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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예쁜 비밀 전시회를 했던 제 동생 김현경이 올해 개인전을 합니다.
전북 전주시의 갤러리 공유 (063-272-5056)에서 '일상의 낯선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11일 오픈했구요. 3월31일까지 열립니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해 우연히 참여한 그룹전시회에서 그의 그림을 눈여겨본 갤러리의 초대로 열리게 됐습니다. 지난 해에도 매일 보는 창밖 풍경에서 예쁜 비밀을 건져내었던 제 동생은 올해에도 그 연장선 상에서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매일 보는 담벼락" "매일 가는 밥집의 작은 화단"에서 그가 찬찬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건져올린 화사한 풍경들입니다.
아래의 그림 "103호 앞 2"는 아파트 앞의 볼품없는 화단에 피었던,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들꽃이구요.
문외한인 저의 주절거림 대신, 아래 '작가의 말'을 붙입니다. 혹시 이 블로그에 들르시는 분들 중 전주나 인근 도시에 사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번 놀러가보세요. 갤러리가 전북대학교 앞 번화가에 있지만 작고 소담한 정원, 카페가 함께 있어서 호젓한 느낌을 줍니다.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봄의 햇살과 잘 어울리는 제 동생의 그림도 보고 차 한잔 하는 나들이를 계획해보세요~. ^^
작가의 말
생물학적 개념 중에 ‘역치’라는 말이 있다. 생물이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이르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역치가 없다면, 오감이 느낄 수 있는 것마다 모두 반응을 나타낸다면 너무나 피곤해서 생산적인 것에 신경 쓸 수 없는 미개한 인간으로 남거나 세세한데 모두 신경 쓰다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생물학적 본능이 그렇게 생겨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일상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간혹 사진기를 들이대기만 하면 쓰레기통조차 그림이 되는 타지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그곳 주민들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그토록 아름다운 그들만의 환경이 그들의 '역치'가 되기에는 이미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예술가들은, 역치가 낮은 사람들이 아닐까. 남들은 지나치는 일상에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감탄하고, 화내고, 의미를 캐는 사람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삶이 힘들지만 그러면서도 더 아름답고 역동적인 '삶'을 가깝게 느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오감이 무척 예민한 편이다. 시각 뿐 아니라 듣기도 잘 듣고, 냄새도 잘 맡는다. 좀 덜 느낄 수 있으면 덜 피곤할 텐데…라고 바랄 때도 많지만, 싫지만은 않다. 주변에 늘 있지만 내가 먼저 발견해 내는 것, 혼자서 느끼게 되는 무언가가 있을 때는 내게만 주어진 어떤 비밀스런 선물 같아서 감히 불평은 못 할 것 같다.
일상이 무미건조할 때, 멀리 떠나는 것도 좋지만, 예술가처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가끔은 사시사철의 변화가, 작게는 매일의 날씨 역시 일조를 하는 것 같다. 늘 보던 나무에서 못 보던 꽃이 피고 지고 하니까. 스스로의 역치를 조금 낮춰서 보면 매일 보던 담벼락도, 매일 가는 밥집 앞의 작은 화단도 너무 화사하고 새로워서 눈물이 찔끔 혹은 미소가 살짝 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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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 2010/03/14 00:49
축하드립니다. 오늘 미사때, 신부님께서 3월이지만 아직 봄을 "찾아야만" 느낄 수 있다는 얘길 하셨는데, 동생분 그림도 그 "찾는 눈"을 가진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작품들 인 것 같네요. 전주에 사는 친구에게 이 포스트를 전달해주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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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10/03/14 06:21
작년에 한국 갔을때 전주에서 공유에 자주 갔었는데... 저의 집이 바로 그 옆이거든요. 거기서 전시를 하는군요. 아 보고 싶다. 저도 역치는 무척 낮은편인 것 같은데 현경씨처럼 그림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없어서 ㅋㅋㅋ 그림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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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 2010/03/14 16:18
지난 번 전시회 때, '다음 전시회는 꼭 끝나기 전에 알려주세요!'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뿔싸, 전주로군요..;; 어쿠야;;
가보기에는 너무 멀어서.. '역치가 낮은' 그림들을, 그리고 그만큼 예민하고 예쁘게 와닿는 글을, 대신 보고, 대신 읽고 갑니다...
산나님 동생분, 전시회 축하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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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10/03/15 08:41
전주를 내 생애 두번째 방문할 기회인가 생각이드네요, 학교때 답사여행으루 딱 한번 가본 곳이거든요, 마침 동생이 전북대 수업이 있는 날 겸해서 찡겨 내려가 그림보구 와인마시면서 역치 좀 낮춰볼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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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윙 2010/03/15 22:41
들꽃도 클로즈업하면 저렇게 화려한거군요.
전시회 제목처럼..일상인데 역치를 낮추면 신기하고 낯선 기분입니다.
미술학원을 두달째 다니고 있는데..연필로 도형그리다가 지쳤지 뭐에요. ㅜ_ㅠ
하지만, 정말로 삶이 내팽개치고 싶어질 만큼 모든 것이 싫어질 때가 아닌 다음에야, 나는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은밀한 낙으로 삼는다. 때로 외부를 향한 그런 성향이 도가 지나쳐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조차도, 나는 그런 은근함을 찾아내는 것을,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예쁜 비밀들을 하나 둘 늘려가는 것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이번 작품의 소재는 그런, 나의 내밀한 비밀들을 조금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별것 아닌 말라깽이 나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창밖의 떨리는 나뭇잎들이 동트기 직전 동화나라에서처럼 갑자기 깨어나 얼마나 찬란한 빛을 발하는지, 그 것을 비밀스레 발견한 사람의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한 번은 보여주고 싶었다.
- 작가의 말 -
내 동생, 김현경이 5월27일~6월2일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무심하고 게으른 언니는 전시회 전에 올렸어야 할 포스트를 이제사 씁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삽니다. 올빼미형인 저와 달리 그녀는 새벽형 인간이라 우리는 한 집에 살면서도 좀처럼 얼굴을 마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첫 번째 전시의 주제를 ‘창밖의 풍경’으로 하겠다고 언뜻 들었을 때 나는 “어느 창?”이라고 물었던 것 같고 그녀는 우리 둘이 앉아 있던 집의 창문들을 가리켰습니다. “저거…, 또 저거, 저거.”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바라본 창밖은 내 눈엔 너무 시시해서 '풍경'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져 "야, 나뭇가지 밖에 없잖아?"하고 묻는 나를 바라보더니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 동트기 직전에 언니가 한번 봐야 되는데..."
그러다 언젠가, 밤늦게나 주말밖에 작업할 시간이 없던 그녀를 응원하러 작업실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막 작업을 시작한 캔버스엔 화려한 색채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그림들은 모두가 잠든 새벽녘 그녀가 홀로 깨어 포착해둔 창밖의 순간들입니다. 그 때는 완성되기도 전이었던 그림들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매일 무심히 보던 창밖, 내 둔한 시야로는 어떤 아름다움도 발견할 수 없던 창밖에 이런 풍경이 있을 줄이야....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나는 “별 것 아닌 말라깽이 나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창밖의 떨리는 나뭇잎”들이 “갑자기 깨어나 찬란한 빛”을 발할 때, 그 시간에 홀로 깨어 경이롭고 비밀스러운 제의에 참여하며 가슴 뛰었을 그녀를 상상합니다. 또한 그 찬란한 순간을 그려넣기 위해 매일 파김치가 된 몸으로 돌아와 밤마다 캔버스 앞에 마주섰을 그녀를 생각합니다. 붓터치로는 원하는 질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몇시간씩 서서 물감을 일일이 손으로 펴 바르고 지문이 닳도록 문지르던 그녀를 떠올립니다. 주책맞은 언니는 괜시리 그런 동생이 눈물겹습니다. 그녀 나름대로 통과하는 중인, 쉽지 않은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힘도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예쁜 비밀'을 쌓아가는 그녀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려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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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09/06/08 09:48
동생이 그림을 그리는군요. 몰랐네요. 그림들 정말 좋은데요. 실물로 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저도 달빛에 물든 밤하늘이나 동트기 직전 미명속에 비치는 산 그림자를 볼때마다 그걸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솟구치던데 ㅎㅎ.. 세번째 그림 환상적이예요. 돈 있음 사고 싶당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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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2009/06/08 15:25
앞부분을 읽으며
"무슨 화가가 글까지 이렇게 잘 써?" 했더니,
문재는 내력인가 보군요.^^
동생 분이 '쉽지 않은 시간을 견뎌내는 힘'을 가진 것을
가만히 축하합니다. -
lebeka58 2009/06/08 15:53
유화인가요? 근데 염색이나 판화같은 느낌도 있네요. 전시 기간에 포스팅 안하신게 넘 아쉽네요.
제 동생도 인사동에서 몇차례 개인전을 했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실용디자인 쪽으루 갔지만..
동생분의 말씀대로 작가(쟁이?)들은 우리 평범한사람이 보지 못하는 특별한 감각과 시선이 있더라구요,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어찌 그런 걸 끌어내는지~~ 인간은 법앞에서만 평등한거 같아요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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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 2009/06/09 20:54
와, 어쩐지 몽환적이면서도 너무 멋지다, 라고 생각하며 덧글들을 읽으니, 가장 많은 사람드이 사고 싶어했다는 그 그림이, 그 그림이었군요... 아, 정말, 황홀하면서도 아릿하니, 아름답습니다...
이런 전시회를 놓쳐서, 넘 아쉽군요...! (이렇게 써놓으면, 훗날 이런 전시회가 다시 있을 때, 미리 포스팅해주시지 않을까 싶어서, 아주 앞서 슬며시 가해보는 뒤늦은 압력...)
+ 꼼꼼하게 원고를 읽어주었다는 그 동생분이, 글자가 아닌 그림이미지와 가까우신 분이실 거라는 상상은 전혀 못했네요.. 크흣.. 멋진 분들이세요...-
sanna 2009/06/09 21:33
다음 전시회를 하면 꼭 전시회 열리기 전에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꼭 그래야지요~^^
근데 마음에 드는 그림이 서로 다른 것도 재미있어요.
전 첫번째 그림이 제일 좋아요.
아마 몇 년동안은 제가 살았고 가끔 쳐다보던 방의 창문밖 풍경이라 그런 것인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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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 2009/06/10 10:23
'예쁜 비밀'이라니...정말 사랑스럽고 눈물겹군요...
<나의 산티아고...> 읽고 나서 sanna님 생각을 진짜 많이 했네요~
오랜만에 인사글 남겨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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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 2009/06/18 11:31
진작 알려주셨으면 찾아가서 직접 봤을 것을. 멋지세요!
전 푸르스름 신비한 첫번 그림이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물론 세번째 것도 멋있지만요. ^^
아, 제가 요즘 블로깅을 제대로 안한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아마 말씀드렸지 싶기도 한데,
저 서울이예요- 다녀가는게 아니라 아예 들어왔구요.
산티아고 책은 샀구요, 아직 비닐도 뜯지않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언제 뵙게 되면 정말 친필 사인 받을 때 뜯을까 해서요. ^^
그러다 못참으면... !??!! ^^ -
UFO 2009/07/07 16:51
헉...희비가 엇갈리는 블로그...
내가 이래서 블로그 잘 안합니다...
그림이 산나님보다 훨 낫네여....
이 말은 동생이 훨 낫다는 ㅋㅋ
사진을 응용한 줄 알았는데......
글구 커피박사님 알현합시다...
지난달 런던에 들렀을 때 본 뮤지컬은 '빌리 엘리엇'. 원작은 2001년에 국내에서도 개봉됐던 같은 제목의 영화 인데, 이 영화를 아주 좋아했던 터라 언젠가 꼭 보리라 벼르던 뮤지컬입니다.
런던에 갈 때 비행기 표도 사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 '빌리 엘리엇' 뮤지컬 할인티켓 한 장만 달랑 사두고 모든 준비를 마친 것처럼 얼마나 뿌듯했던지요~ ^^
'빌리 엘리엇' 뮤지컬을 공연하는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으로 가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영화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을 뮤지컬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빌리 엘리엇'은 80년대 중반 영국 북부 탄광 마을에 살던 소년이 댄서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천신만고 끝에 댄서가 된 빌리가 무대 위로 도약하는,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뒷모습이죠. '역대 영화 라스트 씬 베스트 3'를 꼽으라면 그 중 하나로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그 장면을 뮤지컬은 어떻게 소화할 지가 너무 궁금했는데....
결론은 뮤지컬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영화와는 다른 길을 가는 거였더군요. 영화의 마지막 임팩트를 버리되 극 중간 쯤에 어린 빌리가 댄서가 된 미래의 자신과 함께 2인무를 추는 것으로 가름합니다. 이 장면 역시 절로 탄성이 나올만큼 아름답습니다. 뮤지컬 홈페이지에 그 장면을 잠깐 보여주는 비디오 클립 이 있습니다. 링크 걸어놨으니 맛뵈기로 한번 보세요.
어린 배우가 쉬지 않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극을 이끌어가는 열정과 능력은 놀랍습니다.
발레 학교 오디션을 보는 장면에서 빌리 역을 맡은 소년이 'Electricity'라는 노래를 부르며 쉬지 않고 회전하는 춤 동작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보는 이들이 모두 잔뜩 긴장해 숨죽이고 있던 객석에선 마치 압력이 폭발하듯 일제히 '와!'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터져나왔습니다.
깔깔대고 웃기도 하지만 몇번씩 울게도 만드는 뮤지컬입니다. 죽은 엄마가 나타나 빌리와 노래를 주고 받을 때마다 어찌나 눈물콧물이 나던지.... -.-;
엄마의 노래 중 여러번 반복되는 후렴구라서, 잘 못알아듣는 영어인데도 귀에 쏙 들어온 대목이 있었습니다.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언제나 네 자신이 되렴 (In everything you do, always be yourself)'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주문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뮤지컬이 영화와 다른 대목에 강조점을 두어서인지, 영화볼 땐 잘 눈에 띄지 않던 대목이 인상깊더군요.
대처 정권 아래에서 열악해진 노동조건에 시름하다 탄광 광부들은 파업을 하며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합니다.
그 와중에 빌리의 아버지는 어린 빌리를 발레 학교 오디션에 보낼 돈을 벌기 위해 파업에서 이탈하려 하고, 파업의 중심에 서 있던 자신의 큰아들과 격렬하게 다투게 되죠.
"우리에겐 미래가 없지만 이 아이에겐 미래를 만들어줘야 할 것 아니냐"며 무릎을 꿇고 우는 아버지. 반면 이 전선을 지키지 않으면 인간답게 살 길이 없다는 큰아들 토니의 주장도 절박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는 상황.
이 난감한 상황에 광부들이 나섭니다. 조금씩 돈을 모아 빌리의 오디션 비용을 만들어준 것이죠. 그냥 갈등을 마무리하는 스토리 전개였을 뿐인데 그 대목에서 난데없이 눈물샘이 툭 터져버렸습니다.
80년대 중반 탄광촌에서 사내아이가 발레학교에 간다니 얼마나 해괴망측한 일입니까. 아버지도 처음엔 권투가 아니고 발레를 배운다는 빌리의 말에 대경실색했으니까요. 그러나 비웃어도 시원찮을 판에 네가 틀렸다 비난하지 않고,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돕는 사람들의 아름다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선한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연민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테죠.
눈물을 닦으며 내가 보낸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적과 나의 구분, 흔들림없는 전선이 중요했던 그 때, 누군가가 '자기자신'이 되기위해 '대오'를 이탈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떻게 했을지......연민을 배우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나이 먹는 일에 감사해야 할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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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테라의 느낌
2008/07/21 11:58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언제나 네 자신이 되렴 (In everything you do, always b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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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2008/07/20 23:00
영화도 괜찮았는데 뮤지컬은 더 멋진가봐요.
이국에서 맛본 감동은 두고두고 인상깊을듯 합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뮤지컬은 꼼꼼히 챙기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
감사 2008/07/20 23:46
전 06년에 런던 갔을때 봤었는데..당시 오리지날 빌리 중 하나였던 리암 빌리로 봤죠..끝나고 나서 스테이지도어로 나오는 빌리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선 느껴보지 못한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죠..님이 본 빌리는 누구였는지 궁금하네요..네이버에 빌리 뮤지컬 카페가 있던데 요즘은 별로 활동들이 없어서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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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8/07/22 01:04
아~워낙 롱런하는 뮤지컬이라 오리지널 빌리가 또 따로 있군요.극장에서 받은 공연안내 리플릿을 잃어버려서 빌리 역 배우가 누구였는지는 모른답니다....ㅠ.ㅠ 미국에서 캐스팅된 소년이라는 것밖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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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아르 2008/07/23 11:43
사진만으로도 감동의 한자락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면서 이런 구경은 한번씩 해봐야할텐데 말이죠.
'흔들림없는 전선이 중요했을 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던 때가 있었네요. 말씀하신대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배운 것이 나이들면서 얻은 큰 것중 하나인듯 합니다.
파티 장소를 알리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계속 '브라이(braai)' 라고 떠서 무슨 뜻인가 했더니, 남아공 사람들은 바비큐 파티를 '브라이'라고 부르더군요.
소사티(sosatie) 라는 남아공 요리인데요. 오른쪽 꼬치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양고기와 돼지고기 썬 것과 파인애플, 양파 등을 말레이시아 카레로 양념해 꼬치에 꿰어 구우면 끝인, 아주 간단한 요리입니다.
남아공 음식문화엔 예전에 유럽인들의 노예로 들어온 말레이시아인들의 문화가 뒤섞여 말레이시아 향료가 꽤 많이 쓰인다는군요. 말레이시아 카레는 매콤하면서도 약간 달달한 맛이어서 꼬치구이 양념에 딱 제격입니다.
그냥 구워도 될 것같은데 등심살 가장자리 살이 얇은 곳을 끈으로 일일이 묶어 전체 두께를 균일하게 만들더군요. 그래야 골고루 잘 익는다면서요.
왼쪽이 지글지글 굽고 있는 필레입니다. 좀 지저분해 보이죠? ^^;
하지만, 다 익은 필레를 썰었더니 안이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져 아주 맛있습니다. 소금과 통후추로만 양념을 했는데도 상당히 맛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빌통은 소금으로 간한 소고기를 말린 남아공식 육포입니다. 그 나라에선 아주 대중적인 간식거리라네요.
빌통을 가져오기 전에 그게 뭔지 설명하면서 제 친구는 "미국의 저키(jerkey)와 비슷하지만 빌통의 맛을 저키와 비교하는 건 우리에게 모욕"이라고 주장하더군요. ^^ 먹어보니 질기지도 않고 그다지 짜지도 않고 아주 맛있는 안주거리 입니다.
이후로 쌀 요리 비슷한 꾸스꾸스 (couscous), 구운 소세지, 양고기 구이가 더 나왔는데 빌통이 나온 이후론 카메라를 내팽개치고 먹느라 바빠 사진 촬영하는 걸 까먹었다는...^^; 전 아무리해도 멀티태스커는 못되는 모양입니다. ㅠ.ㅠ
양고기 다리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작업을 하던 남아공 청년은 계속 양다리로 남편을 때려 죽인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 이야기를 하느라 일에 진도가 안나가서, 밤 10시 넘어서까지 양고기를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니 로알드 달의 소설집 '맛' 에 나오는 단편이더군요.
마침 제가 읽은 책이라 아는 체를 하면서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으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양 이야기로 말이 이어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읽지 않은 소설까지 나오는 통에...뭐 제 아는 체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남아공에서 온 청년이 하루키 소설까지 읽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해봤다죠....끙~ -.-;
해가 저무니 각 연립주택 옥상마다 소규모 파티를 열고 있는 외국인들이 눈에 띕니다. 해방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더군요.
서서 왔다갔다하면서 이야기하는 스탠딩 파티 형식은 영 익숙치 않았지만 하늘을 보며 파티를 하는 건 좋았습니다. 낮은 쪽 난간에 걸터앉아 올려다보니 해가 지는 지붕 위로 나무가 걸쳐져 있네요.
멀리서 해저무는 남산과 불을 막 밝힌 남산 타워도 보입니다. 여기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자니 아파트가 무지 갑갑하게 느껴지더군요. 옥상, 아니면 조각만한 하늘이라도 올려다볼 수 있는 정원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게 만든 저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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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둑 2007/08/20 13:39
수산나님, 잘 지내시죠? 남산을 보니, 벌써 고국이 그리워집니다(온지 고작 2주 됐지만). 저도 여기와서 바비큐 파티에 몇 번 갔는데, 쫌 뻘쭘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서서, 앉아서 잘도 얘기하는데...저는 어디에 껴야할지, 뭔 얘기를 해야할지 머뭇거리다 웃음만 실실 흘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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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na 2007/08/20 19:38
ㅋㅋㅋ '고국'이라고 하니까 마치 20년 해외생활을 한 망명객같은 분위기. ^^웃음 실실도 좋고 저처럼 열심히 먹으며 음식 칭찬에 열을 올리는 것도 한 전략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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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바루 2007/08/21 00:11
작년 요맘 때까지 옥탑에 살았는데요. 덥기는 정말 덥지만, 풍광이 끝내줍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마당이 어디 서울에서 쉬운가요. 바람 불 때 옥상에 탁 앉아 있으면 세상 시름이 없습니다. 거기 살다가 1층으로 이사를 했더니 미칠 지경이더군요. 도로 한강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왔죠. 그 전만은 못해도 그래도 좋습니다.
그 풍광 좋은 옥탑에 살면서도 바깥에서 고기 궈 먹으며 신선놀음은 딱 한 번 해봤습니다. 헤헤. 수산나 님이 즐기셨다는 바비큐 파티, 한번 해볼걸 그랬습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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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2007/08/21 14:14
저도 이번 휴가에 강릉 하슬라아트월드 보러 갔다가 입장료 인당 5000원이란 소리에 바로 차돌렸어요. 어른 6명, 어린이 2명이었거든요 동행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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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 2007/09/13 02:39
무엇보다도... 저 낯선 음식들이 맛있을 것 같고...
(꼬기 꼬기! - 제 핸드폰에 적혀 있는 응원구호랍니다 -_-
서서 이야기하는 옥상 파티도...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강원도에 볼 일이 있어 차를 몰고 갔다가 정동진 맞은편 언덕배기에 커다란 공원을 발견했습니다.
하슬라 아트월드.
이름이 특이해 한번 올라가봤죠.
생각보다 상당히 큰 예술공원입니다. 산비탈의 생김새를 최대한 살려 조각공원과 미술관 체험학습장 갤러리 등을 만들었는데, 규모가 큰 데 놀랐고, 자연과 미술이 모나지 않게 어우러지게 하려는 노력에도 감탄했습니다.
하슬라는 신라시대 때 강릉의 지명이라고 하더군요. 어감이 예쁘죠?
전체를 천천히 걸어 돌아보는데 족히 1시간은 걸립니다.
돌아다니다 문득 블로그 생각이 나더군요. '블로거 마인드'가 덜 돼 디지털카메라를 안갖고 다니는 터라 (사실 제 디카는 너무 큰 구식 디카라 들고다닐 수도 없다지요~ -.-), 거의 써본 적 없는 핸펀 카메라로 몇장 찍어봤습니다.
위에 링크해둔 하슬라 아트월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더 좋은 사진과 설명들이 많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거기도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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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 2007/08/01 08:51
정말 멋집니다.
서울에 있다면 그냥 차몰고 휘리릭~ 떠나고픈 그런 곳이네요, 이름도 너무 예뻐요. 하슬라~
휴대폰 카메라이기 때문인지 날씨가 흐려선지 모르겠지만 약간 흐릿한 느낌의 사진들이 오히려 연출한 듯한 느낌이 드는걸요. 아스라한 기억의 저편. 태평양 저 너머의 하슬라, 덕분에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아, 저 아직 그 유명한 '정동진'에 한번도 못가봤다지요.
정말 영락없이 나성촌놈입니다. -_-;;-
susanna 2007/08/01 22:06
사진에 대한 comi님 촌평을 두고 그런 말이 생긴 거군요.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 서울촌놈인 저도 이제사 가봤으니 '나성촌놈'도 곧 기회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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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y 2007/08/02 08:08
아, 멋집니다! (체질은 한량이나 환경(?)이 뒷받침이 안돼) 대기업 알러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구른 덕분으로 몸도 마음도 피폐하고 있는 요즘, 하루라도 휴가를 내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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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팔다 2007/08/03 07:00
오마나....여기 넘 멋지네요 선배..
밑에 '느긋하게 걸어라' 서평 쓰신 거 보다가, 저도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랑 유언장을 적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 작은아씨들을 읽다가 에이미가 유언장을 쓰는 대목에서 저도 한번 흉내내본 적이 있었는데요(초등 3학년때 쯤이던가...) 제가 가진 물건들 중에 의미를 부여해 처분할 게 의외로 별로 없어서 약간 당황했던 기억이....
저는 죽기 전에 하슬라아트월드에 꼭 가볼 테여요 !!!! -
무대를 비춘 조명은 종이로 몇 개 가려놓은 천장의 형광등 정도. 문을 닫아도 바깥 먹자골목의 소음은 계속 스며들었다. …이런 곳에서 연극 공연이 제대로 될까. 하지만 연극이 시작되면서 우려는 사라졌다.
주말인 20, 21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이음아트서점에서는 서점과 연극이 만나는 이색 공연이 열렸다. 극단 '드림플레이'가 헌 책방을 배경으로 한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가 무료 시연회를 이곳에서 열었다.
이 자리는 24일 대학로 ‘혜화동 1번지’ 극장에 오르는 연극의 오프닝인 동시에 이음아트서점으로선 특별한 행사였다. 서점 주인장 한상준 대표의 블로그 를 보니 이달 이음아트의 문을 연지 1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에 서점 하나 없는 건 수치”라며 ‘독립 운동’하듯 문을 연 서점인데, 일단 1년을 버텼으니 대견하다.
내가 찾아간 때는 금요일 밤. 서점 안엔 100여명이 빼곡히 들어앉았다. 간이의자와 책 판매대를 활용해 제법 계단식 객석의 공연장 같은 분위기가 난다.
연극이 주말 저녁 헌책방에서 벌어진 일을 소재로 삼은 덕택에 ‘주말, 서점’이라는 현실의 시공간과도 어울렸다.
80~90년대 초반 학번은 잘 알테지만, '오늘의 책'은 신촌 대학가에 있었던 사회과학 서점이다. 신촌에서 약속이 있을 때마다 단골로 들렀던 서점이 '오늘의 책'과 그 맞은 편 '알 (아래아 자를 쓴/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다)'이었다.
연극에선 20대 초반 함께 학생운동을 하다가 이제는 영화감독, 신문기자, 소설가가 된 동창들이 새로 연 친구의 서점에 모여든다.
연극 초반엔, 등장인물들이 계속 '넌 왜 그랬니'와 '넌 왜 그따위로 사니' 같은 투로 주고받는 대화가 좀 짜증스러웠다.
과거는 순수했으며 등장인물들이 타협한 현재는 늘 속물스럽고,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경우) 과거를 죄책감 없이 떠올리기 어렵다는 식의, 너무나 상투적인 후일담 연극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시 끝까지 봐야 한다. ^^
과거와 도덕적 책무, 죄책감 등을 갖고 옥신각던하던 등장인물들의 실랑이는 "네가 아는 게 사실이 아니"라는 친구의 '증언'으로 모두 원인무효가 되고 만다. ('증언'이 뭔지 여기 쓰면 스포일러가 되니, 궁금하신 분은 24일부터 11일초까지 대학로 '혜화동 1번지'를 찾으실 것! ^^). 그 작은 '반전'이 마음에 들었다. 인생의 커다란 비극을 겪더라도 사람들이 추측하듯 '집착'이나 '미련'이 꼭 삶의 동기가 되지는 않는다는, 그냥 살아갈 뿐이라는... 나더러 연극의 부제를 달라면 이렇다. "사람들은 왜 보고싶은 것만 볼까?"
연극은 그렇다치고, 실제 서점에서 연극 공연을 보니 뭔가 다르다. 공연 내용이 책과 관련있어서겠지만 뭐랄까, 헌 책은 곧 사람의 역사임을 실감하게 하는 자리였다.
등장인물이 기형도 시집에 서투른 고백을 써서 선물하며 풋풋한 사랑을 고백했던 일화가 등장할 때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따라 웃다가 내가 막 세상에 눈을 뜰 때 친구들과 주고받던 시집, 표지를 열고 그 안에 짤막한 편지를 쓰던 일들이 떠올라 마음 한 켠이 아릿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또 주인공 중 한 명이 "그땐 왜 저런 이야기들에 줄을 쳐가면서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중요했던 것들이 왜 지금은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물을 때, 내 머릿속에선 20대 때 내가 결연하게 밑줄을 그었던 문장들이 떠올랐다. 그 문장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문장들을 떠난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무엇을 읽는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서점에서 열린 이날 공연은 자신이 읽어온 책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모습을 생각하게 만드는 자리였다. 무대 장치의 정교함을 버린 대신 현실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
연출을 맡은 김재엽 씨는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인 서점을 활용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시간 반 동안 그 경계는 실제로 사라진 듯 했다. 내 앞에서 박수를 치며 신나게 연극을 보던 대학생 양윤희(20)씨에게 소감을 물었다. “극장보다 리얼했다. 정말 그런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걸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서점도 때론, 판타지의 공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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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만화 '20세기 소년' 보느라 밤 샜다
2006/10/24 11:16
만화 '21세기 소년'을 보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씸플...너무 재밌잖아. 누구야 이걸 그린 놈이?" 초등학교 3-4학년 때, 몰래 어머니 돈까지 슬쩍하면서 만화 수천권을 빌려봤던 나는, 플라모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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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연극]'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드림플레이,
2009/06/27 11:14
신촌에 '오늘의 책' 이란 헌책방이 있었습니다. 책꽂이 즐비하게 사회과학 서적 이라고 불리던 선동 팜플렛 같은 책들 사이로 사람들이 만나고 교류했고, 총무가 있고 알바들이 있었나봅니다.. 네 이건 제가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라서요. 다만 많은 선배들의 입으로 그 책방이 회자되는 경험을 했을 뿐입니다. 어느 학번대는 모두 '오늘의 책'을 하나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신촌 뒷골목을 헤매다가 술집 하나 없는 학교 앞 어느 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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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2006/10/23 23:06
앗 이런 공짜 정보는 미리 가르쳐주시지. 쿠쿠쿠
요즘 시대는 서점의 종말이죠. '그날이오면' 살리기 운동 한다는 기사를 보고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
susanna 2006/10/23 23:43
당그니님, inuit님 댓글을 보니, 이 블로그에서라도 미리 알려드릴껄 그랬다 싶네요. 앞으로 직업상 미리 접하게 되는 뜨끈뜨끈한 공짜 정보는 재까닥 알려드리도록 합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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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둑 2006/10/24 11:28
"20대 때 내가 결연하게 밑줄을 그었던 문장들...어디로 갔을까" 저는 이 부분에서 눈길이 팍! 꽂힙니다. 제가 쓴 글 중 하나를 트랙백에 등록... 소년, 소녀 시절의 우리를, 우리는 언젠가 꼭 만나야 한다는 것인데. 20대 우리의 문장도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우리가 잠시 잊었던 우리의 미래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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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2006/10/27 16:52
오늘의 책...그리고 교회 앞의 '독'다방이 기억에 남네요..무엇보다 수시로 가방을 열어 '나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다'를 강조해야 했던 시절..학생증을 안 가져와서 산을 넘어 등교하던 시절이..이제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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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보다 한 살 어렸던 누이동생 코르넬리아는 늘 자신이 없고 스스로를 믿지 못했던 성품이었다고 한다. 괴테의 회고에 따르면 괴테와 마찬가지로 코르넬리아도 ‘자기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했고 될수도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코르넬리아는 괴테처럼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내적인 갈등을 풀어낼 통로를 갖지 못한 처녀였다. 그녀는 괴테의 친구와 결혼한 뒤 27세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런 설명을 듣고 봐서 그런지, 초상화 속의 코르넬리아는 어쩐지 자신의 운명을 체념이라도 한 듯 묘한 슬픔이 배어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괴테 아버지의 ‘화목’을 향한 노력도 뭔가 예술적이었다. 내가 사진을 잘 못찍어서 흐릿하게 보이는데, 이 그림은 괴테의 가족 모두가 양치기 복장을 한 가족그림이다.
하긴, 지금의 우리도 특별한 기념일에 가족사진을 찍곤 하니, 행복한 한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간직하고 싶은 욕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겠다.
왼쪽에서 세번째 허리 숙여 양을 만지고 있는 소년이 괴테이고, 그 오른쪽이 여동생 코르넬리아다.
그 당시 상류계급 시민들에게도 양치기가 주인공인 목가적 전원생활이 '평온'의 상징적 이미지였나보다. 지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꿈꾸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사회구조는 다를지언정, 사람들이 살아가며 번잡함과 자연 본연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갖는 '근원'에 대한 동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나보다.
이 그림이 특이하게 보였던 건, 그림 오른쪽 구석에서 놀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 모습이다. (내가 찍어온 사진에선 엉덩이 형체만 흐릿하게 보인다. 왜케 사진을 못찍는지....ㅠ.ㅠ)
이 아이들은 어릴 때 죽은 괴테의 형제들이다. 양치기 복장을 하고 단란하게 모여있는 가족들 뒤에서 아기 천사처럼 벌거벗고 놀고 있는, 일찍 죽은 아이들....이렇게라도 한때나마 가족의 연을 맺었던 생명들의 기억을 그림 속에 박제하고 싶었던 걸까.
화가에게 '죽은 아이들이 네명인데, 어린 천사의 모습으로 뒤에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괴테 아버지의 심정을 잠깐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여기서부터는 층수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건물이 모두 4개 층이니 3층 아니면 4층이다. -.-;
사진을 찍다 서가 옆 거울에 나를 박아두고 돌아오다.
그거 몇 장 된다고… 하면서 설명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그 당시엔 빨래를 1년에 2,3번 밖에 하질 않았는데 괴테의 집에만 침대보가 144장(놀라서 그런지 이 숫자는 정확히 기억한다~)이 있었다고 한다.
압착기가 필요할 만도 하다. 하도 빨래를 드물게 하던 시절이라, 빨랫감의 숫자가 그 집의 재산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는 척도이기도 했다 하니….
드디어 괴테의 집필실인 시인의 방. 이 방에서 괴테는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괴테는 상당히
괴테의 집 기행이 대충 끝났다. 꼭대기 층엔 괴테와 코르넬리아가 인형놀이를 하던 상자가 놓여있는 인형놀이 방이 있고, 그 옆엔 전시실이 꾸며져 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7년 전쟁이 발발하고 오스트리아와 연합한 프랑스군이 프랑크푸르트를 점령했을 때 괴테의 집에선 프랑스 군인인 토랑 백작이 한동안 살았다.
그 백작의 지시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의 방도 꼭대기 층에 있다. 그 백작이 화가들을 불러 집에서 그림을 그리게 한 덕분에 괴테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꼭대기 층 전시실엔 괴테의 가족 내력을 보여주는 그림, 글들이 전시돼 있다. 대충 훑어보다가 권총 자살을 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설명대로 괴테의 가족 내력을 보여주는 그림 중 하나라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느 친척의 그림이겠지. 참 특이한 기록 벽(癖)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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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 대목이다.
아주 오래, 그리고 어느 한 곳에 정착해야 적당한 지금도 여전히 질퍽거리며 헤매는 나는, ‘파우스트’에서 신이 했던 이 말을 변명거리로 삼아 두리번거리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언젠가는 ‘그 무언가’를 파우스트처럼 ‘내 힘’으로 찾게 될 것이라고…. 물론 괴테가 나처럼 헤매는 인간들 변명거리로 쓰라고 이 말을 만들어낸 건 아니겠지만....-.-;
그나마 이전보다 나아진 점이 딱 하나 있다면, 메피스토텔레스처럼 알아서 척척 해결해주는, 기대고 있기만 해도 늘 길을 밝혀줄 큰 존재가 내게 있다면 차라리 영혼을 팔아도 좋겠다는 바람을 접은 것 정도랄까…. 그것이 사람이든 이념이든, 그런 존재가 있다고 착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문제를, 어떤 이념도 내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부끄럽게도 꽤 늦게 깨달았다.
어찌됐든, 그런 연유로 난 괴테의 책을 몇 권 읽지도 않았으면서 괴테에 대해 괜한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러니 얼마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출장을 갔을 때 내 첫 번째 관광 목적지는 당연히 괴테의 생가인 ‘괴테하우스’였다.
괴테의 생가는 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됐지만 전후 복원됐다. 독일 복원 기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니, 실제 모습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까지 복원된 모양이다.
내가 잘못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집은 괴테의 조부모가 산 집인데 괴테 할머니가 이 집을 산 가장 큰 이유는 현관 바닥의 포도주 보관 창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집에 그런 지하실 혹은 다락방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난 미로, 숨겨진 공간이 없이 반듯반듯하고 훤한 아파트의 획일적 배치가 너무나 싫다.
괴테네 집은 아버지가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아 평생 황실고문관이라는 명예 칭호외에 직업이 없이도 살 수 있었다고 하니, 상당한 부자에 상류층 집안이다.
각 방은 색깔 별로 통일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아끼던 노란방, 가족이 모여 식사하던 파란방, 과 같은 식으로. 설명을 듣다보니 집이 파괴되기 이전부터 원래 그랬던 것 같다.
파란 방은 식당이자 가끔 괴테의 원고를 필사자가 옮겨 적던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괴테의 어머니가 특별히 아꼈고 ‘바이마르 룸’으로 불렀다는 노란 방엔 괴테의 젊은 시절 초상이 걸려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괴테의 아버지가 아꼈다는 붉은 방이 나온다.
벽지의 문양이 중국풍인데 당시 상류층에선 이런 무늬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방 구석에 촛불이 꽂힌 등이 눈에 띄었다.
당시엔 가로등이 없어 밤에 외출을 하려면 이런 등을 들고 다녀야 했는데 여기서 촛불의 개수가 신분을 상징했다고 한다. 귀족은 3개, 하층민은 1개를 꽂을 수 있었다. 괴테네는 2개이니 상류 시민이라는 표징이겠다.
촛불로까지 존재의 등급을 밝혀야 했다니….
그런 사회는 어떨까 싶다. 그런 사회의 하층민으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억울해서 못살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가 않다.
버트런드 러셀의 책에서 언젠가 읽은 대목인데, 질투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감정이다.
모든 사람이 타고난 신분에 따라 살아가야 했을 때에는 모든 사람이 동등해야 한다는 관념도 희박했다. 그러니 왜 똑같은 밤길에 내 촛불은 1개인데 저 놈은 2개인가, 와 같은 질투, 부당하다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들볶을 일도 없었을 거다. 사람은 무슨 수를 써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여기는 행운에 대해서는 질투하지 않으니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별이 신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질투하지 않는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신분의 구별이 없는 사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내가 노력하고 적당한 운이 따라준다면 타고난 부자들 못지 않은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 이르러서야 질투라는 열정이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혹은 불행하게 만든다.
평등하고 질투하는 사회, 불평등하고 질투없는 사회, 어느 쪽이 더 나을까....생각하다보니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불평등하고 질투하는 사회 같다. 최악이다....-.-;
기억나는 설명으로는, 괴테의 아버지는 여느 미술품 수집가와 달리 이미 세상을 뜬 유명한 작가들 대신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오래된 포도주도 좋지만 포도를 수확한 그 해 포도주의 맛을 따라올 수 없듯 미술작품도 그렇다’(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뭐 이 비스무리한 말을 했다고 하는데, ‘검증된 작품의 수집’보다 ‘발견의 즐거움’을 더 높이 쳤던 사람이 아닐까 한다. 이런 게 진정한 애호가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괴테의 방에는 그의 탄생과 죽음을 상징하는 문양이 있다.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잘 모른다. 이 방엔 괴테의 세례소식이 실린 신문도 붙어있었다. 괴테는 심한 난산 끝에 태어나는 바람에 괴테가 태어난 뒤 괴테의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아버지? anyway)는 프랑크푸르트 산파(교육인지 출산시 의무 대동인지, 아무튼) 와 관련한 법 개정을 지시할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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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두레홀. 청주에서 상경한 연극인 유순웅씨의 모노드라마 <염쟁이 유씨>를 보다.
워낙 인기가 좋아 연장공연을 거듭하다 보니 7개월째 공연 중이라고 한다.
금요일 밤. 작은 극장 안. 사람이 꽉 차고도 모자라 그 좁은 계단마다 한 명씩 들어앉았다.
유순웅씨의 얼굴은 참 순박하게 생겼다.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온 유해진과 너무 닮았다. 울 회사 선배 중에 한 사람과도 아주 많이 닮은 탓에 초반엔 집중이 어려워 혼났다.
그는 이 모노드라마를 2년간 전국을 돌면서 공연했는데 서울에서만 못했다고 한다. 에라, 적자를 보더라도 해보자 마음 먹고 상경했는데 웬걸, 서울연극제 인기상을 타면서 시쳇말로 ‘떴다’.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재미있고 볼만한 연극. (두레홀 공연기간은 10월21일까지인가 그렇다)
평생 시체의 염을 해온 염쟁이 유씨가 생애 마지막 염을 하는 날의 이야기다. 유씨는 몇 해 전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연락해 모든 절차를 설명해가면서 염을 한다. 그 와중에 조폭귀신, 장의대행업자 장사치,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등 여러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혼자서 1인 다역을 해가며 1시간20분을 이끌어가기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절반쯤 넘어가니 유씨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져 내렸다.
이 연극은 모노드라마이지만, 모노드라마가 아니다. 유씨는 배우들을 즉석에서 조달해 관객들이 계속 기자가 되었다가, 상갓집 상주의 큰 아들이 되었다가 막내딸이 되었다가 한다.
내가 보기에 이 연극의 최대 강점은 유씨의 연기력(물론 연기력도 훌륭하지만)보다 그 같은 관객과 배우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
유씨가 관객을 들었다놓았다 하면서 데리고 노는 재주는 일품이다. 마당극을 오래 한 배우의 관록이 느껴진다. 반면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을 했던 김성녀처럼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약하다. 발성이나 목소리도 별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계속 자신이 연기하는 허구의 세계에 끌어들였다가 다시 현실의 위치로 돌려놓았다가 하면서 데리고 노는 탁월한 재주가 다른 모든 것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후반부에 가면 그 재주가 절정에 이른다. 유씨의 지휘에 이끌려 함께 신나게 놀았던 관객들, 이번엔 그의 슬픔에 이끌려 동참하게 된다. 유씨가 이끄는 대로 똑 같은 역할 놀이를 하면서도 유씨의 슬픔이 서서히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더 이상 웃거나 농담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유씨가 강하게 권유하지 않았는데도 관객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자발적으로 염쟁이 유씨가 차려놓은 빈소에 절하고 유씨를 위로하게 된다. 돈을 내고 공연을 보면서도, 끝나면서 갖는 느낌은 풍진 세월을 살아온 한 노인의 생애에서 가장 슬프고 고독한 일을 함께 했다는 연민 같은 것…
(그게 무엇인지 여기 쓰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쓸 순 없고, 꼭 보시라. 울지 않을 수 없다....)
염쟁이 유씨가 뒷부분에서 “잘 죽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쓴 책 <몰입의 경영>에서 한 대목이 떠올랐다.
삶이란 선택의 연속인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헷갈린다면 죽음을 상담자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내가 죽을 때 지금 이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보라는 권유다.
## 중간에 돈독이 오른 장례대행업자(물론 유씨다)가 나와 관객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나도 명함 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안주고 바로 옆사람에게 준다. 내민 손이 좀 민망해 속으로 칫~,그랬다. 옆자리 앉은 사람 명함을 보니 홈페이지 주소가 www.golroga.co.kr로 적혀 있다. ^^
이 장사치씨가 들어간뒤 염쟁이 유씨가 나왔다. "장사치, 그 놈이 왔다갔다고?"하더니 "혹시 명함같은 거 돌리지 않았어?"하고 묻는다. 그러더니 유씨 왈.
"아, 그 놈이 명 짧아보이는 사람들만 골라서 명함을 줬단 말여~. 그런 나쁜 놈!" ㅎㅎㅎ
## 중간에 유씨가 염을 하느라 힘이 드니 소주를 한잔 해야 되겠다면서 관객 몇 사람에게 잔을 돌렸다. 앞에서 두번째 줄에 앉은 나도 당첨! 물이겠거니 하고 벌컥 들이켰다. 그.런.데. 물에 약간 희석시켜 농도가 줄어들긴 했지만 진짜 소주다. 내가 엉겁결에 “크아~ 이거 진짜야!” 하고 내지르니, 유씨가 날 째려보며 “거 참, 그럼 가짠 줄 알았어?” 한마디 했다. ^^
## 공연이 끝나고 나올때 유씨가 극장 입구에 서서 나가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그의 표정이란!....꼭 '지는 나름대루 열심히 헌다고 혔는디...여러분들 맘에 들었음 좋겄는디, 걱정이네유~'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유순웅씨가 훌륭한 배우일 뿐만 아니라 사람도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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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lie 2006/09/24 14:30
트랙백 남기신 거 오늘에야 봤습니다. 저는 소주 받아 마시는 관객이 제일 부러웠는데 그중 한분이셨군요!!
좋은 공연 보고 좋은 기억을 함께 한 사람을 알게 되어 푸근한 느낌입니다. -
블로그 용으로 처음 쓰는 글. -.-;
만들어놓고 잠깐 잊어버릴 만큼 정신이 없었다. 생활도, 마음도….
버트런트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말했다. ‘너 행복하니?’하고 자꾸 묻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자기를 들여다보는 짓도 자꾸 하면 나쁜 버릇 된다고.^^
토요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김성녀의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을 보다.
이전에 윤석화가 하는 모노드라마도 본 적이 있다. 그땐 윤석화가 보여주는 여러 얼굴의 변신이 재미있었지만, 그 모든 변신체들 속에서도 일관되게 자기를 주장하는 ‘윤석화’가 두드러져서 구경하는 느낌이 강했다.
‘벽 속의 요정’에서 김성녀는, 정말 최고다.
혼자서 오가며 어머니와 아버지 딸의 역할을 연기하는데 배우 김성녀 대신 어머니 그대로, 아버지 그대로, 딸 그대로의 감정을 전달해준다. 다른 생각을 할 틈 없이, 거리를 둘 여지도 없이 자신에게로 관객을 확 끌어들인다. 연극을 보면서 그렇게 울어보기도 처음이다.
‘벽 속의 요정’은 원래 스페인 내전 때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일본 작가가 쓴 극본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안한 것이다. 해방 후 좌우익 이념 대립 속에서 벽 속으로 피신하게 된 남자, 그를 돌보는 아내, 아버지인 벽 속의 남자를 요정으로 믿고 자라는 딸.
무대의 변화도 없이 집안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 김성녀가 바삐 오가지만, 그녀는 결코 분주하지 않다. 주로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서글픈 옛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던 김성녀가 아버지의 입장으로 바뀌어 “참세상이 오리라 믿고 모든 걸 바쳤는데 지금 이 세상은 무엇인가”하고 미친 듯이 노래 부르며 피울음섞인 웃음을 터뜨릴 때, 또 곱게 자란 딸의 입장으로 어느새 변신해 웨딩드레스를 입고 식장으로 가다 돌아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아버지에게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여줄 때,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세상과 자신을 원망하던 아버지가 벽 속에서 산 세월은 40년. 얼마나 여러 번 자신을 죽였겠는가. 하지만 그 세월 후 자신이 밤마다 짠 모시드레스를 입은 딸의 모습을 보았을 때, 김성녀가 아름답게 노래했던 것처럼, 아버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살아있다는 건 아름다운 것’이라고.
돌아오는 내내 그 대사가 잊혀지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건 아름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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