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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03 사랑의 레시피 - 배려의 방식 (16)
조이: …이모?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엉망으로 하진 않아요.
- 영화 ‘사랑의 레시피’에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아마도) 30대 싱글여성이 언니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어린 조카를 키우게 됐다. 성질이 불같고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드높은 완벽주의자이지만, 선량한 사람이며 조카에게 정말 잘 해주고 싶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질 않고, 때론 조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 같은 걸 깜빡 잊어버리기도 한다. 버릇이 되지 않아서다.
너무나 잘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질 않으니 자신이 모든 걸 망치고 있다고 자책하는 이모에게 조카는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잘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준다.
...어린 조카 말이 맞다. ‘모든 일’을 다 잘하고 ‘모든 일’을 다 잘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든 통제해 뜻대로 하려는 강박이 심한 사람일수록 ‘모든 일’을 다 잘하고 싶어 하고, 조금만 삐끗하면 ‘모든 일’이 다 글러먹었다고 자책하곤 한다. 원하는 것을 언제나 얻을 수는 없고, 무엇이 자신에게 이로운지를 스스로가 항상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꽤 오랜만에 본 영화 ‘사랑의 레시피’는 별 (5개 만점에서) 3개쯤을 주고 싶은 로맨틱 드라마다. 러브 스토리의 전개과정에 뻔한 면이 많아 흠잡기도 쉬운 영화이지만, 배려가 뭔지 생각하게 만든 몇 장면들 덕분에 (그리고 예쁘고 기품있는 캐서린 제타 존스,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론 에크하트 때문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뉴욕 맨해튼의 일류 요리사인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가 조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차려준 아침 밥상은 일류 식당에서나 먹을 수 있는 완벽한 농어구이였다. 내가 봐도 아이가 먹기엔 좀 거시기했다. ^^; 초등학생에게 복 지리 한상 차려준 꼴이다. 접시 위에 입을 벌린 생선을 보는 순간 질려버린 아이의 얼굴이라니. ^^ 케이트가 생각하기엔 최상이었겠지만 아이는 음식을 보고 질려 손도 안대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반면 레스토랑의 부주방장 닉 (아론 에크하트)은 어떤가.
케이트를 따라와 주방 한쪽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조이를 보더니 그냥 옆으로 쓱 다가가서 야채를 다듬는 척 하며 “이건 바질이야” 하고 말을 건넨다. 심심한 아이에게 이파리를 하나씩 따는 일을 하도록 유도한다.
조금 있다가 스파게티 한 접시를 들고 온 그는 바질 잎 다진 것을 뿌려 아이 옆에 서서 그냥 맛있게 먹는다. 한두입 먹다가 저쪽에서 새로운 주문을 외치자 바쁜 척 하며 아이에게 그릇을 안겨주고 “잠깐 들고 있어”하고 사라진다. 잠시후 스파게티 그릇에 코를 박고 먹고 있는 아이를 먼 곳에서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자신의 일에 엄격한 케이트의 배려는 농어구이처럼, 자기가 할 줄 아는 최고의 것을 해주는 것이었다.
반면 자유분방한 닉의 배려는 스파게티처럼, 상대방이 부담 없이 받도록 해주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순 없다. 케이트의 방식은 고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최고일 것이고, 닉의 방식은 배짱 좋은 지지자가 필요할 땐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해본 몇 번의 배려(?)가 상대방 입장에선 어떠했을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해주면서 그에 상응하는 보답 또는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못해 안달복달하지는 않았나? 내가 ‘대단한 희생’을 감수하며 100을 주었는데 상대방은 내 기대의 50에도 미치지 못할 때 분개하지 않았나?
그런 태도의 베풂은 배려라기보다 고작 자기만족을 위해 상대방을 ‘증인’으로 끌어들이려는 행동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배려의 핵심은 어쩌면 ‘내가 이렇게 너를 생각한다’고 하는 그 마음의 크기보다, 받는 상대방이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좌우를 살피고 상대의 입장에 서보는 태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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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jai 2007/09/04 15:55
요리사 만큼 매력적인 직업도 없다는 생각, 그런데 제가 요리하면 소수 마니아(?)만을 위한 요상한 요리가 될 듯....(우리나라 처럼 소수 마니아란 의미가 잘 못 알려진 나라도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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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na 2007/09/05 23:44
'소수 마니아만을 위한 요상한 요리'라는 정의가 더 이상하게 들림다. 왜 요상해? 기꺼이 마니아가 될테니 호자이의 요리수업을 열렬히 지지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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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이 2007/09/04 18:44
스파게티도 농어도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은
어떤 상대방이 무엇을 줘도 다 맘편히 양쪽이 즐거울 수 있겠네요!! 음핫.
이것저것 다 받고 싶은 이쁜이...
영화 봐야겠당-
susanna 2007/09/05 23:48
욕심쟁이 이쁜이.....^^ 근데 정말 예뻐졌던 걸~ !! (자신을 '이쁜이'라 칭하는 이쁜이에게 정말 이쁘다고 말하려니....너무 심한 굴욕이오...털썩~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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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na 2007/09/13 20:32
뭐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잖아요. 제가 요즘 배려가 뭔지 고민을 하던 터라 더 그런 게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 (영화가 잼없을 수도 있다는 야그임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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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2007/09/20 02:17
저도 즐겁게 보았습니다. 남자주인공이 중간에 "진정한 레서피는 내가 직접 만든것이야..." (기억이 가물함) 정도의 대사가 있었는데, 그게 와닿더군요. 인생을 사는데도, 자기가 만들어가는 삶이 결국 진정한 삶이 아닐지...하는 생각이 들었나봐요. 영화를 많이 보시나봐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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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2008/04/02 09:44
달아주신 트랙백 타고 들어왔습니다. 와~~
저는 뭔가 빠진거 같다. 아쉽다. ... 그러고 딱히 더 적을 말이 없었는데,
같은 영화를 봐도 이렇게 멋지게 평을 할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 ㅠ.ㅜ
평 읽다보니까 정말 그렇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끄덕여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
수산나 2008/04/02 21:33
헛..^^;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쓸 말이 있었던 이유가 제게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예요.저 영화 볼 때 제가 누군가한테 잘해준다 하고 있는데 소용없어보여 자책하던때였어요.사람은 지가 보고싶은 것만 본다고, 그래서 영화에서 그런 면만 눈에 들어왔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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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 2010/06/07 22:22
아~~ 예전에, 이 글을 보고나서 '사랑의 레시피'라는 영화를 봤어요. 마지막 단락의 문장이 맘에 와 닿는군요. 배려에 대한 짧은 글귀가 말입니다. 오래전에 잊었던, 잊고 지냈던 물건을 다시 찾은 느낌입니다. 다시금 읽어도 좋은 말이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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