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0 01:21

본 투 런-달리기와 사랑

"사랑하는 능력과 달리는 능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비질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원리는 명백하다. 이 둘은 욕망을 따르려는 마음을 완화시켜주고, 원하는 것을 한쪽에 밀어놓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인내하고 용서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도록 해준다. 사랑과 속도는 대부분 공생관계에 있으며 우리의 DNA 가닥들만큼이나 서로 닮았다.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달리기 없이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통달하게 되면 다른 쪽도 통달하게 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본 투 런' 중에서 -

- 달리기에 대해 내가 읽은 것 중 최고의 찬가. 
무릎 부상으로 은퇴(씩이나! 얼씨구~) 하였으나 왕년에 러너 (음....하프 마라토너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였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쏙 드는 책.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장거리 선수로 알려져 있는 중앙아메리카 인디언 타마우마라 족을 취재하고 그들과 미국 최고의 울트라러너들이 벌인 경주를 기록한 책. 이런 취재가 가능했다는 게 부럽고 질투난다. 
리뷰를 써볼까 하고 컴퓨터를 켰으나 느린 노트북 켜지는동안 시들해져서, 그저 인상깊은 대목 코멘트만. 

- 저자의 생각은, 폭력, 비만, 질병, 우울, 끝없는 욕망 등 인간의 모든 문제는 '달리는 사람들'로 살기를 멈추면서 시작되었다는 것. 달리기에 헌신한 사람들의 전당에 에이브러햄 링컨 (달리기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소년은 없었다)과 넬슨 만델라 (뛰어난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감옥에서도 매일 제자리에서 7마일을 뛰었다)가 들어있는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거다. 행복하게 달리는 타마우마라 족에게서 삶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달리기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기질'이었다. 그 먼 거리를 달리게 만드는 힘, 인간의 인내력에서 그만큼의 도약을 가능케 해주는 힘은 기질, 즉 열정과 친절, 사랑의 힘이라는 것.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걍 믿고 싶어지는 말.

- 최근에 다윈 진화론의 시각으로 세포에서부터 인간의 진화를 훑어본 생물인류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달리기와 인간의 진화를 엮어 설명한 대목이 흥미로웠다. 생물인류학을 배우면서 첨단 과학으로도 밝혀내지 못한 진화의 비밀이 무척 많다는 데에 놀랐다. 사람이 왜 두 발 걷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사냥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해부학적 현대인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지 1만년 만에 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게 되었는지, 왜 인간의 유년기가 길어졌고 생물학적 번식이 끝난 뒤에도 살아있을만큼 수명이 길어졌는지, 사람이 언제부터 왜 언어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는지, 간단히 말해 사람이 왜 사람인지가 다 밝혀지지 않은 채 여전한 논쟁거리다. 
이 책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든 건 '장거리 달리기'였다고 주장한다. 근육질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것도, 인간의 집단적 사냥이 가능해진 것도 장거리 달리기 때문이었다는 것. 흥미로운 학설. 

- 도구의 발달이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 덕분에 사냥이 가능했다는 주장은 얼핏 듣기엔 이상하다. 사람이 단체로 뛰어서 사슴, 영양 따위를 잡아 먹을 수 있었다고? 그 빠른 동물들을 어떻게 따라잡는단 말인가? 비밀은 체온 조절의 차이에 있다. 사람은 땀을 흘려 열을 발산하면서 장거리를 뛸 수 있지만 동물은 달리는 동안 숨을 쉴 수 없다. 영양은 더운 날 10~15 킬로미터만 달려도 고체온증으로 쓰러질 거다. 인간은? 사바나의 더위가 끔찍하긴 할테지만 15킬로미터 달리는 것 쯤이야 큰 일도 아니었을 것.

- 달리기 진화론을 주장한 학자들의 실험 결과를 소개한 대목 읽다가 뒤집어지는 줄 알았음. 하버드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치타의 항문에 체온계를 넣고 러닝머신을 뛰게 했다고 함. 치타는 체온이 105도에 이르자 쓰러져 버렸다. 불쌍한 치타....좌우간 그 덕에 인간 만이 유일하게 땀으로 열을 내보내고 헐떡이면서 뛸 수 있는 유일한 포유동물임을 확인하게 되긴 했지만.
과학자들이 2004년 뉴욕 마라톤에서 연령별 완주시간 비교한 결과도 흥미롭다. 주자들은 19세부터 매년 점점 빨라지기 시작해서 27세에 정점에 이른 뒤 쇠퇴한다. 이들이 다시 19세와 같은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는 나이는?
놀랍게도 64세다. 결론. 우리는 늙어서 달리기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그만두기 때문에 늙는다!

- 근데 이 삼복더위에 달리기 찬가를 읽으며 다시 달리자고 두 주먹 불끈 쥐는 이 생뚱맞음은 또 뭐람....좌우간 일, 공부와 상관없는 독서가 이 얼마만인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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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tobeortohave BlogIcon 지아 2010/07/10 14:23 address edit & del reply

    무릎만 괜챦다면 정말 끝없이 달리고 싶은데... 칼슘 부족인지 다리 근육 부족인지 무릎이 삐그덕거려서 한시간에 7.5킬로 이상 달릴 수 없네요. 조금만 속력을 올리면 무릎 뼈랑 주변 근육이 막 비명을 질러요. 그동안 칼슘 섭취를 게을리 한 탓인지. 가늘고 길게 달리기 위해 칼슘제 열심히 먹고 적당히 쉬어가면서 조심해서 달리고 있지만 가끔 속도내서 마구 달리고 싶은 욕심이 나요. 숨은 하나도 가쁘지 않은데 무릎이 시큰거려서 못 뛰는게 넘 서럽더라구요. ㅠ.ㅠ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7/10 20:48 address edit & del

      천천히 달려! 장거리 달리기에 속도 욕심은 독이라고 생각함.
      무릎 시큰거리면 더욱 더! 나는 거의 걷다시피하는 속도로 뛰었어.그리고 근력운동을 꼭 하도록!!

    • 김장전 2010/07/12 11:34 address edit & del

      수산나의 조언에 울트라맨인 저가 조언드림니다.
      아프시면 즉시 중지하시고 걷거나,
      아님 언덕이나 산같은데를 빨리 걸으면서 근육을 강화하면 고통이 없을것 같기도..
      매일 7키로만시면 6개월후엔 매일 10키로도 갑볍게 뛰시고, 장거리는 2~3배를 저속으로 즐달가능할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7/12 12:23 address edit & del

      지아야. 김장전 씨는 100키로를 뛰는 울트라 마라토너임.
      원래 잘 뛰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울트라맨이 됐으니 이 친구 조언은 믿어도 됨. ^^

  2. 김장전 2010/07/12 11:29 address edit & del reply

    희경아 잘봤다, 뉴옥대 교수말대로, 늙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운동임을 남에게 애기해줄수 있겠다 . 뉘 뭔 노동을 그렇게 열심히 해야된다는게 의외다, 천천히 천천히...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7/12 12:25 address edit & del

      특히 너에게 이 책을 강추! 울트라 마라토너로서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줄 것임.^^

  3. Favicon of http://freesolo.info BlogIcon 걷는바람 2010/07/12 15:14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한달음에 읽었습니다. 저는 러너는 아니고 라이더지만 대부분 공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나 오래달리기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은 아주 흥미롭더군요. 사람들이 열심히 달린다면 (다리로던 바퀴로던)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은 확실합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7/13 13:23 address edit & del

      걷는바람님 블로그에 가보니 벌써 1년째 자출을 하셨더군요. 와~ 정말 멋져요. 대단하십니다!

  4. Favicon of http://www.datadoctor.biz BlogIcon data recovery 2010/07/15 17:32 address edit & del reply

    난 러너 아니에요, 그건 옛날의 운동입니다. 난 좋은 건강에 좋은 운동라고 생각합니다.

  5. Favicon of http://dangunee.com BlogIcon 당그니 2010/07/28 01:32 address edit & del reply

    참 기자들은 혹은 기자였던 분은 취재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괜히...동감 ;; ㅎ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7/29 22:07 address edit & del

      부럽다고만 하지말고 가능한 수준에서 해야 할텐데, 점점 게을러져서리...-.-;;

  6. RoseByrne 2011/08/25 11:14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리뷰 읽고갑니다.
    신발사려다가 ㅎㅎ..

2006/06/24 01:23

우리는 왜 달리는가

‘아프리카의 여느 아침이다. 영양이 잠에서 깨어난다. 영양은 자기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여느 아침이다. 사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자는 자기가 가장 빠른 영양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오래된 이 아프리카 속담은 ‘당신이 사자든 영양이든 해가 떠오르면 당신은 이미 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들려준다. 운동은 곧 생명이다. 식물은 더 많은 햇빛을 차지하려 줄기를 길게 뻗고 동물은 스스로 이동하며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주자(走者)다.

‘숲에 사는 즐거움’ 등의 저서로 유명한 미국 생물학자이자 마라토너인 저자가 동물들에게서 배운 달리기와 진화의 지혜를 담은 책. 고교 때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시작해 계속 거리를 늘려 가던 저자는 마흔한 살이 되던 1981년,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100km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먼 거리를 달리기 위해 무슨 준비가 필요한지 전혀 아는 게 없었던 저자는 생물학자의 이점을 살려 ‘지구력이 뛰어난 다른 선수’(동물)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울트라마라토너가 겪는 수분 및 에너지 고갈과 관련된 과열 상태는 낙타가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다. 낙타처럼 과열 상태를 잘 견디려면 마라토너는 열기에의 직접 노출을 피하기 위해 머리털을 길게 기르거나 모자를 쓰고 헐거운 옷으로 몸을 감싸야 한다.

또 낙타에게서 발견되는 수분 균형 적응 구조가 없으므로 마라토너는 물을 조금씩 자주 마셔야 한다.

청개구리 수컷들의 합창은 최대 산소 섭취량의 약 60%에서 이뤄지는데 이는 장거리 경주를 하는 울트라 마라토너와 비슷하다.

저자는 개구리가 짧게 여러 번 우는 것과 길게 덜 우는 것 중 무엇이 더 근육 내 글리코겐 소모량이 적은지를 연구하고 자신의 페이스를 수정했다.

동물의 생리학을 상세히 설명한 부분은 낯선 용어가 많아 약간 지루하다. 하지만 저자를 따라 새와 곤충, 영양, 낙타의 몸속 여행을 거쳐 인간의 진화에 이르면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긴 여행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가 동물과 인간을 비교 연구하며 발견해 낸 인간 지구력의 핵심은 열을 체외로 배출하는 땀샘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곧 비전(통찰력)이다.

위대한 포식자인 고양잇과, 갯과 동물은 가장 어려운 상대를 먹잇감으로 찾는 게 아니라 어리거나 늙고 약한 가장 쉬운 상대를 찾는다. 반면 인간은 대부분의 먹잇감을 속도로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장기적 목표를 추구하도록 진화했다.

사자가 먹이를 순식간에 덮치는 행위에는 꿈이 개입할 여지가 없지만, 인간은 먹잇감이 언덕 너머로 사라져도 마음의 눈에 목표로 남겨 둘 수 있다. 꿈은 우리를 멀고 먼 사냥 행위로, 미래로, 마라톤으로 이끄는 등대다. 상상력과 열정으로 고무된 인간의 마음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지구력을 부여한 결정적 힘이다.

마지막 궁금증. 그럼 동물과 인간의 진화를 연구해 가며 준비한 울트라마라톤에서 저자가 거둔 성적은?

6시간 38분 21초에 100km를 달려 그해 전국 챔피언이 되었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 - 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병선 옮김
마흔한 살에 도전한 전미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며 세계를 놀라게 한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가 동물과 인간의 생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이 고안한 훈련을 통해 마라톤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 달리기와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특유의 우아하고 경쾌한 필치로 풀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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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cando.tistory.com/ BlogIcon 격물치지 2007/07/23 15:03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가을 춘천마라톤 6시간이라도 완주가 목표인데... 저자는 대단하군요.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usanna 2007/07/24 00:30 address edit & del

      아, 마라톤하세요? 반가워요. 전 2년전 하프마라톤 뛴 다음에 풀코스 연습하다 무릎을 다쳐 도중하차하고 만 아픈 기억이 있습죠...좌우간 그래서 마라톤하시는 분은 무조건 다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