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에 해당되는 글 10건
- 2011/12/03 '개발'에 대한 생각 (2)
- 2011/10/28 "도가니"와 보이지 않는 아이들
- 2011/09/29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 2011/05/31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0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4/01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2/26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0/07/10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6/29 [훅]착한 부자는 가능한가? (10)
- 2010/06/06 미자와 남한강 (8)
부산 출장을 다녀왔다. 역시 집이 좋아~
부산 출장 중 '프레시안'에 쓴 글. 길어서 접었다. (프레시안 바로가기)
11월 30일 열린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 개회식에서는 사소하지만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한국의 개발 경험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상영됐는데,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과정에 대한 내레이션과 함께 화면에는 앳된 얼굴의 '여공(女工)'들, 노란색 안전모를 쓴 건설현장의 노동자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그 다음엔 고층 빌딩이 빽빽한 서울의 풍경이 등장했고 이어진 장면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야 합니다."
이 영상이 상영된 부산 총회는 29일부터 1일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 정부 공동 주최로 열렸고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온 참가자들이 모여 '개발효과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개발효과성'이라니 무슨 골치 아픈 말인가 싶겠지만 실은 간단하다. 개발이 경제적 성장 뿐 아니라 소외된 이의 삶을 개선하고 인권을 보장하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보다 효과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30일 개회식에 연사로 나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라니아 알 압둘라 요르단 왕비 등은 개발의 근본 목표가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는 것임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그러나 개회식에서 한국의 성공적인 개발 경험을 소개하는 동영상에 등장한 노동자들은 과연 개발의 주역으로 인정받고 그 성과를 공유하고 있을까? 한국의 성공적 개발은 이제 장년층이 되었을 그 노동자들의 삶, 청년 실업자일지도 모를 그들 자녀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한국의 '성공적' 개발 경험과 이의 확산을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에 참석하는 동안 깊어졌던 의문들이다.
<부산총회 개막식날, 세이브더칠드런과 월드비전이 '건강한 원조'를 촉구하며 벡스코 광장에서 벌인 퍼포먼스>
한국의 개발 경험이 놀랍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직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에 불과했고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었던 최빈국이 불과 반세기만에 '부자들의 클럽'이라 불리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선진 공여국이 된 경험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국가 위상 제고'와 '도약'이라고 강조하는 성공적 개발 경험에서는 경제발전의 성공 사례만 부각될 뿐 성장의 이면에 가려졌고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이 누락됐다. 한국의 국가 주도형 개발과 소수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심화시킨 산업구조의 불균형, 취약한 내수 기반과 대의 의존성의 심화, 경제적 불평등과 정경유착, 사회적 취약계층과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미비 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남아 있지 않은가.
더보기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개발'에 대한 생각 (2) | 2011/12/03 |
|---|---|
| "도가니"와 보이지 않는 아이들 (0) | 2011/10/28 |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
미래도둑 2012/01/02 16:28
선배님, 미래도둑입니다. 오늘도 좋은 글 보고 갑니다. "다른" 성장, "다른" 개발에 대한 고민...정말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말레이시아에 잠시 다녀왔는데, 말레이시아의 자랑으로 알려진 쿠알라룸푸르 타워의 사무실이 많이 비어, 정부가 강제로 기업들에게 입주하라고 한답니다. 도시개발의 의미가 무엇인지...생각하게 되었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anna 2012/01/02 20:50
와~오랜만여요.업뎃이 뜸해 먼지만 폴폴 쌓이는 블로그에도 다 와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욤!
무조건 지어놓고만 보는 성장,개발에 대한 사회적 반성도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저도 열심히 공부 중~ ^^
-
공포 영화를 방불케 하는 ‘도가니’ 상영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 여당의 대책이 쏟아진다. 가해자 처벌 강화, 법인 취소 방침 등의 대책 발표가 잇따르고, 4년 전 “사회주의적”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공익이사제 도입도 실현될 태세다.
잇따른 대책들을 지켜보다 의문이 생겼다. 가령 지금 거론되는 대책들이 이미 다 있다고 가정한다면 ‘도가니’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그렇다’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는다.
‘도가니’의 아이들은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아동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장애아동은 폭력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일반 아동보다 4~5배 높다. 게다가 시설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성적 학대를 당할 확률은 일반 아동보다 4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두 경우가 결합되었으니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아동’은 폭력에 가장 취약한 약자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장애아동이 폭력에 취약한 이유는 장애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장애아동이 투명인간처럼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장애아동’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장애아동은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결여된 것에 의해 정의된다. 장애를 결손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비롯하여 적대시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차별, 반대로 장애아동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다급한 마음, 빈곤 등 이유들은 서로 다르고 복잡해도 그로 인해 빚어지는 대체적인 결과는 장애아동을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격리시킨다는 것이다. 집안에만 머물게 하거나, 우리나라처럼 대규모 시설이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에선 시설이 그러한 격리의 장소가 되기 쉽다.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범죄도 보이지 않는다.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장애아동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대개 아이들이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성인들이다. 세이브더칠드런과 핸디캡 인터내셔널이 최근 함께 펴낸 ‘장애아 대상 성폭력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을 경험한 장애 아동의 3분의 1 이상이 평소에 잘 알고 그들에게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가니’도 바로 그런 경우다.
사회적 배제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도 받기 어렵고 어느 누구도 권리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니, 장애 아동 중에선 가해자들이 지시하는 대로 성폭력이 정상적인 일이라고 알고 있거나 대처할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장애와 성폭력이라는 이중의 낙인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해도 사법기관은 장애아동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이 절망의 연쇄를 낳는 뿌리는 장애 그 자체가 아니라 장애아동에 대한 극심한 사회적 배제와 격리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보이게 하는 것, ‘도가니’의 해결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도가니’에서도 외부와의 통로가 되어준 교사와 시민단체 간사가 없었다면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 아동과 세상과의 연결 통로가 있어야 하고,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고 의견을 말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대규모 수용 시설 대신 지역사회에 열려 있고 최소한의 가족적인 환경을 보장하는 작은 규모의 그룹 홈이나 전문 위탁가정의 보호를 받도록 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세이브더칠드런과 핸디캡 인터내셔널은 장애 아동, 시설 거주 아동에 대한 별도의 국가 통계 작성과 더 많은 연구조사를 제안했다. 국내에서도 아동복지법 시행규칙 등에 이를 명문화하여 실행해야 한다.
또 하나. ‘도가니’ 대책의 모든 초점이 폭력의 제재 방법에 맞춰져 있을 뿐 피해자인 아이들에 대한 의료적, 심리적, 교육적 서비스가 간과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영화 ‘도가니’ 상영 이후 온갖 대책들이 요란하게 나오지만 정작 고통 받은 아이들을 위한 치유책을 마련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도가니’는 구체적인 사람이 짓밟히고 상처받은 사건이다. 추상적 차원의 대책만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 어제자 내일신문에 실린 글 입니다. (바로 가기)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개발'에 대한 생각 (2) | 2011/12/03 |
|---|---|
| "도가니"와 보이지 않는 아이들 (0) | 2011/10/28 |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다 보니 세계 곳곳의 재난, 위기로 인해 아이들이 곤경에 빠진 상황을 알리는 이메일을 수시로 받는다. 그런 소식을 거의 매일 듣다 보면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에 빠질 때가 있다.
동아프리카를 휩쓴 최악의 식량위기로 케냐와 에티오피아, 소말리아에서는 긴급구호가 필요한 사람이 1천2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기아와 물 부족 상태에 시달리고, 중증영양실조로 케냐의 다답 난민캠프 보건시설에 들어온 아이만 해도 올 들어 1만3천명이 넘는다. 위기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정부와 국제원조기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런가하면 파키스탄과 인도, 방글라데시에서는 대규모 홍수의 여파로, 리비아에서는 내전의 영향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떠도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이 글을 쓰는 28일엔 네팔에서 열흘 전 발생한 강진으로 피해 지역의 학교가 대부분 붕괴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지진에 우기 홍수까지 겹쳐 구조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방이 아비규환이지만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다수의 구호단체들이 여름부터 동아프리카 돕기 시동을 걸었지만 반응이 저조하다.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둔감해졌기 때문일까? 일대일 결연으로 해외 어린이를 돕겠다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나는데?
대규모 재난엔 감성에 호소하는 ‘인식 가능 희생자 효과’가 약해서 그럴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희생자 없이 ‘통계적 생명’으로 간주되기 십상인 대규모 재난의 피해자 구하기엔 사람들이 대체로 무관심하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올해 3월 일본 대지진 때 정부가 난색을 표할 정도로 지원이 쏟아진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동아프리카의 위기 등이 이른바 ‘조용한 재난 (Silent Emergency)’이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자들에겐 조용할 리 없지만 이 재난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에서다. 사실 세계를 놀라게 한 초대형 자연재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긴급구호 상황, 특히 분쟁이나 기근으로 인한 재난에 언론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보통 긴급구호 상황이 발생하면 그 직후 모금을 시작하는데, 여론의 주목도에 따라 규모에 큰 차이가 난다. 세이브더칠드런 영국이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태 때 2억 원을 모금하는 데 들인 시간은 단 하루였지만 지난해 니제르 식량위기가 발생했을 땐 같은 금액을 모으기까지 49일이 걸렸다. 긴급구호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있는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재난 발생 직후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긴급구호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대상은 어린이들인데, 재난이 발생한지 36시간이 지나면 생존율이 절반으로, 72시간이 지나면 10% 미만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주목받지 못하는 ‘조용한 재난’ 상황일 때 이 10% 미만에 처한 아이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난다.
극심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재해 발생 빈도가 급증한 상황에서 이제 긴급구호는 ‘일어날 것인가 말 것인가’(If)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 것인가’(When)의 문제가 되었다. 현재 분쟁과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 150명 중 한 명꼴인데 그 중 절반은 아이들이다.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넘어서기 위해 세이브더칠드런 영국, 호주, 이탈리아 등에서는 미리 기금을 적립해두었다가 자연재해나 식량위기 등이 발생할 때 피해를 입은 어린이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신속한 피해 복구와 재활재건 및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긴급구호아동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같은 기금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곳간을 미리 채워 미래의 재난에 대비하자는 긴급구호아동기금은 사태 발생 직후의 여론과 감성적 호소에 크게 좌우되는 기존 관행으로 보면 생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해결하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쓰이게 하려면 어떤 방식이 나은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긴급구호도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때가 되었다.
오늘자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바로 가기)
긴급구호아동기금 참여하기 (바로가기)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개발'에 대한 생각 (2) | 2011/12/03 |
|---|---|
| "도가니"와 보이지 않는 아이들 (0) | 2011/10/28 |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아빠보다 더 큰 어른이 되면 아빠를 패주고 싶어요.”
이 한 마디를 읽는 순간, 움찔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이를 만난 상담원의 이야기를 자세히 청해 들었다.
열 살 민수(가명)의 머리엔 50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의 원형탈모가 있다. 한 달 전쯤 아버지에게 막대기로 심하게 맞은 뒤 생겼다고 한다. 민수가 아버지에게 맞기 시작한 건 네 살 때부터다. 멀쩡한 직장인인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한 채 귀가해 아들과 아내를 때렸다.
6년 넘도록 두들겨 맞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의 마음이 온전할 리 있을까. 민수는 학교에서도 수업 도중 갑자기 나가버리는 건 예사고 눈에 살기가 가득한데다 입이 험해 친구가 없다. 유일한 낙은 좀비를 죽이는 온라인 게임이다. 민수는 절대 이 게임을 끊을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를 좀비라고 생각하고 게임을 하면 그나마 속이 좀 후련해지기 때문이란다.
담임선생님이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하자 민수는 그러면 자기가 맞아죽는다고 펄쩍 뛰었다. 보다 못한 이웃이 신고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나섰지만, 어렵게 연락이 닿은 민수 엄마는 내리 울면서도 남편의 보복이 두렵다며 끝내 상담을 거부했다.
민수네 이야기가 ‘이상한 가족’의 예외적 사례로 들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해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다룬 아동학대사례 5천657건 중 83%의 가해자가 부모다. 또 88%는 집안에서 일어난다. 10년째 지겹도록 변하지 않는 수치다.
마음이 답답해져 민수의 이야기를 주변에 들려주자 다들 안타까워하다 못해 화를 냈다. “아니, 그걸 보고만 있으면 어떻게 해!”
누군들 보고만 있고 싶겠는가. 경찰에 신고하면 될까? 아동복지법엔 수사기관이 학대 현장조사에 동행할 의무가 없으므로 강력범죄 수준이 아니면 경찰은 꿈쩍 안 한다. 그럼 아버지의 부모 자격을 박탈하는 건 가능할까? 민간인인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가해자가 휘두르는 흉기를 피해 간신히 아이를 데리고 나온들 부모가 찾아와 ‘내 자식 내놔라’ 우기면 도리 없다. 한국 사회에서 친권은 너무나 강력하다. 현행법상 친권 제한 청구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장이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학대받는 아이의 대다수는 다시 부모에게 돌아가고, 학대는 계속된다. 혹시 민수 아버지를 ‘새사람’으로 만들 순 없을까? 가해 부모에게 상담과 교육을 받게 하는 강제조항이 없으므로 본인이 싫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이런 악순환을 그만 끊자고, 사법당국이 엄중하게 대처하고 친권 제한이 실제로 가능하게 하며 아동학대 신고율을 높이자고 아동학대 방지법 제정안, 아동복지법 개정안 등이 이미 발의되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법안 처리에 별 관심이 없다. 18대 국회에서 노인관련 법안은 가결, 대안폐기, 철회를 포함해 26건 처리된 반면 아동관련 법안은 겨우 1건 처리됐고 이마저 발의한 의원이 자진 철회한 경우였다고 한다. ‘표’와 상관없는 아이들 문제라 그런 모양인데 학대예방 대신 투표연령 낮추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나……
남의 나라와 비교하기 싫지만 영국에선 일곱 살 소녀 빅토리아 클림비가 이모에게 폭행당해 숨졌을 때 의회조사단이 구성됐고 400페이지짜리 조사보고서가 나왔다. 아동법이 전면 개정됐고, 가해자는 종신형을 받았다. 10년 전 이야기다. 반면, 올해 초 서울에서 세 살배기 아이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지고 쓰레기장에 버려졌을 때 국회에선 미동도 없었고 가해자는 최근 5년형을 선고받았다.
6월 국회가 열린다. “아빠를 패주고 싶다”는 민수가 이대로 일그러진 채 자라서 어른이 된 사회를 한번쯤 생각해보길 의원들에게 권한다.
--- 오늘자 동아일보에 '아동학대, 국회는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바로가기) ---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개발'에 대한 생각 (2) | 2011/12/03 |
|---|---|
| "도가니"와 보이지 않는 아이들 (0) | 2011/10/28 |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
lebeka58 2011/05/31 09:37
세상에 말이 부모지~~ 정말 부모라고, 아니 사람으로조차 자격 없는 사람이 있다는거 저도 요즘 알았어요. 어떤 사회시설에서 본 것에 의하면 장애아의 아버지가 오히려 아이에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가해자란 사실에 분노를 넘어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 다행히 그 아이를 아버지로 부터 간신히~~ 격리해서 복지시설에 보내져서 그야말로 다행이었지만요. 글쿠요 나실 때 괴로움 다잊으시고~~라는 노래 속의 부모가 아닌 사람들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아이들을 국가와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는거 정말 절실해요. 개인이나 종교단체가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산나님 말씀대로 법제화 되어야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어요.
-
sanna 2011/05/31 23:48
그런데 솔직히 어느 세월에 법제화가 될진...
아주 구체적인 항목으로 들어가면 사람들마다 또 의견이 분분해서, 그 이야길 다 듣다보면 저같은 비전문가는 또 헷갈리기 시작하고....
정작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팔짱끼고 지켜보고 계시고, 저처럼 생각 짧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뛰어본들 뭔 소용이 있을까마는....하는 데까진 해봐야지요.
(그냥 오늘은 너무 힘이 빠지는 하루여서 괜한 푸념이네요 ^^
-
-
nabi 2011/05/31 11:45
포기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애쓰면 반드시 나아질꺼예요.
삼십년 전에는 어머니에게 친권이 없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고, 어림없는 일이지요.-
sanna 2011/05/31 23:50
헐~삼십년전에 그랬나요? 정말 어이없네요. 삼십년후에 미래 세대들도 "옛날엔 부모가 자기 아이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단다"하고 황당해하는 날이 올까요?
-
‘나는 가수다’와 ‘위대한 탄생’에 열광하는 사람과 장안의 화제인 그 두 TV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사람이 만났다. 오랜 친구인 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A: 백청강 정말 대단하지 않아? 걔가 이기니까 기분 좋더라.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B: 흑룡강은 알겠는데 백청강은 또 뭐냐?
A: ……농담이라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마. 돌 맞을라. ‘위탄’ 안 봐? ‘나가수’는?
B: 안 봐. ‘나가수’로 뜬 임재범 노래는 나중에 들었지. 잘하대. 근데 꼭 그런 서바이벌 게임을 해야 해? 나는 정말 싫던데.
A: 서바이벌 게임이야 형식일 뿐이고 사람들이 노래를 좋아하니까 그 자체로 즐기는 거지. 워낙 잘하잖아.
B: 그럼 노래만 즐기면 되지 옥주현이 나올 자격 있네 없네 트집 잡는 이유는 뭔데? ‘음악여행 라라라’같은 프로그램도 결국 없어졌잖아. 노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서바이벌 예능’에 열광하는 거야.
A: 서바이벌 예능에 열광한들 그게 뭐 어때서? 경쟁은 인간 본성인데 서바이벌 게임을 좋아하는 게 왜 문제야? 자연 선택 앞에서 이기는 개체만이 살아남는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경쟁 속에서 공정한 룰에 따라 연변 청년, 상처 많은 남자가 스타, 영웅이 되니까 감동하는 거지.
B: 공정은 무슨…… 평가하고 단죄하는 쾌감을 즐기는 건 아니고? 게다가 경쟁이 본성이라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고 단정할 순 없지. 사람은 진화해온 대부분의 시간을 물질 분배가 평등한 수렵, 채집사회에서 보냈고 본성도 그때 주로 틀이 잡혔는데, 그런 사회에선 경쟁보다 협력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되레 사람은 본능적으로 경쟁을 싫어할지도 몰라. 솔직히 말해 봐. 너는 경쟁이 좋아? 이기는 게 좋지, 경쟁하는 상황이 좋은 건 아니잖아?
A: 내가 경쟁하는 건 별로지만…… 남들 경쟁 보는 건 재미있잖아? 그게 뭐가 문제냐고! 사람들은 승자, 패자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해. ‘위탄’이나 ‘나가수’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와 인기 드라마를 좋아하는 게 내가 보기엔 크게 다르지 않아. 영웅이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미인을 얻는 이야기들 생각해봐. 그것도 결국 다 서바이벌 게임 아냐? 모든 감동적인 이야기는 서바이벌 게임의 구조를 갖고 있어. 사람들은 거기서 생존의 전쟁터에서 필요할지도 모를 정보를 얻는 거야.
B: 하지만 내 말은 왜 점점 더 경쟁이 모든 분야에서 심해져만 가느냐는 거야. 요즘은 아나운서도 오디션으로 뽑고 '나는 작가다‘로 소설가 지망생도 줄 세우잖아.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무한경쟁의 압박이 너무 사람들을 몰아붙여서 심성이 거칠어진 게 아닌가 싶은 거야. 줄 세워서 순위 매기고 탈락시키는 예능에 열광하는 자기 마음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고.
A: 비약하지 마. 서바이벌 예능에서 경쟁 상황을 자꾸 만드는 건 요즘 뭐가 더 심해져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좋아해온 승패의 스토리를 압축해서 주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야.
B의 말문이 막힐 즈음, 둘의 논쟁을 인내심 있게 지켜보던 식당 점원이 “손님, 계산 먼저 해주세요”하는 바람에 둘은 서먹하게 헤어졌다. 며칠 뒤 둘은 우연히 마주치게 됐는데…….
A: 아, 정말 힘들어 못살겠다. 회사에서 중국 후발주자가 곧 따라잡네 어쩌네 하며 볶아대는 통에 살 수가 있어야지. 난 그 ‘세계화’, 정말 싫다. 내가 우리 동네 미인만 하면 되지 왜 전 세계 미인과 경쟁해야 되냐고! 점점 더 승자독식인데 경쟁자는 늘어가니……
푸념을 늘어놓던 A와 B의 눈이 문득 마주쳤고, 둘은 입을 다문 채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우정이 서먹해질 위기를 넘기고 의견 일치를 본 거였다. 현실 세계의 경쟁은 이야기도, 감동도 없이 팍팍해져만 간다고……
--- 오늘자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바로가기) ----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가니"와 보이지 않는 아이들 (0) | 2011/10/28 |
|---|---|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 [훅]착한 부자는 가능한가? (10) | 2010/06/29 |
-
lebeka58 2011/05/31 23:39
그쵸~~ 경쟁에 중독된건지 아니면 피말리는 경쟁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즐기는건지~~ 저두 B친구말에 동감이어요. Project Runway라는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은 후, 이 컨셉 배낀 거 정말 신물나게 많아서 완죤 짜증이 ~~ '나가수'의 경우 이미 다 자기 빛깔로 노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인데 , 뭘 기준으로 줄을 세운다는 건지요. 메니저라는 사람들이나, 청중들이 젼문성이 있는 사람들두 아니더만요. 기도 안차는 프로란 느낌이 살알짝~~ 들더라구요.
-
sanna 2011/05/31 23:53
ㅎㅎㅎ B에 동감하시는군요. 오늘 후배가 저더러 A와 B중 어느쪽이냐 묻길래, 전 계산 먼저 해달라는 점원이라고 대답했어요.^^
전 '나가수'를 안봐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인지 잘 모르지만(제가 안보는 건 순전히 고장난 TV 고치기 귀찮아서입니다 ^^
주변에 참 괜찮은 친구들이 그거 보면서 열광하는 걸 보고 이런 소재로 글 써볼 생각을 하게 됐지요.
-
-
nabi 2011/05/31 11:52
나야말로 흑룡강만 아는 사람이라서리..ㅎㅎ
점점 세상은 제 정신을 지키며 살기가 어려워지는 거 같지요?
정신없이 내달리는데, 어디를 향한건지... -
Yeti 2011/06/02 01:48
"경쟁의 총량" 보다는 "경쟁의 집중도"의 문제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선택하기를 포기하고 일단 뛰어야 하니.. 그래서 전.. 승자라도 행복했으면.. 좀 더 바란다면, 다양한 곳에서.. 행복한 승자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3월31일자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바로가기)
인도네시아 여성 아데의 하루는 아침 6시에 시작된다. 임신한 여성이 있거나 어린 아이가 있는 집마다 들러 임산부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신생아들의 몸무게를 달고 예방접종을 하며 간단한 질병을 치료한다. 오토바이택시를 타고 오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매주 20~30곳의 집을 방문한다. 자신이 만삭일 때에도 한 달에 417명의 아이 몸무게를 재고 23명의 아이 예방접종을 하고 33명의 임신한 여성을 돌보았다. 5천여 명이 사는 마을에서 여성들이 출산을 하거나 아이가 아프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그다. 아데는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다. 15년째 이 일을 해왔지만 그저 마을의 평범한 주부일 뿐이다.
최근 내가 일하는 단체가 인도 델리에서 연 ‘에브리원 캠페인’ 포럼에서 나는 이처럼 오지 마을에서 영유아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분투하는 평범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에브리원 캠페인’은 2015년까지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을 3분의2까지 줄이자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4초마다 한 명씩 5세 미만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레의 표현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인 것이다.
설사나 폐렴처럼 치료하기 쉬운 질병으로 아이들이 맥없이 죽어가는 배경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심각한 글로벌 위기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저개발국, 특히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보건의료 인력들의 ‘엑소더스’(대탈출)다.
전 세계 질병의 24%가 아프리카에 창궐하지만 아프리카의 보건의료 인력은 전 세계 3%에 불과하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의사들의 3분의 1 이상이 유럽, 북미, 호주 등으로 떠난다. 심지어 에티오피아 출신 의사가 에티오피아보다 미국 시카고에 더 많다는 말도 나돌 정도다. 자기 나라에 남아 있더라도 도시로 탈출한다. 그러다보니 시골 마을엔 가장 가까운 병원이 200km 이상 떨어져 있거나 누가 병원을 지어준다 해도 일할 의사나 간호사가 없어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는 아이들에게서 십자가를 걷어낸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아데와 같은 여성들이 중요해진다. 마을에서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도 떠날 계획이 없는 여성들, 평범한 동네 이웃과 가족이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마을의 보건요원으로 일하는 방식이 영유아 사망을 줄이는 유력한 대안인 것이다.
델리의 포럼에 참석한 아난드 뱅 박사의 ‘서치((SEARCH· 지역보건교육실행연구회) 프로젝트’도 그 같은 사례였다. 세계에서 영유아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인도에서 사망하는 아이의 60%는 집에서 숨진다. 이 점에 주목해 뱅 박사는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마을 여성들을 지역 보건요원으로 훈련시켜 집집마다 다니며 임산부 영양관리와 출산을 돕고 신생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1984년 뱅 박사의 부모에 의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신생아 사망을 50%까지 줄였다는 효과가 입증되어 인도의 공식 보건의료 정책에 포함됐다.
뱅 박사는 마을 보건요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을 ‘최전선’의 보건요원들이라고 불렀다. 인도뿐만이 아니었다. 네팔에서도 마을마다 여성 보건 자원봉사자들을 양성한 뒤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자 수가 1991년 161명에서 2006년 61명으로 줄었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아프가니스탄은 여성이 밖에서 일하는 것조차 잘 허용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미국이 폭격을 시작한 2001년 거의 없다시피 하던 마을 보건요원이 지금은 2만2천명으로 늘었다.
큰 이상은 거창한 방식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자는 국제적 목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웃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살피는 아데와 같은 여성들의 발걸음에 의해 이뤄진다. 작은 실천에서 세상이 바뀐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 한다면, 그 최전선은 마을이다.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 [훅]착한 부자는 가능한가? (10) | 2010/06/29 |
| 미자와 남한강 (8) | 2010/06/06 |
-
UFO 2011/04/04 22:35
십여년 전 칼리만탄이라고 갔었지........
깊은 밀림 속 원주민들 대단했어...
가난한 원시의 모습은 탈피해야 겠지만....
그런 곳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발전은 있겠지...
당신같은....홧팅!! -
사복 2011/04/08 18:46
큰 이상은 거창한 방식으로 달성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콕 와 닿습니다... 마지막 문단은 특히 막 씹어먹고 싶어요.. 여튼,
떠드는 사람은, 떠드는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찾아가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도 해봅니다...-
sanna 2011/04/09 22:43
어맛~사복님 오랜만!!!!! 잘 지내시죠?
RSS 리더기로만 블로그들을 접하는지라 RSS 막아놓은 사복님 블로그를 넘 오래 못갔다는 생각이 이제야 듭니다. 이런이런.....ㅠ.ㅠ
-
* * *
얼마 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 A국출신 여성 B씨가 아이를 낳았다. 낯선 곳에서 살아갈 결심을 한 난민 신청자이지만 아이는 언젠가 고국에 보내고 싶은 마음에 B씨는 아이의 국적 취득 절차를 밟기로 했다. 한국엔 A국 대사관이 없어서 가까운 나라 주재 대사관에 연락해야 한다. 여기까지, 뭐 별 일 아닌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정부의 박해를 피해 탈출한 난민 신청자가 본국 대사관에 연락해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난민은 정치적 견해, 종교나 인종 또는 특수한 집단적 정체성으로 인해 가해지는 억압과 박해를 피해 자신의 국가에서 탈출한 사람들이다. 탄압의 주체가 정부가 아닌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난민 신청자들이 본국 대사관에 연락하는 일은 탈출 과정에서 수없이 갈등했을 신념 문제를 없던 것으로 한 채 “나 여기 있소”하고 자진 출두하는 거나 마찬가지의 심리적 부담을 주는 일이다. 따라서 B씨는 아이를 위해 어려운 결심을 한 것인데, 그 뒤의 과정은 쉬웠을까?
이웃나라 주재 A국 대사관은 B씨의 아이가 한국 땅에서 태어났음을 증명하는 정부의 ‘공문서’를 요구하면서 국적 부여를 거부했다. 한국 정부는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 아니면 아이의 출생 신고를 받지도 않거니와 출생 증명을 발급해주지 않는다. 조산원에서 떼어준 서류는 외국에까지 가서 한 아이의 출생을 증명하는 공적인 효력이 없다. 결국 B씨를 돕던 단체가 외국 아이의 출생 신고를 받지 않는 한국 법을 설명하면서 지원에 나섰지만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출생 신고와 등록은 그야말로 존재에 대한 증거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 말고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에 대해 법적 인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출생에 대한 공적인 기록이 없는 아이는 누구에게나 보장된 기초적 권리조차 누리기 어렵다. 이 때문에 유엔아동권리협약 7조는 모든 아이가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명시해 두었다. 난민 신청자이든, 이주민이든, 부모가 해당 국가의 국적권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아이들은 태어난 지역의 법적 관할권을 지닌 국가에 등록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땅에서 자국 대사관에 연락하기 여의치 않은 난민 신청자가 아이를 낳으면 이들은 피와 살로 현존하는 존재인데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된다. 아이는 무국적자가 되고 현재 국내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법적 절차가 없다.
당장은 국적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더라도, 출생을 증명해주는 ‘공문서’가 없다면 이 아이들은 자라서도 무국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의료, 교육 서비스를 받거나 부당한 징병과 범죄 기소로부터 보호받고 결혼하거나 운전면허증을 갖고 투표하고 일을 하면서 신용을 인정받을 경로 자체를 근원적으로 차단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한 아이가 어느 땅에서,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정부가 기록해주는 것은 한국 정부가 속인주의에 의거한 현행 국적법을 바꾸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최근 세이브더칠드런,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위한 NGO 그룹 등 12개 국제 어린이, 난민 관련 인권단체는 공동 성명을 내고 모든 국가에서 모든 아이들에 대한 출생 등록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출생 등록은 인권 실현의 가장 중요한 선결 요건이며 아이를 폭력과 착취,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첫 번째 단계다. 하지만 유엔난민기구의 2009년 기초조사에 따르면 당시 103개 난민 캠프에서 태어난 신생아 중 공식적인 출생 증명을 발급받는 아이는 절반도 안 되는 46%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에 체류 중인 난민 신청자는 2천915명이고 이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222명이다. 난민 신청은 꾸준히 늘지만 한국은 여전히 이들에게 가혹한 땅이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OECD 30개국 평균 난민보호비율은 인구 1천명당 2명이지만 한국은 인구 100만명당 2명에 불과하다. 억압과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이들 앞에 놓인 것은 차별과 배제뿐이다. 아주 냉정하게 말해 어른은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른 결정을 고난으로 감당한다고 쳐도 난민 신청자의 아이들에게까지 그만큼의 고난을 함께 짊어지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 땅에서 난민 신청자의 아이들은 출생 등록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영유아 때 받아야 하는 필수 예방접종을 포함해 어떤 종류의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한다. 한 사회의 수준을 보려면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자의 삶을 보라고 했다던가. ‘보이지 않는 아이들,’ 난민 신청자의 아이들이 그들이다.
사진 ⓒ Save the Children = 난민 캠프의 한 아이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 [훅]착한 부자는 가능한가? (10) | 2010/06/29 |
| 미자와 남한강 (8) | 2010/06/06 |
Trackback : http://www.bookino.net/trackback/382
-
Subject 지저깨비의 생각
2011/02/27 17:41
한국은 여전히 이들에게 가혹한 땅이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OECD 30개국 평균 난민보호비율은 인구 1천명당 2명이지만 한국은 인구 100만명당 2명에 불과하다. 억압과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이들 앞에 놓인 것은 차별과 배제뿐이다.
-
nabi 2011/02/26 10:35
조간 신문에서 읽었어요.
반가워서, 그 동안 블로그를 방치(?)한 데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군... 제 풀에 이해하고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직함을 보고는
한마디 격려라도 하고파서 부랴부랴 들어왔지요.^^
(산나님을 가만히 지켜보는 따뜻한 눈 하나 추가입니다.) -
-
김상훈 2011/03/01 13:49
최근 엄청 바쁜 일정에 시달리다 이제야 뒤늦게 봤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생각이 참 복잡해집니다. 동티모르에서 봤던 아이들 생각도 나고, 제 아이 생각도 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선배.
-
연후 2011/03/04 00:31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런 면에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일교포, 재미교포가 겪는 차별에 대해서는 분개하면서도 이런 기본적인 인권 상황에 대해서조차 모른척 외면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언제쯤 나아지려나요...
-
narschiss 2011/03/16 19:29
난민들이 우리나라에 있군요. 저는 금시초문이에요.^^;;
난민들 생각은 평생 해보지도 않았어요. 글에 적힌대로,
난민들을 위한 정부의 조처가 필요하겠군요. 그런일은
하는 공무원이 따로 있는 건가요? 아니면, NGO단체에서
하는 건가요?
오늘 아침자 한겨레 신문 '문화칼럼'에 쓴 글입니다.....
* * * * *
이런 책들이 꽂힌 책장이 있다. 『내 몸 사용 설명서』 『우먼 바디 포 라이프』 『기적의 휘트니스 30분』 『달리기와 부상의 비밀, 발』…. 혹시 ‘몸짱 아줌마’의 책꽂이? 또 이런 책장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 『죽음 앞의 인간』『죽음과 죽어감』『떠남 혹은 없어짐』…. 이건 우울증 환자의 책장?
둘 다 내 책장의 이웃 칸에 나란히 꽂힌 책들이다. 나는 몸짱 아줌마도, 우울증 환자도 아니다. 몸 쓰는 일, 죽음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몰두했던 한때의 관심사, 변덕스러운 취향의 흔적이 책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뿐이다. 누군가 둘 중 하나의 리스트만 갖고 내 취향을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려 든다면 몹시 억울할 것이다. 소지품이나 생활공간의 특성으로 사람 성향을 판별하는 심리 기법인 ‘스누핑(snooping)’에서도 특정 단서가 늘 특정 성격을 가리킨다는 따위의 완벽한 답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기본 전제다.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씨 서재의 책들이 요즘 구설에 올랐다. 그가 문화방송 ‘피디수첩’과 인터뷰할 때 배경에 비친 책들이 『한국 민중사』『현대 북한의 이해』『혁명의 사회이론』등 평범하지 않아 문제라는 거다. 글쎄다. 스누핑 기법을 설명한 베스트셀러 『스눕』을 읽고 난 뒤 내 눈엔 그 책장이 이렇게 보였다.
‘서재 전체의 10분의 1도 안될 분량의 책 제목만으론 현재 정치 성향은 알 수 없고, 출간된 지 죄다 10년이 넘는 책들을 주제별로 꽂아놓은 걸 보면 꼼꼼한 장서가인데 그 사이에 주제와 관련 없는 『슬픈 열대』가 뜬금없이 끼어있는 걸로 봐선 자주 이용하지 않는 책장이 아닐까….’
엉터리 스누핑은 이쯤에서 접고, 의사가 경제평론가가 되고 공무원이 소설가가 되는 멀티태스킹의 시대에 기업인이 합법적으로 출판된 역사, 사회과학 책 좀 읽었기로서니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공들여 화면 흐림 처리를 한 ‘피디수첩’도 괜한 짓을 했다. 정작 놀라운 것은 제목이 확인된 책 10권 남짓을 갖고 한나라당 대변인처럼 그가 “특정 이념에 깊이 빠진 편향된 사고의 소유자”라고 단정 짓는 판단의 신속함이다.
면밀한 관찰과 이해의 수고를 피하려는 사람들의 비합리적 신념의 형성 과정은 사소한 단서가 발견되면 이를 근거로 전체가 참이라고 판단하는 비약 논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현대에도 마녀사냥이 흔한 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 인류학자 브루스 노프트(Bruce Knauft)가 80년대에 연구한 게부시(Gebusi)족의 마녀 조사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들에게 마녀는 나뭇가지 뭉치로 마법을 부리는 사람들이다. 조사 대상자의 거주지 근처에서 나뭇가지 뭉치가 발견된다. 그럼 그 사람은 마녀다. 나뭇가지 뭉치야 숲속 공터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데도 이 허술한 증거를 들어 게부시 족은 숱한 사람을 처형했다. 어리석다고? 이들의 믿음과 “좌편향인 사람은 ‘혁명’ ‘북한’ 관련 책을 읽는데, 김 씨의 책장에서 그런 책들이 발견됐으니 그는 좌편향”이라는 논리에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설령 김 씨가 서재 전체를 혁명, 북한에 대한 책으로 다 채웠다고 해도 그가 관심 분야가 협소하고 지루한 사람이라는 인상은 줄지언정 불법사찰을 받아 마땅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취향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런 험한 꼴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는 건 야한 옷차림의 여자는 성추행을 당할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해자에게 범죄 발생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불법사찰만큼이나 비열하다.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 [훅]착한 부자는 가능한가? (10) | 2010/06/29 |
| 미자와 남한강 (8) | 2010/06/06 |
-
지아 2010/07/10 14:31
진정한 언론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몇군데나 있을까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아직도 끝없이 통제 감시 당하고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시간이 불순한 책 몇권 소지한 제목으로 체포되고 고문당했던 20여년전보다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형식적으로나마 사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있긴 있나. 노르웨이? 핀랜드? 독일? maybe or maybe not.
-
sanna 2010/07/10 20:46
나는 권리의식이 높질 못해서 "진정한" 언론사상의 자유까진 바라지도 않지만(통제 없는 권력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어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난당하고 탄압받는 수준은 넘어섰으면 좋겠어.안그러면, 너무 후지잖아!
-
-
광서방 2010/07/10 15:33
잘 읽었습니다. 조리있게 쓰신 말씀 딱 공감 갑니다. 저도 저 기사 딱 보고 '이런 것도 기사라고 썼나..'라면서 좀 많이 답답했습니다. 더불어 '스눕'도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주말 되시구요~ -
nabi 2010/07/10 22:47
산나님 책(산티아고) 읽고, 이렇게 가끔 블로그에 들어와 보고 하다가
오늘 아침 신문에서 얼굴까지 보니까, 산나님이 정말 '아는 사람' 같아...^^
나 혼자 친근히 느끼고 있답니다. (그 시초는 inuit님 블로그에서부터^^)-
sanna 2010/07/10 23:49
하하~반가워요. 블로그에 가보니 자전거를 배우시는군요.
예전에 저랑 친한 기자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가고 싶은 단 하나의 기억"을 묻는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어떤 분이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의 기억을 가져가겠다고 답하셨어요.
(아마 소설가 김영하씨였던 듯...정확하진 않습니다)
나비님 자전거 배우신 모험을 읽다보니 처음 자전거 배울 때의 설렘, 불안,
그리고 드디어 누가 잡아주지 않아도 직선상의 두 바퀴를 나 혼자 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흥분이 고스란히 생각나네요.^^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날, 처음 가는 길' 생각하면서,저도 뭘 새로해볼까 궁리중이랍니다 ^^
감사드려요.
-
-
Ocean1021 2010/07/12 13:10
1980년대 30대가 지금은 60대이니 이들이 지금이 은퇴러시이니 이런 개인의 자유인권침해같은것은 없어지지 않을까? 얼마나 40대이하를 무시했으면 그럴까? 블로그에 글 남긴건 처음이네 정보가 많고 좋네^~^
-
-
sanna 2010/07/16 13:08
나도 오래된 책들을 갖고 있던 이사오기 전 책장을 뚝 짤라 사진을 찍는다면 남들은 기함했을 것..
정말 네 말대로 때론 생각의 찌꺼기, 허물에 불과할때도 많은데 말이다.
-
* * *
최근 ‘기부 서약(Giving Pledge)’운동을 시작한 미국 갑부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부부에 대한 칭찬이 국내에서도 자자했다. 미국의 억만장자들에게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자고 권유하는 운동을 일으킨 ‘착한 부자’들에 대한 놀라움과 부러움이 앞섰고, 한국 부자들은 뭐하느냐는 질책이 뒤따랐다. 어느 신문 사설은 “미국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도록 도움으로써 자기가 사는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왔다”면서 ‘기부 서약’을 체제수호 운동으로 해석하는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했다.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 [훅]착한 부자는 가능한가? (10) | 2010/06/29 |
| 미자와 남한강 (8) | 2010/06/06 |
-
Playing 2010/06/29 14:22
안녕하세요 ~ 좋은(? 눈물나는) 글 잘 봤습니다
확실히 국내 여건 상 너무 먼 이야기인 거 같네요
아직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가 정착이 된 적이 없고, 과도기에 머문 거 같습니다
조선시대에서 식민시대로.. 그리고 해방과 전쟁.. 독재와 군사 쿠테타, 이어지는 군사 독재와 군사 정권.. .. ..이어졌고
중간에 민주화 운동이 크게 두번 일어났고, 피 흘린 만큼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다시 민주화 세력이 3당합당으로 지역차별과 기회주의의 처절히 무너지면서 민주화 세력 전멸 직전까지 갔고.. 현재도 민주화 세력은 힘이 없지요
겨우 '되찾은 시대'는 10년이라는 너무 짧은 기간에 끝나며.. 다시 검찰과 언론을 주무르는 힘과 돈을 갖춘 그들의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면 될까요?
점점 '천민민주주의'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으니.. 세번째(이미 일어났었나요~?!) 또는 네번째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는 시기는 가까이 온다고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검찰과 언론은 다른 권력집단으로 부터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정상이라고 배웠는데.. 그것이 오히려 국민을 상대로 권력집단의 권리(?!이익)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말만 민주주의고 실제로는 제 2의 신분제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추노2가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닐런지)
우리나라 정서와 비슷하다는 이탈리아는 정치와 메스컴을 점령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스포츠 구단을 거느리고, 가장 돈을 잘 버는 회사를 갖춘 권력이 언론과 검찰을 마음껏 휘두르고 있다고 대학 기사에서 봤었습니다
그들의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노력(민주화운동)이 이전 신분제도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진 언론에 의해 왜곡당하고 검찰에 의해 조작되면서 외국에 나가있는 이탈리아 인들이 분노하고 있다구요 ㄷㄷ;;
그런데 요새 보면 점점 대한민국이 이탈리아의 뒤를 바짝 쫓아가는 거 같아서 씁쓸합니다-
sanna 2010/07/02 01:01
계속 후진하는 차에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예요. 이미 지나왔기 때문에 이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던
많은 가치들이 와장창 깨지고 뒤로, 뒤로 돌아가는 느낌...많이 답답합니다.
-
-
-
지아 2010/06/30 11:05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도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 돈을 모았느냐도 어떻게 쓰느냐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르게(착취하지 않고 독점하지 않고 사기치지 않고) 일해서 백만장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착한 부자는 단어 자체가 참이 될 수 없는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카네기와 락펠러는 파업 노동자를 기관총으로 짓밟은 최악질들이었죠. 저질 기술과 마켓팅 전략으로 시장을 독점한 빌 게이츠도 IT쪽에서 일하는 저로선 곱게 봐지질 않구요 ㅋㅋ 착한 부자라. 그들이 진정으로 명예로울 수 있는 길은 아마 가진것을 다 내놓고 그동안 부를 쌓아온 과정에서 저지른 모든 죄를 참회한 후에라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해마다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비영리 사회 단체와 자선 사업에 기부하고 있지만 돈을 기부받은 단체들은 절대로 시스템을 '전복'시킬만한 혁명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것이 암암리에 전제조건으로 깔려 있죠.또 기업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기부한 돈만큼 혹은 그 이상의 세금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실 미국 비영리 사회단체의 진보성과 변혁성이 대기업들이 이끌고 있는 큰 재단들의 돈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구요. "Revolution Will Not be Funded" 이게 냉정한 현실이지요. -
UFO 2010/07/05 18:10
산나님..제가 NY출장갔다가 바로 숙직하고
촌놈처럼(사실 촌놈) 시차극복을 못해
정신없이 헤매느라 식사자리에 못갔습니다.
KSH샌님에게 멋진 상담 따로 모시겠습니다.
이철희씨도 뵙고싶다하고여...
책은 언제 나오져? -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긴급구호의 부익부 빈익빈 (0) | 2011/09/29 |
|---|---|
| 민수와 6월 국회 (4) | 2011/05/31 |
| '나가수'와 두 친구 (6) | 2011/05/30 |
| 세상을 바꾸는 최전선은 마을 (4) | 2011/04/01 |
| 보이지 않는 아이들 (10) | 2011/02/26 |
| 타인의 취향 감별법 (12) | 2010/07/10 |
| [훅]착한 부자는 가능한가? (10) | 2010/06/29 |
| 미자와 남한강 (8) | 2010/06/06 |
-
-
-
sanna 2010/06/08 23:52
김문수 지사는 오늘 일케 좋은 4대강 공사를 왜 안하냐며 "다른 데서 안하면 경기도에서 다 하겠다"고 했다네.
아 증말...캐짜증......
-
-
-

Prev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