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8/01/05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2)
- 2007/06/09 걸프렌즈 (11)
- 2007/02/04 강산무진 (4)
퇴고과정에서 필수적이지 않은 모든 형용사와 부사를 솎아낸 듯 문장이 단단하고 건조하다. 최소한의 단어들만을 골라 사람들이 처한 어떤 상황을 보여준 뒤 카버는 뚝, 멈춰버린다. 주인공의 운명을 통제하는 전능한 지은이가 아니라, 그 후로 어찌 됐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어, 라고 말한 뒤 입 다물어 버리는 과묵한 남자처럼.
카버의 주인공들은 '생각'하는 대신 '행동'한다. 카버의 무심하고 간결한 말투를 따라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정말 별 것 아닌 사소한 몸짓 때문에.
표제작인 ‘대성당’을 먼저 읽으며 움찔하다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으면서는 끝내 울고 말았다. …얼마 전 내가 마신 숭늉 한 컵이 생각났다.
가족을 갑작스레 잃었을 때, 한동안 이를 악물고 버티다 엉뚱하게도 오랜 친구의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린 적이 있다. 대상을 종잡을 수 없는 분노를 몇 시간 동안이나 게워낸 뒤 무너지듯 쓰러져 버렸다. 일어난 뒤 제 풀에 지쳐 방구석에 축 늘어져 있던 내게 친구가 가만히 다가왔다. 그가 건넨 건 ‘기운 내라’는 위로도, ‘정신 차리라’는 충고도 아닌, 숭늉 한 컵이었다.
구수한 냄새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컵에 코를 박은 채, 그 온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비천한 마음이 되어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 참혹한 일로 가시 돋혔던 마음이 처음으로 순해질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그런 숭늉 한 컵 같은 이야기다. 줄거리는 아예 언급하지 않겠다. 직접 읽어보시라.
소설가 김연수 씨의 번역도 좋지만 원문도 읽고 싶어 아마존에 책을 주문했다. 김연수 씨의 ‘옮긴이의 말’을 보니 카버는 ‘대성당’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가장 아꼈다면서 두 이야기가 살아남는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 했다고 한다. 두 단편 때문에 한밤중에 눈물 흘려본 사람이 나만은 아닐 터이니,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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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대성당 - 그의 문장은 빵집 주인 같아
2008/03/03 10:01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문학동네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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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05 10:13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집이 10여 년 전에 나왔었는데요. 1.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2. 숏컷 3.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가 시리즈였고 이번에 나온 '대성당'은 그것들을 편집한 거 같던데요. 목록을 보니. 아마도 절판되고 이번에 다시 찍어 내나 봅니다.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은 시리즈1. 사랑에...에 수록됐었던 같네요. 저도 여러 단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빵집에 스며드는 빛이 여운으로 오래 남았던...-
산나 2008/01/05 23:07
그랬군요.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이 일치하다니, 기쁩니다. 그땐 제목이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었군요. 어제 아마존에서 찾아볼 때 원제는 'a small, good thing'이었던 것 같아요. 영어가 함축적인건지, 한국어가 뉘앙스가 부족한 건지...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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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 2008/01/05 23:09
^^ 서점에 서서 이 단편 두개만 읽고 오시면 올해 금(禁)소설 신년결심도 얼추 지키시고, 일거양득이 아닐까 싶네요....(서점에서 돌 날아오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기 시작함다.^^
제겐 참 좋았어요. 레블 님께도 따뜻한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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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둑 2008/01/07 14:30
선배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김인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조만간 우린 모두 다시 만날 겁니다...
참, 잠시 쉬었던 블로깅, 다시 시작했어요. 가끔 들러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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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oul 2008/03/03 10:00
좋았어요.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요. 숭늉 이야기에서 순간 먹먹해졌어요.
이렇게 좋은 글로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예요. 글 잘 읽었습니다. ^^
키스를 할 때 피겨스케이팅 선수처럼 솜씨 좋은 혀끝에 대한 찬사로 시작하는 소설 ‘걸프렌즈’ 를 읽으며, 뜬금없이 TV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생각났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마흔 즈음의 여자들은 별 볼 일 없는 남자 하나가 누구 것인지를 두고 목숨 걸고 싸우지만, ‘걸프렌즈’에서 서른 즈음의 여자들은 역시 별 볼 일 없는 남자 하나 사이좋게 공유한다.
마흔 즈음의 여자들에게 남자는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이슈였는데 서른 즈음의 여자들에게 남자와의 사랑은 인생의 숱한 이슈 중 ‘n분의 1’쯤 되는 일이다.
‘걸프렌즈’를 읽다보면, 넋 놓고 보던 ‘내 남자의 여자’가 한없이 칙칙하게 느껴진다.
올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작가는 장편소설을 처음 써본 준 재벌가의 며느리, 뭐 그런 프로필에 호기심이 일어 이 소설을 읽었다.
걸프렌‘즈’라는 제목이 노골적으로 말해주듯 한 남자를 공유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새로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가 알고 보니 ‘양다리’도 아니고 ‘세 다리’였는데 이 세 명의 여성들은 서로 머리채 붙들고 싸우기는커녕 남자를 사이좋게 공유한다. 논리는 간단하다. “어떤 잣대에 맞지 않으면 상대를 교체하는데, 상대를 교체하기가 어렵다면 방식을 교체하는 것”이 뭐 어떠냐는 식.
쉽게 쓱쓱 읽히는 소설이다.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게 약간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뭘 높이 산 거지? 문체와 사고의 발랄함은 정이현만 못하고, 주제의 도발성으로 따지자면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만 못하다.
그 또래 여성작가들의 소설이 대체로 그렇듯 트렌디한 세대 보고서 같기도 하다. 그녀들은 맥도날드에 들락거리며 자랐고 버거킹, KFC, 피자헛을 옮겨 다니다 그곳들이 시시해지기 시작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성년이 된 뒤로는 ‘콩 다방’ ‘별 다방’이 그녀들의 아지트다.
그녀들이 좋아하는 남자의 프로필을 간추려 적자면 이렇다. 잘난 남자는 싫다. 잘난 체 맞춰주느라 진을 빼야 하니까. 특색 없고 평범하며 얼굴과 이력이 보통이어도 좋다. 제일 중요한 건 성격. 배려심 많고 화를 안내며 말 잘 들어주는 여성적인 성격에 성욕이 왕성하며 애무의 스킬이 뛰어나면 금상첨화다. 연애할 때의 금기는 가족 이야기를 삼가고 함께 찍은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리지 않으며 과분한 선물하지 않고 사생활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이 또래는 이렇구나, 하고 무심하게 휙휙 책장을 넘기다가 생각한다. 글을 그다지 잘 쓴 것도 아니고 공유하는 사랑도 이미 몇 번 변주된 터라 신선한 주제도 아닌데, 이 소설, 묘하게 정감 가는 구석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 ‘별 다방이나 콩 다방에서 보낼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 어떤 시련이나 슬픔을 공유하기에 그곳들의 의자는 너무 딱딱하다.’
뭐랄까. 동화의 세계 밖으로 걸어 나와 누추한 인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여동생을 보듯 안쓰러운 기분. 뭐든 절실한 게 없어 쉽게 놔버리며 노력하지 않고 뜻하는 것을 얻기만을 바라던 주인공은 소설 후반부에 들어서면 앞날을 전혀 알 수 없는 일에 자신을 쏟아 붓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가장 못하는 것을 하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난다. 그래야 할 때도 있는 거다. 한번쯤은 절실해져야 정말 어른이 될 수 있지 싶다.
말이 되느냐 아니냐 와는 별개로 이 소설에선 기묘한 자매애가 가장 두드러진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문제제기, 사랑을 공유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가장 선명하게 부각되는 주제였지만, ‘걸프렌즈’에서 사랑의 공유는 소재일 뿐, 실제로는 남자는 정말로 별 것도 아닌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의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에 대한 취향을 공유한 나의 여자친구들”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내 남자의 여자’에서도 점점 남자는 뒷전이고 여자들의 문제로 이야기가 집중된다. 난 그 드라마를 보며,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은 친구도 여전히 친구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더 눈길이 간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요즘 여자들에겐 정말 남자가 별 것도 아닌 게 맞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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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이홍의 걸프렌즈를 읽고/새로운 연애관을 제시/다양성을 인정해주는 넉넉함/★★★★☆
2007/08/13 21:30
민음사_이홍 장편소설_걸프렌즈_★★★★☆ 민음사 미술부_최지은 일러스트/유연이 표지디자인 회사에서 주관하는 오늘의 작가상 31회를 수상한 이홍의 『걸프렌즈』를 단숨에 읽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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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쨍동상 2007/06/16 10:29
움..공감가요..남자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집착하지 않으니 정말 편해지더군요, 그래서 외롭지만, 뭐 사랑이 나 자신보다 크건 작건 누구나 다 외롭지 않을까?하는 위로를 해봅니당.
그런데요..굳이..'절실'이란 과정을 거쳐가면서..꼭, 어른이 되어야 하는걸까요..?-
susanna 2007/06/16 12:23
우와와와와~~~멋쨍동상! 방가방가!!!!!
남자가 중요하진 않아두 있음 뭐, 좋겠지~ ^^
글쎄 말이다. 내가 뭔가에 절실해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 아직 어른 덜됐다고 생각하고 있나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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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작가 2007/07/18 15:40
스타벅스에서 이홍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이벤트가 진행예정입니다.
꼭 참여하셔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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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쓸쓸하다….
김 훈의 소설집 ‘강산무진’ 책장을 덮으며 중년 남자, 아니 중년의 삶이라 해도 좋을 그 목숨의 쓸쓸함이 입 안에서 서걱거린다.
힘들어도, 아파도, 아얏 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은 채 그들이 묵묵히 감당하는 삶의 무게가 내 어깨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등으로 아픈 기운이 번진다. 고단한 그들….. 허무한 세상을 묵묵히 감당하며 걸어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등을 쓸어주고 싶다.
한 남자가 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50대 후반의 기업체 임원. 어느날 느닷없는 간암 판정을 받는다.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망 선고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뭘까…. 은행에 가서 적금을 해약하고 아내에게 못다 준 위자료를 전달하고 아파트를 팔고 주식을 처분하는 등의 일상 생활 정리이다. 표제작 ‘강산무진’에서는 오열이나 절망보다, 그가 그렇게 말없이 하루하루 뭔가를 정리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비정한 일상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화장’에서 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참담한 몸과 싱싱하게 피어나는 여직원의 몸에 대한 은밀한 상상을 교차해 전개하는 대목을 읽을 땐 약간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죽어가는 아내의 참혹한 몸에 대한 상세한 기사체의 묘사, 회사 여직원의 몸에 대한 주인공의 동경과 환상을 묘사할 때의 꿈결 같은 문장이 대비를 이루며 비루한 현실- 판타지 사이의 묘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엔 아내의 상중에도 여름 화장품 광고 시안을 결정해야만 하는 주인공이 있다. …살아가는 일이란 그런 것일 게다. 아무리 참혹한 일을 앞에 두고도 사소한 결정들을 해야 하고, 꾸역꾸역 밥을 먹어야 하는.
읽을 땐 건조한 느낌이었는데 책을 덮은 뒤 인상 깊은 단편은 ‘항로표지’다. 대단한 기대도 없이 섬을 떠나는 등대지기, 그리고 인생유전 끝에 등대지기로 흘러 들어오는 또 다른 사람.
흘러가고 흘러오는 사람들은 지향점도 없어보이고 인생이 격렬하지도 않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묵묵히 견딘다. 마치 그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라고 말하는 듯…
나는 이 책을 명상단식 캠프에서 틈틈이 읽었다.
과거의 나를 벗고 새롭게 거듭나고 싶은 욕망에 달려간 곳에서 읽기엔 지독하게 쓸쓸한 책이었지만, 이 책 덕분에 어떤 균형감각 같은 걸 얻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균형감각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건 아니고,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고 해서 지나치고 들뜬 감상, 무작정한 기대 같은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수 있도록 인생의 다른 면을 잊지 않는 자각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생활과 사고의 다른 습관을 몸이 기억하도록 새겨넣겠다고 애를 쓰는 순간에도, 살아간다는 일이 다만 끝없는 체험의 연속일 뿐인 걸 뭘 더 바래, 하는 심정으로 마음이 때로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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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그니 2007/02/05 02:27
지금 제가 읽으면 딱 모든 일을 손에 놓기 쉽상이겠군요. 김훈 첫 소설집...
칼의 노래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저는 두번 손이 안가던데.
암튼 이 책도 읽고 싶어집니다.ㅎ -
inuit 2007/02/05 22:24
아.. 제가 요즘 중년의 센티멘털을 느끼는 중인데 -_- 이책을 읽으면 도움이 되려나요. ^^;;
무소유와 길떠남의 대체경험이 될 듯도 하고, 삶이 그냥 시들하게 느껴질듯도 하고..-
susanna 2007/02/05 23:47
음....그게 센티멘털의 정도에 따라 다를 것같습니다. 심각하지 않다면 좋은 대체경험이, 심각하다면 무릎이 푹 꺾이고 난데없는 눈물이 날 수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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