다.
그러나 내 문제는, 조르바와 달리 기억력 대신 망각력이 탁월하게 좋다는 것,
그 탓에 탐욕의 대상을 터질만큼 처넣고 토해버려도, 시간이 좀 지나면 토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
반쯤 악마는 되었으나, 악마를 전혀 다루지 못하고 매번 진다는 것.
아, 정말 대책없는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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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09/10/30 05:23
조르바의 저 대목은 정말 두고두고 생각이 나요. 고독에서 저 책 토론할때도 저 부분 얘기가 나왔던가 기억이 가물하지만요. 생각해보니 전 고2때 복숭아 7개-지금 생각해도 넘 맛있었음..침 꼬올깍~쩝;
- 한자리에서 꿀꺽하고 음악회 갔다가 토사곽란이 일어나 응급실에 실려갔던 기억이.. 저 이런 사람이예요 언니.ㅠ.ㅠ 근데 요새도 뭔가(특히 먹지 말아야할 것들)가 자꾸 땡길땐 조르바의 저말을 떠올리며 실천하는 중. ㅋㅋ-
sanna 2009/11/09 01:32
너네는 고딩때 이런 재밌는 책도 토론했단 말이냐.
우리는 맨날 '논어''중용' 뭐 이런 것들만 해서, 내가 지금도 '고전'을 싫어하잖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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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2009/10/30 09:44
버찌를 한 소쿠리가 아닌 4분의 3만 드셨거나,
버찌가 아닌 보리수나 산수유에도 적용되기를 기대했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고 해도,
대책이 없다기 보다,
그게 사람이 아닌가 싶어지는데요~~ -
lebeka58 2009/10/31 11:28
ㅋㅋ~~ 글제목보고 한방 먹었네요. 글구 방금 막 생각났어요. 움베르토 에코의 ' 장미의 이름' '연어와 함께 여행하는 법''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과 같은 科네요.혹 산나님두 이쪽 계열이신감요? 산나님은 광고 카피라이터하심 매우 탁월한 끼를 발휘하셨을거란 100%확신이 들어요.그리구 글내용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닌게 아니라 조르바의 해법이 통하는 것이 제법되는거 (?) 같아요.허나 아닌 것두 쬠되는데요? 아마두 산나님이 머리를 쥐어박고 싶으신 상황은 물론 후자이지 않을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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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11/09 01:35
저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과는 절대로 못됩니다.
괜히 혼자 화내는 바보라서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인간이라면 또 모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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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 2009/11/01 01:01
나한텐 "버찌"라고 할만한게 없는거 같어, 라고 쓸려다가 하나하나 생각남. ㅠ,ㅠ 건강히 잘지내고 있군요. 가을바람이 찰텐데 옷 튼튼히 입고 다니고, 잘 챙겨먹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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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이 2009/11/04 11:37
오 완전 공감.
첫째는 망각의 문제요, 둘째는 토할 때까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 여부 아니겠습니까. 쇼핑의 욕구가 치밀어오를 때 물릴 만큼 무언가를 사댈 수 있는 돈이 있어야 그것도 가능한 처방......에휴.
그래도 이 글 멋지다. 읽어봐야지.-
sanna 2009/11/09 01:38
'쇼핑의 욕구'를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그게 '욕구'에 속한다는 사실이
이해불가능하지만,어쨌든 그건 이 방법으로 해결불가능할 것같다.
네말대로 토할 때까지 사들일 돈이 있어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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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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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편집자들에게 기획안을 제출하라고 하면 제일 먼저 시장조사를 하겠다고 서점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 서점에야 신간을 포함하여 많은 책들이 구비되어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전에 내가 읽어온 책의 목록을 살펴보는 것이다.
편집자가 평생 기획할 수 있는 책이 몇 권이나 될까. 극단적으로 한 달에 한 권을 만든다고 치자. 40년 동안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면 480권을 만들 수 있다. 480권의 목록을 어떻게 구상할 수 있을까. 아마도 처음 50권은 편집자의 독서편력에서 비롯된 취향과 기질이 반영된 기획도서가 아닐까 싶다. 나머지 400여권은 그 50권이 가지치고 혹은 뿌리 나누기를 해서 스스로 숲을 이루어나갈 것이다. …편집자가 자신이 잘 아는 분야,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내다보면 그 책이 다른 책을 불러 온다. 책 한 권을 만들면서 그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편집자인 것이다. 그러니까 책 한 권을 출간하고 나면 몇 권의 기획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할 수 있다.
- 정은숙의 "편집자 분투기" 중에서 -
얼마 전부터 고민하는 사소한 선택의 과제가 하나 있다. 그냥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는 변덕 때문에 생각이 더 뻗어나가질 못하고 계속 제자리 맴돌기 중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편집자 분투기’의 이 대목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저자의 표현에 빗대어 말하자면 ‘내가 읽어온 책의 목록’을 살피지 않고 ‘서점의 신간’을 살피러 나돌아 다니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듯하고 중요해 보이는 대상을 선택하고 싶은 얄팍한 욕심에, 애초에 내가 왜 이 길에 들어섰는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내 삶 속에서 만들어진 질문, 내 문제에 근거하지 못하는 선택, 전문성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근거가 여전히 빈약하다면 두리번거리면서 시간낭비 하지 말고 이곳까지 나를 이끌어온 내 질문을 먼저 들여다볼 것. 무엇보다, 홍상수 감독이 고현정의 입을 빌어 설파하신 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집적대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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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09/10/22 23:21
아는만큼만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사람 의외로 적어요. 자신이 잘 모르는것을 인정하려면 내가 뭘 모르는지부터 알아야하는데 그걸 잘 모르다보니까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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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10/22 23:30
웅~근데 확실히 내가 제목을 선정적으로 단 것같긴 하네.^^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보자' 뭐 이런 생각을 한 거고, 사실 제목이 이 내용과는 별 관계가 없는데
댓글은 선정적 제목에 대해 달리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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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자 2009/10/23 21:11
저도 제가 걸어온 경력(내가 읽어온 책의 목록)을 살피기 보다는
자꾸만 전혀 다른 새직종(서점의 신간)을 살피러 돌아다니다 참 많이도 헤맸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제 자리에서 되돌아 보니
제가 걸어온 길이 모두 이 길로 이어지기 위함이었구나 깨닫게 되더라구요.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2005년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 중 한 귀절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과거를 되돌아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미래에 점들이 어떻게든 연결되어 이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언가에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본능이든,운명이든,삶이든,인연이든,무엇이든 간에)
점들이 연결되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여러분에게 자신의 마음을 따르도록 하는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마음을 따르는 일이 여러분을 탄탄대로에서 벗어나게 할 때 조차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sanna 2009/10/25 21:25
그 유명한 'connecting the dots'로군요.^^
뒤돌아보아도 왜 내 점들은 연결이 안되나 답답할 때가 많은데..잡스의 말대로, 믿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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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 2009/10/24 01:48
홍상수 감독 영화를 즐겨보는 일인으로서, 언니 제목선택이 논지에서 영 벗어난건 아니라고 생각됨니다. ^^ 머...마음을 들여다보고 따르는게 모든 질문의 해답이라는건 두말하면 잔소리일 거고. 요는 고걸 못하게 방해하는 지식인적 자의식 과잉이 문제라는거 아니겠슴니까요. 저라는사람은 매우 뻔뻔하게도 그런 영화를 보면서 아하하 웃다가 어우야~하다가, 음...지식인은 역시 문제가 많아, 하면서 정리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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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10/25 21:30
마자마자...옛날에 나 꼼지락거리던 거 보다못한 모 선배가
"야, 도장파지 말고 그냥 우라까이라도 해서 빨리 띄워!"하고 소리지를 때,
'뭘 알아야 우라까이라도 하지요'하고 항변하고 싶었다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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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09/10/27 00:39
생각의 안테나에 포착되는건 역시 내 취향의 것이더라구요. 그러니 산나님도 첨에 구상했던거를 다듬는 정도로 큰틀은 바귀지 않을거란 생각이드네요.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공부하시는거 말고도 여러 계획이 많으신 분주한 가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그와중에도 블로거에참참이 글을 올리시니, 전 넘 좋아요.-
sanna 2009/10/30 00:14
문제는 '첨에 구상했던 거', 그것이 뭔지를 저도 잘 모른다는 거죠 ^^;
모르거나 말거나, 그냥 뭐 눈에 띄는대로 재미있는 것 따라다녀볼라구요 ^^
-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담배를 싫어했던 반면, 연합국 측의 처칠, 스탈린, 루스벨트가 대단한 애연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채식주의자이기도 했던 히틀러는 건강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 “담배는 적색인종이 백인에게 건 주술이며, 백인이 알코올을 전해준 것에 대한 복수”라고 말하며 금연 운동에 열을 올렸다.
(……)
홀로코스트와 건강지향은 ‘나치 우생학’이라는 같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인간을 건강한 병력 또는 노동력으로, 여성은 출산력으로만 평가하는 냉철한 실용주의 노선을 관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장애자의 말살이나 열성 유전자 보유자의 단종,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전면 배제’에 쉽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독일의 암 연구는 건강입국을 목표로 삼은 정권의 전면적 지원 아래 세계 최첨단을 걷는 분야로, 담배는 물론 석면이나 농약, 식품착색료까지 규제 대상이었다. 집단검진을 철저하게 실시하고 노동의 안전을 배려하고 (다시 말해 위험한 직장에는 유대인이나 외국인들을 배치하고), 예방의학의 시각에서 고기나 당분, 지방의 과잉섭취를 경계하였으며, 채소나 과일 등 자연식품으로 돌아가도록 활발하게 선전했다. 빵집은 통밀 빵을 굽도록 의무화되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포로들은 유기 재배로 키운 꽃에서 꿀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건강지향 풍토와 놀랍도록 비슷하지 않은가!
-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 중에서 -
금연을 선언해놓고서도 잘 실천하지 못하는 걸 창피해하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잠깐 눈을 반짝이다 이내 ‘너 친구 맞아?’ 하는 의혹의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흡연을 권장하는 건 아니지만, 금연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니 기분 좋게 피우는 맛있는 담배 한 개비가 훨씬 건강에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담배 끊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그동안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대상에게든 잘 중독되지 않는다고 짐짓 뻐긴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야 애호하는 것을 끊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잔병치레가 잦아졌는데, 한 친구의 권유로 한의원에 다니며 식이요법을 병행하는 중이다. 내 체질과 맞지 않는다는 금지식품 목록 중 다른 건 그럭저럭 참겠는데 친구의 담배 끊기 못지않은 스트레스를 느꼈던 건 커피와 맥주였다. 이 두가지를 특별히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생각해보라. 무더운 날 5시간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마시는 시원한 맥주, 비오는 날, 창 넓은 커피전문점에서 좋은 사람을 앞에 두고 앉아 마시는 한 잔의 커피. 그걸 할 수가 없다니…. 찬 물이나 오렌지 주스, 우유 따위로 대체할 수 없는 아우라가 그 장면의 맥주와 커피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식이요법을 스스로 마뜩찮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건강지향을 우습게 여겼던 오래된 편견 때문이다. 이를테면 ‘건강을 위해 싫은 운동도 꾹 참고 하고, 맛없는 음식도 꾹 참고 먹는다’ 류의 태도를 은근히 경멸해왔던 것이다. ‘그저 운동이 좋아 열심히 하다 보니 건강해졌다’의 태도로 살고 싶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병의 고통을 면하고 싶은 로마 청년 마르켈리누스가 운명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 상의를 청하자 한 스토아학파의 학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마르켈리누스여, 그대가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숙고하는 것같이 애쓰지 마라. 산다는 것이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대 하인들도, 짐승들도 살고 있다” (몽테뉴 ‘수상록’ 2권 13장)
내가 그 청년이었다면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충고를 하는 학자에게 소금을 뿌리며 내쫓았겠지만, 하여튼 나 역시 건강 갖고 유난을 떠는 건 결국 그리 대단치 않은 자신의 운명을 갖고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여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내가 식이요법이라니, 영 편안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다.
지금은 잔병치레와 그에 수반되는 귀찮은 일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제한을 한번 받아들여 실험해보는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지만, 회의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식이요법 탓에 약간 의기소침해진 상태를 한 방에 날려버린 건 아버지의 일갈이다. 부모님이 오셨기에 식이요법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못 먹게 되었다고 투덜대자 아버지가 어디 한번 보자며 내가 먹어도 되는 음식 목록을 유심히 훑어보셨다. 잠시 후 아버지가 거 참 이상한 애 다 보겠다는 투로 던진 말씀은,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의 어머니와 하던 의논을 일거에 정리해버렸다.
“야, 맛있는 것만 여기 다 있구만! 이 정도만 먹어도 되지!”
맞아요. 아버지. 뭘 더 바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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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09/08/24 10:30
원래 인간이 하지말라고 하는건 더 하고 싶어지는 동물이라 그런듯 싶어요. 먹으면 안된다 생각하면 더 먹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인지라...커피와 맥주. 저도 그닥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예 못한다고 생각하면 좀 그렇죠. 그래도 지금은 아버님 말씀이 진리~~ 먹을 수 있는 것들에 행복을 느끼는 쪽으로다가 맘을 정리시켜버리삼~~ 몸이 회복된 후에는 착색료, 석면, MSG, 농약등의 치명적 독극물들을 제외하곤 '진짜 음식'들은 너무 과하지 않게만 먹으면 될거라고 사료됨. ㅎㅎ
언니에게 In Defense of Food라는 책을 꼭 권하고 싶네요. 한국에 번역본이 나와있는지는 몰겠음.
http://www.michaelpollan.com/indefense.php
전 한의사가 채식만 하는게 몸에 맞지 않다고 특히 생식은 많이 하지 말라고 하던데.. ㅠ.ㅠ 예전에 좋아했던 고기류는 이제는 냄새가 역해서 먹을수가 없다는. 뭐 오래살려고 채식하는거 아니니까 걍 이렇게 살려구요. ㅎㅎ-
sanna 2009/08/24 17:06
맞아.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고 싶단 말이얌...^^
그 책은 마이클폴란의 행복한 밥상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음. 읽어봐야지~
난 그야말로 폴란 말대로 잡식동물이라 뭐 하나만 먹는 건 죽어도 못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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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y 2009/08/24 09:50
어떤 한의사분이 말하기를... 체질에 따라 먹어야 하는 음식과 금해야 하는 음식을 알려주면, 건강한 사람의 경우 '아, 제가 좋아하는 건 다 먹어도 되네요'라 하고 골골한 사람의 경우 '저런, 제가 좋아하는 건 다 먹지 말라고 하시네요' 한답니다 ^^. 식탐도 많고 의지력도 약해 '끊기의 괴로움'을 누구보다 심하게 느끼는 사람입니다만, 이 말 듣고 한번 분발해 볼까 하고 있습니다 ^^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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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08/24 23:16
흠...제 경우엔 술 종류의 경우 '아, 제가 좋아하는 건 다 먹어도 되네요'가,
(맥주는 등산이후에만 땡기는 특이한 경우랍니다. 산에 안가면 거의 안마셔요)
고기와 과일종류는 '저런, 내가 좋아하는 걸 다 먹지 말라니'가 해당되는데
골골한 걸까요, 건강한 걸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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슉 2009/08/25 15:50
고기도 소고기만 먹어야하고 회는 먹어도 되고...뭐 이런 구체적 나열을 해야 아버님 말씀에 공감하시는 분이 늘죠. 아버님 만세에 한 표 더! 글고, 한 달만 해보고, 뭐 이런 거 말구요 12월 전에 쭈욱 해보고로 바꾸시죠. 그 전에 소고기, 회를 원하실 땐 원없이 함께 먹어드리지요.(식당에서 만난 전 모군도 집안에 쌓아놓은 퇴직금으로 뭣하겠냐며 언제든 소고기 4인분을 함께 먹어드리겠다고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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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08/28 11:17
소고기,회..이렇게 불러보니 거 참...금단의 괴로움 따윈 배부른 신세한탄이로세 ^^
전 모군 말도 마라. 쇠고기 4인분 먹은 것도 모자라 차마시러 가자더니
거의 방석만한 와플을 시켜 먹질 않나...무서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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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2009/09/06 16:21
잘 지내시지요? 오랫만에 들렀다 갑니다. 저 역시 식이요법을 해야 할텐데요... 나이가 드니 먹으면 그대로 살로 가네요... 건강하시고 가끔 들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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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09/27 00:47
어마낫? 언제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다녀가셨대요?
잘 지내시지요? 글찮아두 한번 연락드린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호님 만났을 때 '2년 안'에 해치운다고 장담했던 일을 석달 전에 해치웠거든요.^^
다시 한번 만나서 늦깎이 학생+1인기업(?)의 애환을 한번 나눠보자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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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 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 故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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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_cake 2009/05/25 01:11
산나씨가내게해줄수있는최대한의위로를오늘해주셨습니다미안하고고맙습니다이달말까지는계속울것같습니다안구건조증은자연치유되겠지만저들을향한불쾌감은오래갈것같군요..NotOn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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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댁 2009/05/26 13:54
나를 믿고 가신겝니까?
농촌을 지키는 것은 제게 너무 벅찬대요.
그래도 저를 믿고 가신다니
그 믿음 저버리지 않게 열심히 공부해서 흙과 함꼐 사는 토댁이가 되겠습니다.
자꾸자꾸 흐르는 눈물,
메어오는 목.
아픕니다. -
팔다 2009/06/02 07:19
포스팅과 상관없는 댓글입니다만....
선배, 선배의 책이 지금 제 손에 있답니다!
령선배가 워싱턴에서 한권 보내주셨어요.
헤헤...좋아라 ~
그래서 지금부터 읽기 시작입니다요 ~ -
물방울을 통해 바다를 들여다볼 수 있어 나는 신화, 상징에 대한 이야기가 좋다. 지난해 할 일없이 혼자 놀 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보자' 마음 먹고 전작주의 독서 대상으로 삼았던 '거인' 중 한 명이 캠벨이었다. 물론 다 읽진 못했지만...-.-;
이 책은 캠벨이 직접 쓴 게 아니고 강연록을 바탕으로 그의 다른 책들을 편집해 펴낸 책이라, 기대했던 만큼 흥미롭진 않다. 구성도 어지럽고 짜집기 편집도 거슬린다.
캠벨과 신화, 상징의 해석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보다는 언론인 빌 모이어스가 캠벨과의 대담을 잘 정리해놓은 '신화의 힘' 이 입문서로 훨씬 낫다. 캠벨의 세계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거칠고 무슨 말인지 종종 알 수 없는 번역문장과 오역을 감수하고라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보는 게 좋다. (국내 최대 규모 출판사인 민음사, 가장 유명한 번역자인 이윤기씨는 이 책의 오역과 비문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데도 왜 모르쇠로 일관하는 걸까? 제대로 번역해 다시 펴낼 정도의 아량과 문화적 소양을 기대하는 게 무리일까?)
그래도 두터운 감각을 꿰뚫고 와서 꽂히는, 캠벨의 반짝반짝 빛나는 아포리즘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많은 아포리즘과 우화 중 사랑에 대한 지극히 아름답고 슬픈 우화, 그리고 캠벨이 자신 만의 감옥에 갇혀 살던 사람의 등짝을 후려친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아래의 우화는 너무 슬퍼 심지어 어젯밤, 꿈까지 꾸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무슬림식 해석에 따르면 그 이유는 오히려 그가 하느님을 어찌나 깊고도 강렬히 사랑하고 사모했던지 차마 다른 어떤 것을 향해 절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그는 지옥에 떨어졌고,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그곳에 영원히 있도록 처분받은 것이었다.
......
페르시아 시인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그 이후에) 사탄은 과연 무슨 힘으로 견딜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들이 발견한 답변은 이러한 것이었다.
"일찍이 '내 앞에서 사라져라!'하고 말했던 하느님의 목소리에 대한 추억으로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때는 환희였으나 지금은 사랑의 고통이 된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절묘한 영적 고통의 이미지인가!
'내 앞에서 사라져라' 하는 목소리에 대한 추억으로 견딜 수 있었다니...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추방하는 저주의 목소리가 그를 살게 만든 힘이 되었다니....이보다 더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난 떠올리지 못하겠다.
사탄이 처한 곳은 고통이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이지만, 자기 스스로 지은 감옥 안에 갇혀 그 너머를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꽤 괜찮게 사는 어떤 흑인 남자가 캠벨에게 흑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캠벨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참 말씀 독하게 하신다....'흑인에 불과할 뿐, 아직 인간이 되지 못했다'니....
하지만 이 이야길 읽으며, 나도 사실은 스스로 설정한 감옥에 불과한 어떤 한계를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 역시 "다만 OO에 불과할 뿐, 아직 인간이 되지는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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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산 2009/03/01 21:26
유명인사가 제대로 한 오역(?)은 정말 보는 사람을 힘들게 하죠. 번역하는 분들이 돈은 좀 않되더라도 소명의식이 있었으면..아니면 번역을 하지 말던가..남의 앞길 가로막지 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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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산 2009/03/04 13:47
니코마코스 윤리학, 케인즈의 일반이론..뭐 이런 책들은 인류의 문화유산이잖아요...그런데 누군가 정말 실력없이 번역을 해 놓으면 그 실력없는 번역본이 원전을 대신하는건데..문화유산에 대한 모독입니다. 번역 대충 했다고 커밍아웃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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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09/03/03 10:12
언니, 빌 모여스가 the power of myth에 관해 조셉 캠벨과 한 대담을 정리한 다큐멘타리(PBS) 여기서 볼 수 있어요.
http://www.genwi.com/search.aspx?keyword=joseph%20campbell&feed=387
스트리밍은 화면이 작아서 답답한데 mp4 file 다운 받으면 크게 키워서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몇년전에 이윤기씨가 번역한 그리스 신화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정말 오역이 많더라구요. 오역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기가 꾸며낸 얘기를 쓴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던데. ㅠ.ㅠ-
지아 2009/03/04 14:31
오늘 그 사이트에 다른 비됴보러 갔는데 조셉캡벨 엔트리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참 이상하네.. 늘 있던게 어디로 간겨.. 그 비됴 소스는 사실 insane films이라는 사이트예요. 근데 여기에도 한편은 안 보이네요.. 진짜 이상하다 며칠전에도 봤는데 ㅠ.ㅠ
http://insanefilms.com/index.php?s=joseph+camp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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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2009/03/04 00:00
아.. 루시퍼 이야기는 정말 찌르르한데요.
신화, 관심이 많은데 산나님 인도하신 대로 '신화의 힘'을 봐야겠어요.
참. 터닝포인트 시리즈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sanna 2009/03/04 23:29
오옷~집필에 여념이 없으셔야 할 분이 어인 방문을! ^^
루시퍼 이야기가 찌르르하시다니..사랑을 철회할 수 없는 고통을 이해하시는군요.^^
그런 경험 한번도 안해보셨을 것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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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내겐 '올해의 발견'인 작가다. 올 봄 비행기 안에서 그의 소설 '속죄' 를 원작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 를 보고 그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몇 달 뒤, 우연히 대학 때 내가 혼자 좋아했던 친구가 번역자인 게 눈에 띄어 '이런 사랑'을 읽었고, 그 뒤로 '체실 비치에서', '암스테르담' 을 내처 읽었다.
'체실 비치에서'는 아주 짧으면서 긴 이야기다. 며칠 전 밤에 읽기 시작해 새벽 5시까지 다 읽곤 책장을 덮으며 그만 울어버렸다.
책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은' 사건은 아주 사소하고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놓쳐버린 기회, 사랑도 모두 젊음의 오만함, 미숙함, 어설픈 자존심, 그런 턱없는 사소함들 때문에 놓쳐버린 것이 아니던가....
누구든 자기 인생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것, 사람의 모습을 대입해 읽을 수 있는 책.
단, 지나간 일에 대해 아무런 회한이 없는 분, 사랑이든 뭐든 잃어본 적이 없는 분,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스토리, 선명한 감정을 선호하는 분에겐 비추. 이거 뭐 이래, 하는 생각에 책을 던져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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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9/02/21 17:35
그렇군요. 전에 문학상 수상작 목록을 정리하면서, 제목만 눈에 익었는데, ssana 님 말씀에 꼭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문장이 길고 유려해서 번역하신 분이 힘드셨을 법하네요. ^^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에서 -
몇 번씩 반복해 읽은 시구를 따라 먼 산 바위 옆에 서 있을 갈매나무를 그려본다. 아내도 없고, 집도 없어지고, 부모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 낯선 거리를 헤매던 한 사내가, 어느 목수네 집 추운 곁방을 얻어 옹색한 불에 손을 쬐며 자신의 슬픔과 어리석음을 되새김질하다 그 괴로움에 짓눌려 죽을 것만 같다던 사내가, 마음이 가라앉을 즈음 고개를 들어 그려봤을 갈매나무. 마른 잎새가 쌀랑쌀랑 눈을 맞을, 쌓인 눈에 잔가지가 뚝뚝 부러져도 굳게 버티어 서 있을 갈매나무.
그렇다. 이 쓸쓸한 사내처럼, 누구나 마음 안에 굳고 정한 갈매나무 하나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엔 버리고 또 버려도 희미하게 미소짓는 어떤 것이 끈질기게 남아 있어서, 희망을 품기보다 '완전히 절망'하기가 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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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산 2008/12/04 11:21
삶이 항상 싸움이 되어야 한다고 누군가 말씀하셨는데,희망이란 싸움의 동격이죠.
완전한 절망(비움)이 그런 싸움을 수월하게 해 줄 것 같다는 것은 또다른 희망이자..싸움...
쓰고보니 말의 유희같군요.-
sanna 2008/12/07 22:09
항상 싸움이라면 전 피곤해서 그냥 손들고 말아버릴 것같은데요.^^
기회가 닿으면 백석의 시 한번 읽어보세요.
겨울밤에,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뒤숭숭한 마음으로 읽기엔 이보다 좋은 시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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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08/12/10 09:52
요즘처럼 뒤숭숭한 때 백석의 시를 읽으니 마음이 편해지네요, 오랜동안 잊고 살던 그 소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의 정서에 귀한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지요. 평안도 방언이 낯설긴해도
왠지 정겹고 따뜻하고 뭉클하게 하는 뭔가가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시집을 하루만에 다 보았죠. -
lebeka58 2008/12/11 15:49
재북시인이라 늦게 알게 된 것이 아쉬워요,글구, 1995년 운명하기전 까지의 삶과 창작활동이 어떠했을까 넘 궁금했어요, 훗날 통일이 되서야 가능할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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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8/12/14 00:18
백석의 시를 엮은 여러 책들이 있던데,
제가 갖고 있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엔 그의 개인 삶에 대한 이야기들도 좀 나옵니다.
참고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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