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터닝포인트'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5/13 "한 분야 10년 파면, 길이 트입니다" (7)
  2. 2009/05/06 "내 꿈이 어디갔지?" 돌아와 숲 앞에 서다 (16)
  3. 2009/04/28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평가에 왜 내 인생을 거는가" (14)
  4. 2009/04/21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아요" (7)
  5. 2009/04/07 "틈새의 문을 열고 나가면, 꿈이 현실이 됩니다" (11)
2009/05/13 09:30

"한 분야 10년 파면, 길이 트입니다"

[중년의 터닝포인트]<12> 이인식 씨- 대기업 상무에서 과학칼럼니스트로

Before: 대성그룹 상무이사
After: 과학칼럼니스트
Age at the turning point: 46

지금이야 ‘평생직장’이 낡은 개념이 되었지만 18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평생직장 시대’에 42살에 큰 기업체 상무가 될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제 발로 걸어 나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칼럼니스트인 이인식 씨(64)를 이 시리즈의 인터뷰 대상으로 떠올린 이유는 그래서였다. 금성반도체(현 LG 정보통신)에서 최연소 부장이 되었고 대성그룹 상무이사를 지낸 그는 중년의 절정인 46살에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다. 인생 2모작, 3모작이 낯설지 않은 요즘에도 쉽지 않을 결단이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지난 주말 서울 강남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두 번 놀랐다. 크고 멋진 아파트는 ‘글쟁이’의 삶은 곤궁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뜨렸다. 그의 서재에 들어서면서 다시 놀랐다. 널찍한 책상과 빽빽한 서가를 기대했으나 너무 낡아 무늬목이 너덜거릴 지경이 되어버린 작은 책상이 눈에 띄었다. 그의 아내가 옆에서 “총각 때부터 쓰던 책상”이라고 들려주었다.

이 작은 책상에서 그는 원고지에 글을 쓴다. 매체에 칼럼을 쓸 땐 그의 아내가 아르바이트로 컴퓨터에 글을 입력해주고, 책을 쓸 땐 A4 용지에 깨알같이 글을 써서 넘긴다.

‘왜 컴퓨터를 안 쓰느냐’고 묻자 그는 “컴퓨터를 안 쓰는 게 아니라 워드 프로그램을 안 쓰는 것”이라고 정정해줬다. 인터넷 검색도 하고 메일도 쓰지만, 펜으로 글을 쓰는 게 너무 익숙해 굳이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최근작인 472페이지짜리 책 ‘지식의 대융합’도 그렇게 썼다. 워드로 이리저리 문장을 옮기고 조합하는 편집에 익숙한 나 같은 사람에겐 거의 ‘미션 임파서블’의 경지다.


● “결국은 사람이 재산이에요”


그는 중년이 될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늘 ‘생존’이 목표였다. 대학 4년 내리 입주가정교사를 했고 졸업할 때도 취직이 급했다. 금성반도체에 입사한 뒤 정신없이 달려 8년 만에 부장이 되고 이후 일진금속을 거쳐 대성그룹에서 87년 상무이사가 되고 보니 42살이었다.

“돈은 남 못지않게 벌었지만 참 허망했어요. 내 인생이 회사원으로 끝나나…, 한숨만 나왔지요.”


글쓰기는 그의 은밀한 꿈이다. 그의 첫 책은 금성 반도체에 다닐 때인 75년 사보에 연재한 꽁트 12개를 묶어 펴낸 소설집 ‘환상 귀향’이었다. 생활에 치여 꿈이 시들해질 무렵, 어쩌다 연이 닿아 잡지 ‘컴퓨터 월드’의 기획을 알음알음 돕기 시작했다. 미국 과학 잡지를 매달 10여권씩 받아 읽으며 기사 기획을 돕다 보니 직접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 ‘하이테크 혁명’과 ‘사람과 컴퓨터’다.


잡지 일을 돕고 글을 쓰다보니 제대로 된 과학 잡지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91년 가을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까지 쏟아 넣어 잡지를 만들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잡지를 두 번이나 만들었어요. 결국 94년 여름에 완전히 망했는데, 월급 줄 돈이 없어 직원들이 컴퓨터를 들고 가는 걸 그냥 바라보고 있어야 했어요. 하는 수 없이 아들은 군대에 보내고…, 그야말로 밑바닥이었지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이제 드라마틱한 반전이 시작될 차례’라고 기대했다. 웬걸, 극적 반전은 없었다. 미련하다 싶을 만큼 우직한 전진만 있었을 뿐이다.

92년 2월 ‘사람과 컴퓨터’가 발간되고 두 달 뒤 시사월간지에 과학칼럼을 연재하면서부터 그의 책과 칼럼을 본 출판사, 매체의 글 요청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학칼럼니스트가 드문 시절이라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그렇게 월간지->주간지->일간지로 글이 실리는 매체 폭이 확대됐고 잡지와 출판사의 기획을 도와주며 돈을 벌었다. 외환위기가 닥친 97년엔 연재도 다 끊겨 자다가 가위에 눌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때의 절망감 역시 그는 글로 달랬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인간관계 덕분이에요. 인생 전환도 인간관계가 좋아야만 가능합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싸가지 없는 사람’은 전환도 어려워요.”


그가 과학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도 까치 출판사 박종만 사장의 소개 덕분이었다. 김영사 박은주 사장으로부터는 “생애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그가 ‘바닥에 처한’ 94년 추석 무렵, 박 사장은 ‘사람과 컴퓨터’ 책만 보고 그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하더니 추석 직전 직원을 보내 “선생님은 국보”라면서 10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결국은 사람이 재산입니다. 돈보다 사람예요. 일감이 들어오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요. 저 역시 판단착오로 몇 번 신뢰를 그르치고 뼈아프게 반성한 적도 있지만, 일단 관계를 맺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제가 만나는 사람의 인간적 삶에 동참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한 분야 10년 파면 길이 트입니다”

 

어떤 이는 그를 ‘잡학의 대가’라고 부른다. 과학지식의 온갖 분야를 섭렵하지만 관련 분야 석, 박사 학위는 없다. 칼럼을 쓸 때 간판이 필요하다고들 해서 95년에 ‘과학문화연구소’ 간판을 달았을 뿐이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글쓰기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으나, 엄청난 공부로 이뤄낸 글쓰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오른쪽 사진은 이인식씨가 펴낸 책들)


96년 월간지  ‘과학동아’에 성에 대한 연재를 시작할 때도 그는 2년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고시원에 출퇴근하면서 공부하고 글을 썼다. 다음엔 어디로 갈지 모호할 때에도 그는 늘 책 속에서 길을 발견했다.


“컴퓨터 인공지능을 공부하다보니 뇌에 대해 알고 싶어지고, 뇌를 공부하다보니 인간의 마음에 대해 알고 싶어지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심사가 확장된 것이죠. 억지로 분야를 넓힌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책 속에 답이 있고, 한 분야를 10년 파면 길이 열립니다.”


18년 전, 회사를 그만둘 때 그도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큰 조직의 소모품 대신 작아도 ‘내 것’을 생산하고 싶다는 마음이 두려움보다 컸다. “별로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별로 없다”는 배짱도 한몫했다.


18년 후인 지금, ‘내 것’을 만들고 싶다던 그의 꿈은 실현된 셈이다. 자기 이름 석자로 브랜드가 되었다. 요즘 그의 수입은 인세 원고료 강연료 기획료 등 4가지 일로 포트폴리오가 짜여져 있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점점 강연의 비중이 늘어난다. 14일에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특강이 예정돼 있다. 


“조직 안과 밖의 가장 큰 차이는 안정적인 수입인데, 때론 과감한 포기도 필요해요. 돈도 안정적으로 벌고, ‘내 것’ 생산도 하고 그렇게 너무 욕심내면 안돼요. 친구들이 연봉 1억 받을 때 나는 쪼들렸지만, 지금 나는 일하는데, 연봉 1억 받던 친구들은 은퇴하고 다 놉니다.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듯 결국은 세상이 공평한 거거든요. 그러니 좋아하는 분야에서 꾸준히 내공을 쌓으면 언젠가 한번은 찬스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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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지아 2009/05/14 00:31 address edit & del reply

    멋져요~~ 문외한인 저도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일 것 같네요. 이 분야에 관심만(!) 많은 저에겐 솔깃한 얘기네요. 저도 인지과학-뇌구조-마음 이쪽으로 공부해보고 싶었는데. 꼭 나중에 글을 쓰게 되지 않더라도 관심있는 분야들을 파다보면 또 그 관심이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쪽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주고 그렇게 배워나가는 과정 자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인데. ㅎㅎ 개인적으로 숲 생태연구가하고 이분의 터닝포인트가 가장 끌림돠. 십년 파면 길이 보인다.. 흠 지난 십년동안 삽질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젠 그 삽질에 꽤 익숙해졌다고나 할까요. 적성에 맞지 않아서 따라가기 힘들었고 그래서 살아 남으려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지만 늘 내가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만두고 싶었죠. 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일을 정말 즐기는 사람에겐 당할 수 없다는 말이 있쟎아요. 정말 맞는 말이라는. ㅋ 근데 (원래 타고 나지 않았어도) 얼마나 그 일에 익숙하고 잘하느냐에 따라 시간에 지남에 따라 적성이 생기기도 하는 듯 해요. 이 훈련된 적성이 앞으로 할일에 어떤 거름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요. ㅎㅎ

    • BlogIcon sanna 2009/05/15 23:51 address edit & del

      마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 금상첨화이지만,
      하던 일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구.
      훈련된 적성이 네게 값진 거름이 될 것이야. 암, 그렇구말구! ^^

  2. BlogIcon 엘윙 2009/05/14 09:38 address edit & del reply

    외부 교육을 받으러 왔습니다. 강사가 딴소리를 해서 방황중이었는데 좋은 글을 읽게 되는군요..후후.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많습니다.

    • BlogIcon sanna 2009/05/15 23:53 address edit & del

      딴소리하는 강사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집니다.^^

  3. BlogIcon UFO 2009/05/15 23:13 address edit & del reply

    와..놀랍네...
    과학칼럼니스트가 육필원고라니....
    뭔가 달라도 많이 달라....

    • BlogIcon sanna 2009/05/15 23:55 address edit & del

      운전도 안하고,휴대전화도 안쓰셔 ^^
      휴대전화 안쓰게 된 데에는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데,
      그런 것까지 시시콜콜 쓰면 쫌 거시기해서 안썼어~

  4. 2009/06/02 23:33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2009/05/06 19:10

"내 꿈이 어디갔지?" 돌아와 숲 앞에 서다

[중년의 터닝포인트]<11> 김용규씨-벤처기업CEO에서 숲생태 전문가로

Before: 벤처기업 CEO
After: 숲생태 전문가, 행복숲 공동체 대표, 농부
Age at the turning point: 39


그의 숲에 가는 길은 멀고 깊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충북 괴산 행 버스를 타고 내려간 뒤 다시 택시를 타고 숲으로 향했다. 산길에 접어들자 택시 기사는 계속 “어제 세차했는데…”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듯한 비포장 길 앞에서 딱 멈추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이런 차로는 못 가요.”


별 수 없이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산 속으로 한참 걷자 산 위쪽 꽤 높은 지대에 나무 집이 보였다. 저런 곳에서 살면 세상 소음이야 들리지 않겠지만…, 그 적요가 부럽다기보다 ‘무섭지 않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웬걸, 갑자기 개 두 마리가 컹컹 짖으며 적막을 깨뜨렸고 그 뒤로 여자 아이가 웃으며 달려 나왔다. 김용규 씨(42)가 집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늦은 아침 식사를 방금 마친 듯 그의 아내는 달그락 달그락 접시를 씻고 있었다. 산 속에서 막 기지개를 켠 가족의 일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집이 들어선 곳은 말 그대로 그의 숲이다. 그는 벤처회사 CEO를 하다 3년 전 그만 둔 뒤 뜻을 같이 하는 사람 5명과 함께 이곳 숲 7만5000평을 샀다. 앞으로 이 숲을 공동체, 생태 교육의 장소, 창작의 산실로 쓸 계획이며 그가 먼저 지난해 숲 속에 집을 지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숲에서 배운 것들을 최근 ‘숲에게 길을 묻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대도시에서 시골로, 사무실에서 숲 속으로. 간단치 않은 전환이다. 그 씨앗이 뿌려진 건 언제였을까. 변화는 곧잘 낯선 손님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도 5년 전쯤 한창 회사를 운영할 때 우연히 ‘메신저’를 만났다고 했다.


“한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였어요. 인터뷰 도중 기자가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는 거예요. 한 3분가량 멍하니 있었어요. 내 꿈이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더라고요. ‘아, 내가 꿈을 잃어버렸구나’하고 자각하는 계기가 됐지요.”


당시는 그가 다니던 이동통신회사가 1999년 벤처 붐을 타고 설립한 벤처 회사에서 그가 CEO로 일하던 때였다. 가족도 미국에 보내놓고 회사를 키우려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사람 만나는 게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도 그러려니 하던 그에게 갑자기 던져진 질문, “꿈이 뭐냐”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주말만 되면 MTB를 타고 남산 오르내리고 산에 다니면서 ‘내 꿈이 어디 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때 유학을 다녀와 학자가 되겠노라 꿈꾸던 그 청년은 어디로 갔는가. 당장의 답은 구해지지 않았지만, 이전에 잘 몰랐던 숲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저 소나무는 어떻게 바위를 뚫고 자랄 수 있었는지, 질경이 풀은 왜 하필 하고많은 땅 중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졌다. 혼자 숲과 관련한 책을 찾아 읽을 때만 해도 그게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꿈을 고민하다가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나를 찾아 떠나는 꿈 여행’에도 참여했다. 그를 눈여겨본 구 소장이 이메일 뉴스레터인 ‘마음을 나누는 편지’ 필진으로 참여하라고 제안했고, 그는 산에 다니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식물 자연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 내친 김에 숲 연구소 전문가 과정도 수료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숲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며 그에게도 꿈 하나가 생겼다. “지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숲을 만들고 싶다”는 꿈.


“상상해보세요. 이 숲에서 생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나무를 하나씩 심는 거예요. 자신만의 소망나무를 심고 거기에 자기의 꿈을 적은 메모를 붙여요. 이게 쌓이면 이곳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스토리텔링 포레스트 (Storytelling Forest)’가 되는 거예요. 제가 계속 나무를 보살피고 ‘당신 나무에 꽃이 피었어요’ 이런 소식을 홈페이지에서 업데이트해주는 거죠. 멋지지 않아요?”


반대하는 아내를 수목원을 함께 다니며 설득한 끝에 2006년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팔아 괴산에 내려왔다. 농사도 짓고 지난해 여름엔 넉 달간 집을 직접 지었다. 집으로서의 역할이 끝났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재료는 일체 쓰지 말자는 원칙을 정하고 시멘트를 쓰지 않은 채 밭 흙을 다져 기둥을 세우고 목재로  작은 집을 지었다.


직접 집을 짓다니. 그것도 마흔이 될 때까지 사무실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아득하게 느껴져 “집을 어떻게 지어요?”하고 묻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머리로만 생각하니까 그게 엄청 어려워 보이는 거예요. 집을 어떻게 짓긴요. 그냥 짓는 거죠. 집 잘 짓는 사람 모셔서 자문도 구하고요. 배우고 걷는 게 아니라, 걸어가면서 배우는 거잖아요.”


숲에 들어온 뒤 그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과잉친절 베풀기를 그만두었고 거침이 없이 당당해졌다. 세상 흐름에 휘둘리지 않으며 혼자 있으면 “우주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 충만해진다고 했다.


아직 다 현실화되지 않은 그의 계획을 듣다가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봤는데 결국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공포는 없을까?


“왜 없겠어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계속 있어요. 그걸 끌어안고 가는 거죠. 되레 두려움은 죽을 때까지 동행하는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쉬워지죠. 또 이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는 길을 잃어보기 전엔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가 밖에 나가 숲을 보여주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지난해까지 양평에서 생애설계를 돕는 교육 프로그램인 ‘씨앗에서 숲으로’라는 프로그램을 3회 운영했는데 올해부터는 괴산의 숲으로 옮겨와 진행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20여명이 거쳐 간 ‘씨앗에서 숲으로’는 내 안의 씨앗을 발견해 숲의 일원인 나무로 성장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심리학자와 함께 운영하는 프로그램인데 저는 숲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사람들을 돕고 있어요. 숲에 가면 사람들에게 당신을 닮은 나무를 찾아 그 아래 서보라고 해요. 전부 제각각이에요. 어떤 사람은 뒤틀린 나무, 어떤 사람은 가시 많은 나무를 택하죠.”


그는 자기자신을 닮은 나무로 흔히들 ‘엄나무’라고 부르는 음나무를 꼽았다. 잔가지에 억센 가시가 잔뜩 들어찬 음나무처럼 그도 20~30대엔 가시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숲을 만난 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생긴 나무들이 가시를 버리는 것”을 보았고, 변화의 힘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


여전히 그에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의 가족은 숲에서 가까운 증평 군에 산다. 당장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아이 교육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저축해둔 돈을 다 쓰면 어떻게 할 것인지…, 낯선 이의 무례한 질문에도 범상하게 “계속 노력할 것이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던 그가 “여기는 제가 숙연해지는 장소”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저 높은 곳 바위 위에 심하게 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의 성장배경을 들려주던 그의 말이 자신의 삶에 대한 은유처럼 들렸다.


“잘 보세요. 저기 느티나무의 뿌리가 바위를 끌어안은 모양새로 뻗어 있잖아요. 어느 날 바위 위에 떨어진 느티나무 씨앗이 점점 자라면서 제 살 길을 저렇게 찾은 거예요. 소나무처럼 바위를 뚫을 힘이 없는 느티나무 뿌리가 선택한 방법은 바위를 옆으로 끌어안는 것이었어요. 저렇게 바위를 안으면서 자신의 뒤로 신갈나무가 자랄 공간까지 만들어줬잖아요. 어려운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길을 내는 삶처럼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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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현숙 2009/05/07 12:30 address edit & del reply

    아침내내 일이 계획대로 안돼서 몹시 마음이 어지러워져 있었는데, 이 글을 보고 숲에 들어간것처럼 맑아지네요. 좋은 글 고마와요...

    • BlogIcon sanna 2009/05/07 19:20 address edit & del

      쉬엄쉬엄, 차근차근, 그러나 끈질기게~ ^^
      근데 왜 네 블로그는 둘 다 스톱 상태인 거니?

    • 2009/05/07 22:02 address edit & del

      비밀댓글 입니다

  2. BlogIcon 구월산 2009/05/07 13:48 address edit & del reply

    터닝포인트 글들은 두번째 읽을 때가 더 좋네요. 녹차 우려낼 때 처럼 깊은 맛이 살아있습니다.^^

    • BlogIcon sanna 2009/05/07 19:20 address edit & del

      과찬이십니다...말씀에 뒤처지지 않도록 정성들여 써야 할터인디...노력할게요.

    • BlogIcon 당그니 2010/02/01 05:02 address edit & del

      공감...^^

  3. lebeka58 2009/05/08 09:00 address edit & del reply

    구월산님 말씀에 저도 한표! 처음에는 글내용에 빠져서, 그담에는 산나님의 글맛이 맛나서 ...

    • BlogIcon sanna 2009/05/10 23:26 address edit & del

      에궁...넘 과분한 말씀에 민망하기 이를 데 없네염....^^;

  4. layer_cake 2009/05/09 22:35 address edit & del reply

    사진 산나씨가 직접 찍지요? 술로 인한 손떨림이 없으시네..한 잔 더..10점 만점에 10점..

    • BlogIcon sanna 2009/05/10 23:28 address edit & del

      어허,무슨 말씀을~ 잔 받을 때 언제 내가 손 떠는 거 봤냐고오~ -.-+

  5. BlogIcon 지아 2009/05/11 01:41 address edit & del reply

    지금까지 터닝 포인트 중에서 갠적으로 가장 공감가는 스토리임돠.. 아이구 부러워라.. ㅎㅎ

    • BlogIcon sanna 2009/05/16 16:12 address edit & del

      너도 비슷한 꿈을 갖고 있는 모양이구나. 부러운 걸 보니^^
      뭘하고싶은지 잘 모르면 자기가 누굴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지 잘 관찰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대.^^

  6. Playing 2009/05/16 06:32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을 지.. 짐작하는 것조차 쉽지 않네요
    힘든 환경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야 말로 생명의 신비인 거 같네요

    오히려 생명공학도인 저보다 더 깊이있게 자연의 신비를 이해하신 분들이 계신 걸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네요(조금 힘들다는 핑계로 쉬엄쉬엄하는 거 같아 되려 놀래기도하고.. 그래도 나도 할수 있다는 힘도 없는 거 같습니다)어째든 수많은 분들이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생명의 젖줄인 비가 오는 의미있는 주말보내세요 ~ _~

    • BlogIcon sanna 2009/05/16 16:15 address edit & del

      생명공학 공부하시는군요.멋지십니다~
      가끔 댓글 남기시는 거 보면서,'길'과 관련한 고민이 있으신가보다 짐작하고 있어요.
      Playing 말씀대로 '힘든 환경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생명의 신비가 누군들 비켜가겠습니까.
      우리 모두 생명인데요.
      뭐든 힘내시길~ ^^

  7. BlogIcon brandon 2009/06/26 22:12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저도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앞두고 있는데 도전이 많이 되는 글입니다.
    쉐아르님 블로그에서 책 소개 봤어요. 저도 나중에 꼭 읽어보겠습니다.
    앞으로 종종 방문할께요. 감사합니다.^^

    • BlogIcon sanna 2009/06/27 00:51 address edit & del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인생의 터닝포인트 앞두고 있긴 저도 마찬가지인 듯..^^;
      누구나 언젠가는 한번 겪어야 하는 일이겠지요.
      인터뷰를 빌미로 터닝포인트를 지난 사람들 만나면서 저도 많이 배웠답니다.^^

2009/04/28 21:22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평가에 왜 내 인생을 거는가"

[중년의 터닝포인트]<10> 윤학 씨- 변호사에서 공연장 대표 겸 잡지 발행인으로


그는 예전에 돈을 많이 벌었던 변호사다.
변호사 일을 접었지만 면허를 반납한 것은 아니니 여전히 변호사인 건 마찬가지다. 그런 그의 인생 전환도 절박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화이트홀 윤학 대표(52)를 만나러 가던 날도  ‘돈이 많은데 뭔들 못하겠나’하는 삐딱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물어보았다. “여전히 변호사인데, 인생을 걸고 방향을 바꾸셨다고 할 순 없지요?”

그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인생을 걸고? 아, 너무 비장하시네! 하하하~, 전 여전히 그대로예요. 예전엔 한 사람만 변호했을 뿐이고, 지금은 문화를 통해 다수를 변호하니 그게 좀 달라진 점이랄까.”


커다랗게 웃느라 금세 실눈이 되는 그의 웃음엔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순수의 세계에 대한 열망”을 강조했다. “고향 뒷산에서 내려다본 바다 수면 위에 부서지던 햇볕”을 묘사하면서 금세 그리운 표정이 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처음에 삐딱했던 마음도 스르르 풀렸다. 열정은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다.


그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공연장 화이트홀, 갤러리 화이트의 대표이자 월간 ‘가톨릭 다이제스트’와 ‘월간 독자’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너무 힘들고 바빠 도저히 병행할 수가 없어” 지난해 여름 변호사 업무를 완전히 정리한 뒤 이 일에 전념하고 있다.


12년 전 그가 인수하기 전, 고작 500부 발행되던 ‘가톨릭 다이제스트’는 지금 정기구독 독자만 6만여 명이다. 종교를 뛰어넘은 교양지를 표방하면서 2007년 창간한 ‘월간 독자’는 매달 3만부 가량 나온다. 아직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손해 보는 짓”이다. 화이트홀, 갤러리 화이트가 들어선 5층짜리 빌딩이 그의 소유라서 임대료로 적자를 메우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도 발행규모를 축소하기는커녕 ‘월간 독자’ 영문판 발행을 궁리 중이다.


“법률문서를 쓸 때는 ‘내가 이것 잘 써서 뭐하나’ 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있었어요. 내가 글을 쓰면 판사 한 명만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훨씬 재미있어요.”


그는 갑자기 일어나면서 “1000만 원짜리 카드 한번 보실래요?” 하더니 한 수녀님이 ‘월간 독자’를 읽고난 소감을 적어 보낸 감사 카드를 들고 와 보여주었다.

“제가 ‘월간 독자’ 만들면서 한 달에 2000만 원 넘게 써서 없애는 형편이지만 이런 카드 한 장 받으면 아, 정말 가슴이 뛰어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도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품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오랜 세월 그에게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외면할 수 없던 가치였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너무 밝은 달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날, 퇴근을 하는데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다 보니 그날따라 달이 유난히 밝더라고요. 하필 그날 새 사건을 수임하면서 받은 수표가 주머니 여기저기에 가득 들어있었어요. 달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내가 지금 뭐하면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사무치는 거예요. 눈물이 핑 돌았어요. 결국 내가 찾는 세계는 돈이나 권력, 명예가 지배하는 이 세계가 아니라는 생각을 그 때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오랫동안 속해 있던 세계에서 그도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전남 신안 흑산도에서 자란 그는 중학교 졸업 후 대도시 명문 고등학교 입시를 쳤다가 떨어졌다. 대학입시에도 떨어져 두 번 재수를 했고 사법시험에는 세 번 연거푸 떨어졌다. 변호사를 할 땐 ‘네가 꼭 필요하다’는 말에 넘어가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실패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후기 모집으로 들어간 고등학교에 다닐 때, 5월 어느 날 교정에 성모성월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때의 기분을 그는 “전 우주가 내게로 달려오는 듯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클래식의 세계, 그때까지 몰랐던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았다.


선거에서 떨어지면서 겪은 공개적인 실패도 그를 키워주었다. 그동안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허무맹랑하게 들렸고, ‘내 길’을 생각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속해있던 세계에서 최상위의 명분은 ‘정의’였지만 그것 역시 나의 잘못은 덮어둔 채 남의 약점만 물고 늘어지는 불공정 게임일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마흔 넘기며 칭찬도 하루아침에 비난으로 변한다는 것도 체득했지요.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평가에 왜 내 인생을 겁니까. 고작 그런 사람이 되자고 정작 나를 잊고 살 수는 없지요. 그래서 나 자신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일에 정성을 기울이고 사람이 서로 진심으로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싶고요.”


임대료 추가 수입이 꽤 나올만한 공간에 공연장과 갤러리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했다. “좋은 글과 음악, 미술만큼 사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많은 사람이 자신의 본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정말로 뜬금없이 물어봤다. “그런데, 돈을 그렇게 다 써버리면 자녀들에겐 뭘 물려주시려고요?”


“돈요? 자기가 직접 벌지 않은 돈은 쥐약이에요. 그걸 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줍니까? 그보다는 좋은 생각을 심어주는 게 더 중요하지요. 나는 아이들에게도 뭐가 됐든 글을 쓰라고 늘 이야기해요. 글을 쓰면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남이 좋다는 것에 휩쓸리지 말고, 다른 사람의 가슴속 언어를 알아듣는 귀를 키우라고 말이죠. 그렇게만 할 줄 알면 자기 꿈은 스스로 실현할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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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테라의 느낌

    Tracked from terra's me2DAY 2009/04/29 10:18 delete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평가에 왜 내 인생을 거는가'' — 그녀, 가로지르다

  1. BlogIcon inuit 2009/04/28 23:39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저분 깨달음의 순간이 전해져옵니다.
    덕분에 좋은 생각 많이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 BlogIcon sanna 2009/05/02 01:43 address edit & del

      inuit님이 좋은 생각을 하실 수 있으셨다면, 제가 고맙지요 ^^

  2. lebeka58 2009/04/29 10:44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 ~ 저도 산나님처럼 '삐딱한 생각'을 잠시 했었죠, 근데 우리 주변을 보면 더 많은 부를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황금의 마이다스손을 갈망하며 끝없는 집착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 진짜 많거든요. 그런면에서 보면 윤학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크죠, 음~ 얼마전부터 저도 '내게 있는 달란트는 뭘까? '하고 고민(?) 중이거든요..

    • BlogIcon sanna 2009/05/02 01:45 address edit & del

      '달란트'. 성경의 그 '달란트'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
      1달란트 그냥 갖고 있다가 그마저 빼앗긴 종의 이야기를 처음 읽을 땐,
      그 주인 참 가혹하다, 생각했었는데,
      안젤름 그륀 신부님 해석을 듣고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자기 인생을 파묻은 꼴이 아니냐고 해석하시더군요.
      1달란트 마저 잃을까봐 두려워 자기 인생을 파묻어선 안되겠지요.....

  3. layer_cake 2009/04/30 00:56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런데 요즘 쓰시는 글을 보면 탐사/조사 능력이 21세기 초반보다 엄청 늘었어요.. 비결이 뭔가요. 여유? 하여간 글빨로는 editor in chief 떼어 논 당상.

    • BlogIcon sanna 2009/05/02 01:45 address edit & del

      여유라고라고라.....-.-;;;;
      여유는 고사하고 인터뷰할 시간이나 제대로 확보되었으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어흑~ ㅠ.ㅠ

  4. BlogIcon 당그니 2009/04/30 16:53 address edit & del reply

    역시 좋은 글입니다.^^ 굿!! 늘 기대되요! 언제 일본 안오시나 -_-;;

    • BlogIcon sanna 2009/05/02 01:46 address edit & del

      일본 넘넘 가고 시퍼요.....ㅠ.ㅠ

  5. 현숙 2009/04/30 20:57 address edit & del reply

    꿈꾸는 자의 힘, 나홀로가 아닌 모두의 가슴속 공감에 촛점을 맞춘, 꿈의 아름다움...^^

    • BlogIcon sanna 2009/05/02 01:47 address edit & del

      꿈의 아름다움을 선망하면서, 실현 못하는 인간은 또 뭐냔 말이지...에혀~ ^^;
      젠장...하고야 말껴...

  6. Playing 2009/05/05 09:25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아직 어린 분(학생)들에게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번의 실패로 모든 걸 잃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저에게도요 ~ _~

    • BlogIcon sanna 2009/05/05 22:58 address edit & del

      모든 걸 잃게 만드는 단 한번의 실패라는 게 어디 가능하기나 하겠습니까.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힘내세요!!!

  7. BlogIcon UFO 2009/05/28 11:36 address edit & del reply

    자신의 신념을..
    깜끔한 의지를 행동화했다는데...
    놀랍고 경의를 표할만한 분인 듯...
    우린 머릿속으로만 정의,가치를 그릴 뿐...
    흔적을 못남기는데..
    이 분은 만나진 못했지만...글은 거의 읽는데...
    그런 부분에서 존경..

    • BlogIcon sanna 2009/05/31 00:38 address edit & del

      만나볼 기회가 있었을텐데 왜....

2009/04/21 20:43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아요"

[중년의 터닝포인트]<9> 최해숙씨- 디자이너에서 소믈리에로


Before: 인테리어 소재 디자이너

After: 소믈리에

Age at the turning point: 35



나이가 들면 사람은 잘 안변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최해숙 씨(43)는 인생의 행로를 바꾼 뒤 얻은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로 ‘이전과 달라진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을 꼽았다.

안정감 있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인상인데, 그는 예전엔 안 그랬다며 손사래를 쳤다.


“늘 스스로를 끈기가 없고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해왔어요. 내가 강하거나 악착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길을 바꿔보니 내게 강한 면이 있더라구요. 육체적으로 힘든 일처럼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고 상상하던 일을 해냈다는 충족감도 커요.”


그에게 인생 전환은 ‘지금까지 속해있던 상자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두렵고 불안했지만 바깥으로 한 발짝 내딛고, 낯선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지내다 보니 이번엔 달라진 자기 자신이 보이더라고 했다.


LG화학에서 인테리어 소재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35살에 길을 바꿔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소믈리에로 변신했다. 현재 건국대 와인학 석사과정 겸임교수, 와인나라 아카데미 강사로 일하며 소믈리에를 꿈꾸는 사람들을 가르친다.


만약 길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그는 “열의 없이 일을 하면서 ‘이것 말고 다른 세계가 있을 텐데…’ 하며 답답해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똑같이 바빠도 어떤 일은 힘을 소진시키는가 하면, 또 어떤 일은 되레 에너지 공급원이 된다. 그에게 전환 이후의 세계는 후자처럼 보였다.


● 하나의 기회가 새로운 기회를 낳고


대기업에 다니던 10년 전쯤, 그는 늘 ‘내 것’과 ‘창의적인 일’에 목이 말랐다.

전문직이었지만 실제로는 차별화할만한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는 일이 시장, 자재의 트렌드에 제한을 많이 받아 말이 디자이너지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외환위기 때 여자 선배들이 줄줄이 그만두는 것을 보고 ‘내 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도 커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은데 그게 뭔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좀 막막했어요. 그래도 답답하니까 그냥 모호하게 디자인과 관련된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바람이 딴 데서 불어오듯’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2000년, 잡지에서 일하던 아는 이가 요리 코디네이터를 해달라고 부탁해온 것.


“그저 디자이너니까 이것도 잘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부탁했던 모양이에요. 재미있겠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해서 몇 달 독학하며 준비해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내가 찾던 게 바로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요리와 미(美)를 결합하는 일에 매료된 그는 내친 김에 퇴근 이후 이탈리아 요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2001년 회사를 그만둔 뒤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입학했다.


요리를 배우면서 와인의 세계에도 눈을 떴다. 요리 학교를 졸업한 뒤 요리사로 일하면서 소믈리에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요리사로 일하던 소도시 캄피오네 디탈리아는 스위스 안의 이탈리아령. 이탈리아 북부 코모 주의 소믈리에 학교에 가려면 편도 3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다. 그 길을 1년간 1주일에 두 번씩 다니면서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스위스 레스토랑에서 6개월간 소믈리에로 일한 뒤 귀국했다.


결국 요리 코디네이터에 매료돼 요리사가 되었고 지금은 소믈리에로 일한다. 이전에 한 번도 ‘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그의 삶이 된 것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가 새로운 기회를 낳고, 그렇게 우연의 여지를 열어두고 사는 게 재미있잖느냐”고 말했다.


“어떤 일을 하든 저는 3년 단위로 끊어 생각해요. 예를 들면 10년 뒤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질문은 제게 너무 커요. 3년, 그리고 그 안에서 기간을 더 잘게 쪼개어 생각하면 구체적인 목표가 서고, 거기에 도달하고 나면 또 다른 조건이 형성되고 하는 거잖아요. 인생을 미리 어떻게 계획하겠어요. 엄청난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 해보고 후회하자


인생 전환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에게도 마치 계획이나 된 듯 시기가 딱딱 맞았다. 미리 예견하고 준비해서 그리 된 게 아니라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처음에 회사 그만두고 요리 유학 간다니까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하고 많은 일 중 왜 하필 요리를 배우냐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에서 어찌나 걱정들을 하던지…. 우리 엄마만 해도 딸이 요리 공부하러 갔다고는 말씀을 못하시고 디자인 공부하러 유학 갔다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이탈리아에서 1년 반을 지낸 뒤 한국에 잠깐 왔을 땐 그를 대하는 사람들 태도가 달라졌다. 왜 그런가 했더니 ‘대장금’ 영향이라고들 했다. 와인을 배우고 다시 돌아오니 이번엔 웰빙 트렌드를 타고 와인 붐이 불었다.


“시기가 우연히 맞았을 뿐 전략적으로 좇은 건 아니에요. 저는 남들이 많이 하는 일엔 관심이 별로 안 생겨요. 남이 별 관심 없거나 ‘그건 좀 빠르지 않아?’할 때 슬슬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지요.”


독자적인 판단으로 길을 열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도 처음에 고민을 시작할 때는 남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내가 뭘 잘 할 것 같은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친구들 중엔 ‘넌 요리를 잘하니까 그런 건 어때?’했던 사람도 있었고 성격이 외향적이니 사람 대하는 일을 하라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 말을 들을 땐 서로 연결이 잘 안되는 일이라 그냥 한 귀로 흘렸는데, 소믈리에가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요. 어떨 땐 주변 사람들이 더 나를 잘 보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늘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그는 ‘내 것’과 ‘창의적인 일’을 갈망하던 꿈을 이룬 것일까. 그는 절반 이상은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요리와 와인, 여행이 결합되는 지점에서 사업을 해보는 게 그의 목표다. 소믈리에 선생으로 일하는 요즘에도 손이 굳을까봐 계속 집에서 디저트를 만든다.


처음에 "저처럼 저질러도 크게 잘못되지 않더라고 들려주면, 전환을 꿈꾸기만 하고 실행을 못하는 사람들도 기운은 나겠네요"하면서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던 그는 '저지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뭐든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나아요. 안 해보면 미련이 쌓이기도 하고, 해봐야 내가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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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

    Tracked from 당그니의 일본표류기 2009/04/22 01:40 delete

    살다보면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연애든, 사업이든, 만남이든,스카웃제의든, 작가 제의든. 문제는 그 기회라는 쪽지를 집어드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그 쪽지가 공수표인지 로또인지는 집어봐야만 안다. 때때로 독배일 수도 있다. 인생에서 아주 치명적인...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새벽 2시에 베란다에 가서 담배를 입에 댈 수도 있을 것이고, 평소에 친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만나자고 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곰곰히 몇번이고 자기가..

  1. BlogIcon 당그니 2009/04/22 01:41 address edit & del reply

    일등. 산나님 글은 늘 제가 일등하고 싶은데^^;;; 오늘도 운이 좋네요^^;; 중년의 터닝포인트; 최고입니다.

    • BlogIcon sanna 2009/04/22 13:15 address edit & del

      하하~감사합니다.
      일본에 벚꽃은 다 졌나요?
      올해는 꽃구경도 못해 어찌나 서운하던지....ㅠ.ㅠ

    • BlogIcon 당그니 2009/04/23 00:44 address edit & del

      벌써 몇주전에 졌죠 ㅜ.ㅜ

  2. BlogIcon 엘윙 2009/04/24 23:00 address edit & del reply

    디자이너라고 해도 대기업에 다니면 어쩔수 없는 것이로군요.
    뭐든 해보고 후회는 나중에 하는 것. 겁이 많은 저도 공감하는 말입니다. 몸치라서 춤을 좀 배워보고 싶은데..쪽팔리더라도 함 배워볼까요. -ㅅ-? 남친한테 물어보니깐 혼낸다는군요. 이 나이에..눈치를 봐야하다니 흑흑.

    • BlogIcon sanna 2009/04/28 21:29 address edit & del

      아니 그 남친께선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 모를까, 도대체 왜 혼을 내신답니까?????? ^^

  3. BlogIcon 지아 2009/04/26 13:33 address edit & del reply

    다른걸 다 떠나서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무지 부럽네요.. 제가 와인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ㅎㅎㅎ.
    언니랑 이번 여름엔 꼭 와인 한잔 같이 할 수 있겠죠? 두잔도 좋고 ㅎㅎ

    • BlogIcon sanna 2009/04/28 21:29 address edit & del

      그러엄~~한 병도 좋고, 두 병도 좋고 ^^

2009/04/07 18:02

"틈새의 문을 열고 나가면, 꿈이 현실이 됩니다"

[중년의 터닝포인트] <8> 최준영 씨- SADI 교수에서 보트 제작자로

Before: SADI (삼성 아트&디자인 인스티튜트) 교수

After: 보트 빌더

Age at the turning point: 37



갑자기 순간이동을 통해 다른 시, 공간에 들어서는 듯했다.

번잡한 대학로 한 복판에 시침을 뚝 떼고 서 있는 30여년 된 낡은 주택. 지하 공방엔 미완성의 배들이 목재의 맨살을 드러내고 누운 채 허공에 떠있는 완성된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조로 된 2층의 사무실에 걸린 카약 두 척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날렵했다.


“죽은 나무에 정성을 들여 물고기로 만들었더니 다시 살아서 바다를 헤엄치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멋지잖아요. 배를 만드는 일엔 그런 쾌감이 있어요.”


최준영 씨(41)가 나지막하게 말할 때, 나는 은밀하게 꿈꾸는 연금술사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반듯하게 켜놓은 죽은 목재에 비틀고 휘는 고통을 가해 생명을 불어넣어 바다로 돌려보내는 꿈.


어릴 때부터 그는 부모를 따라 해수욕장에 놀러가서도 물놀이 대신 근처 포구에서 배 구경을 즐겼다. 그에게 배는 물고기였다. 작은 배는 꽁치, 큰 배는 고래였다. ‘물고기’를 만드는 일이 언젠가는 자신의 일이 될 거라고 어렴풋하게 예감했다. 그 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약간의 우회로를 걸어야 했지만.


● ‘물고기’를 만들 운명을 좇아서


삼성의 디자이너를 거쳐 이노디자인 그래픽 총괄이사, SADI(삼성 아트&디자인 인스티튜트) 교수로 일하던 그는 2005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보트 빌더(Boat Builder)로 전향했다. 지금은 부모님이 살던 대학로 주택에 ‘올리버 보트’를 열고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며 주문 제작을 하고 있다. ‘항로 전환’이 궁금해 찾아 왔다고 하자 그는 “내가 방향을 확 틀었다고 할 수도 없는데…”하면서 당혹스러워 했다.


“전 어릴 때부터 종이에 디자인을 했고, 커서는 전자제품을 디자인했고, 지금은 주머니에 안 들어가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차이 밖에 없어요. ‘업(業)’을 넓혀 왔을 뿐이지요.”


어릴 적부터의 매혹을 잊지 못한 그는 97년 삼성에 입사할 때에도 “마흔 전엔 나와서 배를 만들어야지” 생각했다고 한다. 일찌감치 ‘터닝 포인트’를 점찍어둔 셈이다. 혼자서 꿈꾸다 제 풀에 시들해질 법도 하건만, 그에겐 준비를 결심하게 만든 만남이 있었다.


96년 그가 런던의 광고회사에서 잠깐 일할 때였다. 우연히 예순이 넘은 원로 파트너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네가 꿈꾸는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면 몇 살 때 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저도 모르게 ‘마흔’이라는 대답이 나왔는데, 그 분이 ‘그러면 10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하라’고 조언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요. 열 살 이전을 빼고 생각해도 첫 직장을 갖기까지 15년 넘게 준비하는데 두 번째 인생을 준비 없이 맞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 제겐 행운이죠.”


한국에 돌아와 직장에 다니면서도 혼자 계속 목선 제작 관련 자료를 모으고 습작을 거듭했다. 언제 쓰일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만들어둔 자료 앨범이 나중에 티켓이 됐다. 2005년 산업자원부가 모집한 ‘차세대 디자인 리더’에 그의 선박 디자인이 선정된 것. 주저 없이 사표를 내고 산자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 워싱턴 주의 노스웨스트 보트 빌딩 스쿨 (School of Northwest wooden boat building)로 떠났다. 37살 때의 일이었다.



● 오래 기다려온 보이지 않는 손


오래 꿈꿔온 길에 마침내 들어섰을 땐 어떤 기분일까. 정작 그는 “별 감흥이 없다”고 한다.


“뭔가 결단할 때는 스스로 대단한 용기라도 낸 양 생각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아, 그때 내가 그냥 운이 좋았구나’하고 깨닫게 되잖아요. 마찬가지죠. 터닝 포인트 자체는 사건일 수 있지만 그 뒤에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운명 같은 길을 좇아가면서도 불안한 건 여전했다. 아내와 가족 모두 그의 결정을 지지했지만 괜히 혼자서 ‘내가 이래도 되나’하는 고민을 끌어안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저축해놓은 돈과 시간을 계산해가며 ‘이 정도 총알이면 얼마를 살겠구나’ 하고 막막해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보이지 않는 손이 도와주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더라고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2006년 10월 한국에 돌아와 “배를 만들자”는 생각 이외에 아무 계획 없이 작업장을 열었는데 해양레저시설, 마리나(요트계류장)가 속속 들어서고 2008년 경기도가 제1회 보트 쇼를 열었다. “준비운동 마치고 나니 갑자기 대회 일정이 잡히듯” 그가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계속 생겼다.

 

그의 주요 수입원은 카약 제작이지만 사실 카약은 그의 주 전공 분야가 아니다.

미국에서 배 만드는 일을 배울 때 저녁 시간이 아까워 마침 근처에 살던 전설적인 카약 빌더에게 카약 만드는 법을 배웠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카약을 계속 만들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세일 보트, 파워 보트를 만들고 있는데, 우연한 방식으로 일이 풀렸다.


“작업장이 대학로에 있다보니까 카페인 줄 잘못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요. 그 중에 몇 명이 제가 만들어놓은 카약을 보고 감탄하더니 어떤 사람이 주문을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한두 대씩 팔리다보니 어느새 수입원이 되어버렸어요.”


카약 1대를 제대로 만들려면 1000만원이 넘는다.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 애호가들을 보고 그는 200만원 중반대의 카약 키트를 개발했고 요즘 주말마다 약 8주의 일정으로 사람들에게 카약 제작을 가르친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이 떠올랐다. 천복을 따라 살면 창세 때부터 거기서 날 기다리고 있던 길을 만나게 되고 늘 보이지 않는 손이 따라다니며 문을 열어줄 거라던….


그에게 이 말을 들려주자 그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까지는 모르겠고 다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어요. 누군가 어떤 꿈을 갖고 있다면 그걸 계속 꿈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객관화해서 생각해보면 틈새가 있을 것이고, 그 틈새의 문을 열고 나가면 꿈이 자기 현실이 될 수 있어요.”

 

틈새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다고?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 한두 개를 버리면 결정이 쉬워진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버리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닌 부모님, 가족 이외에 중요한 것인 월급봉투를 버리고 난 뒤 그에게도 길이 열렸다. 그는 “소중한 것을 못 버리고 전부 다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배도 만들고 예전처럼 안정성도 추구하고,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가치 있는 ‘생물’로서의 배


그는 선박학교를 열기 위해 지방교육청 한 곳과 이야기를 진행 중이며 부지 확보까지 마쳐놓았다고 한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9월 선박학교의 문을 연다.


배를 잘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손재주일까. 그가 고개를 저으며 “큰 선을 보는 눈”이라고 단언했다.


“전체를 보고 선을 그릴 수 있는 눈이 가장 중요해요. 선을 그리는 눈을 키우려면 논리력이 있어야 해요. 엉뚱할지 몰라도 저는 제자들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을 시킵니다. 논리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면 논리적 사고가 안 되고, 논리적 사고가 어려우면 선을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해내는 게 불가능하죠. 논리적인 사고와 그의 구현이 보트 빌더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그는 “고급 목조 연안여객선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면서 “가치 있는 ‘생물’로서의 배를 만들고 사람이 ‘짐’으로 배를 타는 게 아니라 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에게도 잘 묻지 않던 질문을 그에게 뜬금없이 던져보았다. 요즘 행복하신가요?


“글쎄요. 행복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어요. 다만, 날마다 그날 하다 만 작업을 꿈꾸면서 잠자리에 들고, 목재를 이렇게 잘라 저렇게 붙이고 하는 작업을 마저 하고 싶어서 눈이 떠져요. 그걸 행복이라고 부른다면 전 행복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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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험블의 생각

    Tracked from humbleprogrammer's me2DAY 2009/04/07 22:31 delete

    누군가 어떤 꿈을 갖고 있다면 그걸 계속 꿈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객관화해서 생각해보면 틈새가 있을 것이고, 그 틈새의 문을 열고 나가면 꿈이 자기 현실이 될 수 있어요.

  2. Subject iron의 생각

    Tracked from ironyjk's me2DAY 2009/04/09 22:57 delete

    틈새의 문을 열고 나가면, 꿈이 현실이 됩니다

  1. BlogIcon 당그니 2009/04/08 01:47 address edit & del reply

    일등.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인터뷰네요.^^

    • BlogIcon sanna 2009/04/08 20:56 address edit & del

      캄사~^^ 쓰는 저도 생각이 복잡해지더이다~~^^

  2. ryung 2009/04/08 12:50 address edit & del reply

    여기저기 점으로 존재하던 분들이 네 글로 연결돼 커다란 그림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아....마지막에 고개 들어 전체를 보는 순간, 너마저도 아~~할 것 같은데....^^

    • BlogIcon sanna 2009/04/08 20:56 address edit & del

      큰 그림이 보이거든, 나한테도 알려줘~~~^^

  3. BlogIcon 구월산 2009/04/08 16:48 address edit & del reply

    Turning Point의 글들은 정말 하나같이 왜 이리 품질이 높은 건지..산나님의 다른 글들이 못하다는 말은 아니고요..^^ 암튼 오늘도 훌륭한 글 잘 보았습니다.

    • BlogIcon sanna 2009/04/08 20:57 address edit & del

      과찬이십니다.....ㅠ.ㅠ
      구월산님도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으셔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일거예요.

  4. 현숙 2009/04/09 18:23 address edit & del reply

    배가 너무 이쁘다...^^ 전 내용도 내용이지만 첫번째 사진 뒷편 벽에 공구들 정돈된거 보고 감동~~아마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준비하셨겠죠? 정교한 삶의 설계도를 가진 사람은 남들 눈에 비치는 것만큼 자신을 낯설게 받아들이거나 색다른 감흥을 느끼지않고도 한발씩 나아갈 수 있는 건가. 앞의 분들과는 또다른 색깔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어요...

    • BlogIcon sanna 2009/04/09 20:38 address edit & del

      내가 사진을 잘 못찍어 그런데, 배 진짜로 보면 정말 예뻐.
      나도 카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 분 참 부럽더만...^^

    • 현숙 2009/04/09 23:19 address edit & del

      그러게...배라는 게 저렇게 반들반들하고 선이 고운 건줄은 몰랐어요. 육체노동 + 치밀한 기획 요소가 결합된 일, 매력적인거 같애요. ^^ 이분의 시선이나 삶을 전개해나가는 방법론이 무척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그거일지도. 사람이 직업을 선택하는 거지만, 직업의 속성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면이 있는건지도.

  5. Playing 2009/04/18 09:17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어제와 똑같이 행동하면서 내일이 달라지길 바라는 저에게
    좋은 룰모델이 나타난 거 같아서 마음이 좋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런데 논리적인 말하기와 글쓰기를 강조하시는 거 보니 제자들의 성장이 벌써 눈에 보이네요

    • BlogIcon sanna 2009/04/21 22:46 address edit & del

      좋은 롤모델이라고 생각하신다니 저도 좋습니다.^^
      대학로에 한번 찾아가보세요~
      네이버에 '올리버보트 카페'검색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