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인생'에 해당되는 글 2건
- 2009/03/10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라 (6)
- 2009/02/17 [1]전정욱: 엔지니어에서 전통음식 프랜차이즈 대표로 (7)
[중년의 터닝 포인트 4] 엄홍길 - 고산에서 내려와 사람 속으로
Before: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세계 최초 완등
After: 비영리단체 설립, 사회 공헌 활동
Age at the Turning Point: 48
인터뷰를 하던 날 오전 삼각산에 입춘 산행을 다녀왔다는 산악인 엄홍길 씨(49)의 얼굴엔 봄의 생기가 넘쳐났다.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완등한 그에게 540m 높이의 삼각산도 산일까 싶은데, 그는 “사무실 벗어나 산에 오르면 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비영리단체인 엄홍길 휴먼재단 을 설립해 사회사업을 시작했고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이기도 하다. 호칭이 약간 난감해 “어떻게 불리는 게 좋으세요?” 물었더니 옆에서 커피를 타 주던 재단 직원이 “그야 당연히 대장님이죠” 했다.
그렇다. 그는 여전히 대장이다. 원정대를 이끌고 히말라야에 오르는 대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루트만 달라졌을 뿐이다. 한 편으론 인생 전환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평생 해온 방식 그대로 자신의 길을 내고 있었다.
● ‘제2의 인생’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
지난해 5월 “도전의 산에서 내려와 인생의 산에 도전하겠다”면서 재단을 설립한 그는 지금까지 장애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산행 체험교실, 네팔 의료 봉사 등을 이끌어 왔다.
이제 본격적인 첫 사업으로 해발 3930m에 있는 고산 마을인 네팔 쿰부히말라야의 팡보체에 초등학교를 짓는다. 사무실 한쪽 벽면엔 초등학교 설계도가 쫙 붙어 있었다. 4월30일 출국해 5월5일 어린이날에 맞춰 착공할 예정이다.
팡보체 마을은 1986년 그가 두 번째 히말라야 등반 도전에 나섰을 때 목숨을 잃은 현지 세르파 술딤 도루지가 살던 곳이다. 그곳에 갈 때마다 유가족을 보살펴온 그는 오지의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초등학교를 짓기로 했다.
초등학교를 짓는 일은 그가 말한 “목숨을 걸고 한 약속” 중 하나다. 그가 ‘제2의 인생’에서 재단 설립을 통해 히말라야 산간 오지의 교육․ 의료 환경 개선, 청소년 교육, 기후환경변화 대책에 나서기로 한 것은 “산에서 얻은 것을 산에 돌려주고 산에서 진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2000년 8000m 14좌 완등이 가까워질 무렵부터 이 일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전과 실패 죽음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산의 깊이를 알면 알수록 두려움도 커졌지요. 인간의 능력에는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강하고 기술이 좋아도 마지막엔 산이 우릴 받아줘야 성공할 수 있어요. 산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욕심을 내지 않고 순리를 따라야 산은 비로소 정상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산이 받아주기 전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 뒤 그에게 남은 것은 기도뿐이었다.
“14좌를 향해 치달을 때 동료도 잃었고…. 살아서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살아남은 자로서 당신(산)에게 받은 보답을 반드시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다시 16좌를 향해 가면서도 숱하게 기도했어요. 나는 이런 일을 해야 하므로 꼭 살아서 내려가야 합니다, 하고…. 목표 지점에 다가갈수록 그 다짐이 더 간절해졌지요.”
그는 “내가 지금 16좌를 다 오르고도 살아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면서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이니 살아남은 자의 책무를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라
엄 대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의 성공보다 실패의 경험에 더 귀가 쏠린다. 1985년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하기 시작해 2007년까지 22년간 세계 최고봉 16개에 올랐지만, 그 과정에서 모두 17번의 실패를 겪었다. 성공한 것 이상으로 실패해온 셈이다. 게다가 함께 산에 오른 동료 10명이 목숨을 잃는 것을 목격했다.
그가 3번의 도전 끝에 첫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1988년 에베레스트 첫 등정에 성공한 뒤 그는 의기충천했지만 1993년까지 5년간 안나푸르나, 낭가파르바트 등을 대상으로 시도한 6번의 등반이 모두 실패했다. 절망 속의 그를 붙들어준 말은 불가의 가르침인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라’였다. 다시 일어서서 1993년 7번째 도전한 초오유 등정에 마침내 성공했을 때 그는 “실패와 좌절의 시간이 드디어 나한테서 떨어져 나갔다”고 느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같은 해 시샤팡라에서 그는 동료 박병태 대원을 잃었다. 1998년 네 번째 시도한 안나푸르나 등정에선 미끄러진 셰르파를 구하려다 같이 추락해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중상을 입고 ‘산행 불가’ 선고를 받기도 했다.
“제가 경험하기론 성공과 실패엔 큰 차이가 없어요. 중요한 건 실패를 피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실패와 현실의 불행을 끌어안고 거기에 고착되면 영영 벗어나질 못해요.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 불가항력이었다면 ‘이럴 수도 있겠지, 더 나빴을 수도 있는데’하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 했다면 겉으로 드러난 실패는 진짜 실패가 아니에요.”
“산에서 갈등의 순간은 수도 없이 많아요. 지금 출발할까 말까, 더 올라갈까 말까, 이 길이 나은가 아닌가, 계속 결정해야 해요. 게다가 눈사태 같은 위험이 예고하고 일어나는 일도 아니잖아요. 결단력과 팀워크를 통해 최선을 다 하되 순리에 따르는 겸허함이 결합되어야지요.”
하나의 일에 정통하고 실패와 성공을 오래 겪으면 나중엔 ‘육감’도 발달하기 마련이다. 그는 “어느 산은 처음부터 가긴 가야 되는데 이상하게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고 험한데 끌리는 산이 있다. 그런 육감이 대체로 적중했던 편”이라고 들려주었다.
● 8000m도 한 걸음에서 시작됐다
고산 정복에 비한다면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두 번째 도전’은 쉽지 않느냐고 묻자 엄 대장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고,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산에서는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의기투합하니까 오히려 더 명료할 수 있어요. 여기서는 어떤 방향으로 가려고 해도 여러 사람들을 접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지요.”
그러면서도 그는 “천천히 가야지요. 8000m도 한 걸음에서 시작됐어요. 조급한 마음으로 자꾸 보폭을 넓히다 보면 주저앉게 됩니다”하고 덧붙였다.
히말라야 오지 지원, 기후변화 대책 마련 등과 함께 그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청소년들의 정신력을 키우는 일이다.
“산행 체험학교를 해보면 청소년들이 신체적으로는 크지만 정신적으로 허약하다는 걸 절감합니다. 뭐든 쉽게 이루려 하고 쉽게 좌절해요. 전 그게 자연과 동떨어진 생활 때문이라고 봅니다. 요즘 학교에선 체육시간도 점점 없앤다는데 등수로만 따지면서 허약한 성인으로 자라면 뭐하나요. 배려나 이해심은 말로는 못 가르쳐요. 자연 속에서 행위를 통해 깨달아야 하는 덕목이죠.”
성인에게도 그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중년에 인생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조언을 청하자 “인생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므로 변화를 두려워 말라”고 들려주다가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말을 맺었다.
“운동을 하세요, 운동을! 뭘 하든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가 가장 중요한데 그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자기 몸이 피곤하면 도전이고 자시고 무슨 의욕이 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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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속의 나 2009/03/15 15:41
sanna 님 건강히 잘 지내시죠^^
얼마 전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엄홍길 '대장님' 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전에도 성공시대인가 뭐 그런 프로에서 대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영혼이 맑으신 분이다. 진실하신 분이다 라고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인생의 산을 오르시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좋은 대담 글 잘 읽었습니다.-
sanna 2009/03/18 23:21
아, 오랫만예요. 잘 지내시죠?^^
잘 봐줘서 고마워요.
너무 인터뷰를 많이 하신 분이라 '잘 정돈된'답변만 하셔서 짧은 시간이 무지 안타까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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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y 2009/03/17 13:12
sanna님 넘 오래간만에 인사드립니다. 잘 계시지요? 전 직장을 옮긴 후 거의 블로깅 포기 상태인데 sanna님께서 본격적으로 돌아오신 듯 하여 넘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인생 2모작’은 이제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년퇴직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 ‘조퇴’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중년도 늘고 있습니다. 35~55세에 인생전환을 이뤄낸 평범한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보는 [중년의 터닝 포인트]를 주 1회 연재합니다.
• Before: 자동차 엔지니어
• After: 미국 FDA 승인 받은 전통음식 프랜차이즈 (주)미당 추어탕 대표
• Age at the turning point: 36
11년 전 자동차 엔지니어였던 전정욱 씨가 1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추어탕 집을 차리려 준비할 때, 하필 외환위기가 시작됐다. 말리던 주변 사람들은 “그것 봐라”는 듯 그를 딱하게 여겼다.
경제상황이 그 때보다 더 힘들다는 2009년. 그는 지금 48개 가맹점을 둔 프랜차이즈 미당 추어탕의 대표로 성장했다. 2006년엔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 중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식품안전승인을 받고 포장 추어탕을 미국에 판매하고 있다.
전 대표 (47)는 “음식 산업은 결국 신뢰의 산업이고 오너의 마인드가 모든 걸 좌우한다”면서 “정 할 것 없으니 음식점이라도…, 같은 생각으론 100% 망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어떻게 전환에 성공했을까.
1. 스스로에게도 명분이 서는 일을 찾아야 한다
대학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한 그는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다 97년에 사표를 내고 이듬해 추어탕 집을 차렸다.
“직장생활 10년차 쯤 되었을 때, 이 회사에서 내 미래가 어떨까 그려봤어요. 사장이 될 것도 아니고, 언젠가 홀로서기가 불가피하다면 더 나이 들기 전에 하자고 결심했지요.”
돈도 돈이지만 스스로에게 명분이 서는 일을 찾고 싶었다. 고민 끝에 “가업을 계승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부모님은 전북 남원에서 3대째 추어탕 집을 해왔다. 이미 부모님은 가게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그는 명맥이 끊긴 가업을 다시 잇겠다고 결심했다. 단순한 ‘추어탕 집’이 아니라 ‘전통음식 발굴, 브랜드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에게 명분을 부여하며 이게 ‘해야 할 일’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퇴직 후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했더라면 이렇게 못했을 거예요. 음식점은 손님에게 무조건 맞춰야 하는 직업이거든요. 주인이 잘 나면 안 됩니다.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은 의욕적이니까 자신을 낮추지만 떠밀려서 한 사람들은 그걸 못하더라고요. 떠밀려서 하는 것과 스스로 선택하는 것, 이 태도의 차이가 모든 걸 결정해요.”
2. 좋은 조력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음식점이 성공하려면 일류 시설에 일류 주방장을 쓰는 ‘규모의 경제’ 혹은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 자본이 모자란 그는 후자 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2년간 주말마다 추어탕의 본고장인 남원에 내려가 요리를 배우고 추어탕 집을 순례했다. 그의 행운은 스승을 잘 만난 것. 부모님 집 주방에서도 일했던 노인에게 ‘맛을 그리는 기술’을 배웠다.
“한식에는 고추장 된장 마늘 등 7대 재료가 있는데 탕을 먹어보고 그 안에 7대 재료 중 무엇이 들어갔는지를 알아내야 해요. 특히 탕은 이미 끓여 동화된 상태라 재료 감별이 어려워요. 스승께 집중적으로 배운 게 이 기술입니다. 간만 볼 줄 알면 요리 80%는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배합을 알고 무엇이 부족한지 맛을 그릴 줄 알아야 합니다.”
탕 요리의 핵심인 열처리도 노인에게 배웠다. 추어탕 집을 순례할 때 어떤 집의 된장 맛이 유난히 강해 이유를 물으면 주인도 대개는 “된장을 한 숟갈 밖에 안 넣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비밀은 열처리에 있었다.
“추어탕에서 된장 맛은 입으로 느끼게 해야지 냄새가 나면 안 되거든요. 추어탕에 된장을 넣어도 냄새가 안 나는 온도가 360도라고 치면 그걸 불꽃을 보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 역시 스승께 배운 핵심 기술이죠.”
3. 어떻게 남들과 다르게 할 것인가
“저도 깎으려고 궁리를 많이 했어요. 다 내리는데 혼자 올리는 결정을 하기가 쉽겠어요. 하지만 천연재료를 포기하지 않으면 최소 원가는 7000원이었고, 내 방식을 버리느니 대신 1000원어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직접 빚은 약주, 추어로 만든 전을 서비스하기 시작했지요.”
그의 전략은 주효했다. 처음에 하루 20만~30만원이던 매출이 1년 반 만에 하루 250만 원 선으로 늘었다. 차별화를 위해 추어 만두, 어린이 추어 돈가스 등 신규 메뉴도 계속 개발했다.
“업종 선정도 중요합니다. 저는 차별화 전략의 성공이 추어탕집이라 가능했다고 봐요. 김치찌개와 달리 추어탕은 기호식품이고 고객의 충성도가 높은 마니아 문화이거든요. 입소문이 나면 손님들이 1천원 차이는 무시하고 결국 다시 돌아오시더라고요.”
2005년 프랜차이즈를 시작할 때도 그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갔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본사 물건 공급 수준을 30% 선에서 맞추는 것과 달리 그는 처음부터 18억 원을 들여 공급시설을 짓고 본사 물건을 100% 공급했다.
“몇몇 친구들에게 기술 전수를 해줬는데 다 실패했어요. 조리법만 배우고 맛 관리가 안 되니까 경쟁에서 지는 거죠. 일괄적 품질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장을 짓고 본사에서 직접 제품을 만들어 냉장 상태로 매일 배송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4. 끈질기면 길이 트인다
2006년에 그는 미국 진출로 눈을 돌렸다. 탕 문화가 해외에서도 먹히는지 실험해보고 싶었고 재미교포들도 주요 공략 대상이었다. 포장 추어탕을 대형 콘테이너로 수출하려면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대행업체에 맡겼더니 6개월간 진전이 없었다. 하도 답답해 그는 동시통역사를 구해 매일 밤 FDA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FDA의 요구는 온도별로 제품 영양소가 얼마나 파괴되는지를 조사해 제출하라는 것. 식품과학 관련 연구소에 갔더니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해 직접 하기로 결심했다.
“석 달 동안 공장에서 실험하고 거의 매일 FDA에 전화해 설명하면서 ‘식품 가열온도에 따른 영양소 변화’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했더니 ‘그만하면 됐다’고 하더라고요. 실제 자료보다 기준을 지키기 위해 공정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를 보려고 했던 것이래요. 추어탕을 승인 받고난 뒤 대게탕 시래기국 황태탕도 일사천리로 승인 받았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는 “물건을 콘테이너에 실어놨으니 무작정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다 안 되면 말더라도…. 끈질기게 추구하다보면 일이 되는 방식이 다 있더라”고 들려주었다.
그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200개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강진 장흥에서 사라져가는 막걸리 초장을 도입해 키조개무침으로 상품화하는 등 전통음식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제 천직을 찾은 것 같으냐고 묻자 그는 “천직? 그런 건 모르겠다. 다만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이 시리즈는 [터닝 포인트] 블로그에도 동시 발행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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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프랜차이즈의 성공신화! 어디까지 믿고 따라가실 건가요?
2009/02/18 15:43
불경기..경제위기..이런 말들이 쉽게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창업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죠. 솔직히 사람들의 경험이나 의견을 들어보면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모험을 강행해야 하는 창업 보다는 월급쟁이가 훨씬 안정적으로 돈을 번다고 하죠. 하지만, 눈치를 보면서 직장을 다니거나 월급쟁이 생활이 지겨워지시는 분들은 모아온 묵돈을 이용해 자신만의 업체를 꾸리고 싶어 합니다. 물론, 더욱 많은 돈을 벌고 CEO라는 직함을 얻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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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2009/02/18 13:32
언니.. 저도 터닝을 하긴 하는데 아직 어느쪽으로 튈지 모르겠어요...ㅎㅎ. 터닝하기전에 먼저 한 일년 엎어져서 좀 쉬려구요. 다시 못 일어나면 어떡하죠? 엔지니어에서 추어탕 체인 대표라... 흠.. 뭔가 구체적 꿈이 있어야 무우를 자르던지 호박을 썰던지 할텐데.. 이러다 일년내내 실컷 놀기는커녕 일년 뒤에 먹고 살 걱정하며 지난 10년동안 하던 일 예/복습만하게 되는건 아닌지 몰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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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9/02/18 19:07
우왕~ 신나게 놀아! ^^
다시 못일어나긴...다 일어나게 돼 있어.
1년 놀고와서도 갈팡질팡하는 처지라 뭐 말할 입장은 아니다만...
그냥 텅텅 다 비우고,잔먼지가 다 가라앉고 나면 뭐가 남는지를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1년동안 한국에 올 생각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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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09/02/19 19:52
'우수' 지나고, 경칩되기전에 짠`~ 나타나셨네요. 흔히 놀던 물에서 놀아야한다는 통념을 깬 분의 이야기네요, 저 분과 같은 끈기와 근성이 모두에게 필요한 시기죠, 특히나 요즈음의 상황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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