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6 23:17

친절함의 가치

저는 제 가치의 리스트에서 '친절함'을 제일로 꼽고 싶습니다. 
몇 년 전 한 러시아 작가가 세계2차 대전의 소련에 대해 쓴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 어느 한 지점에서 작가는 어떤 인물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실제로, 사회체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 이어서 그가 던진 말은 "우리 삶에서는 친절함이 전부"라는 것이었습니다. (...) 친절함, 관대함, 착함, 타인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는 것.
때로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이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야'라고 말이죠. 하지만 당신은 타인이 그 문제를 어떻게 보는 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죠. 또한 나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사람을 해칠 어떤 일도 하지 않았어'라고 말이죠. 하지만 상대는 아픔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이 믿고 있는 부분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 감정을 살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이 인간 존재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향해 감정을 이입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 등 말이지요."
- '가치를 다시 묻다'에서 하워드 진 -

'가치를 다시 묻다'는 인디고 서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청소년들이 세계 석학들에게 우리가 되새겨야 할 가치에 대해 직접 질문해서 엮은 책. 아이들이 칮아가서 만난 석학들보다 나는 이 아이들이 훨씬 대단하다고 보는데, 아이들이 만난 쟁쟁한 사상가들의 말 가운데 유독 하워드 진의 저 말이 꽂힌다. 평생 투철한 실천가로 살았던 그가 삶의 막바지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가치가 일생을 바쳐 옹호해온 '정의'도 '평등'도 '자유'도 아니고 '친절함'이라니...묘하게 슬프면서 감동적이다. 맞아, 제아무리 옳은 일이든 뭐든 원래 여기서 출발해야 하는 거였어,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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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yer_cake 2010/05/16 23:26 address edit & del reply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산나님 한 분이 예닐곱 명을 왕따시키고 있습니다..ㅎㅎ 맥주 한 잔 해요..공부 그만하시고..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5/16 23:28 address edit & del

      그러니까 예닐곱명이 저 빼고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독특하게 말씀하시는군요.^^

  2. layer_cake 2010/05/16 23:32 address edit & del reply

    친절함이 삶의 모토인 제가 그랬을리가요..문자 확인 요망..다음 주 입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tobeortohave BlogIcon 지아 2010/05/17 10:22 address edit & del reply

    하워드 진은 대중 강연할때도 말 한마디 표현 하나에도 그 성품이 드러날 정도로 온화하고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분이었죠. 이제 그분 연설을 다시 들을 수 없게 된게 넘 슬퍼요. ㅠ.ㅠ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5/17 23:55 address edit & del

      "달리는 기차" 책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무지 딱딱하고 메마른 사람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예상외로 네 말대로 온화하고 다정한 느낌이 들더라.그 심각한 책에서도 말이지.

  4. Favicon of http://elwin.tistory.com BlogIcon 엘윙 2010/05/17 21:46 address edit & del reply

    여러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는게 사람이니까..친절함이 기본 덕목인가봅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5/17 23:57 address edit & del

      같이 생활하다보면 친절보다 짜증이 앞설 때도 많은데 말입니다...친절한 엘윙씨가 되세요! ^^

  5. 2010/05/18 00:2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5/19 20:44 address edit & del

      헉~나도 쇼크. 걔가 좀 과격해서 그럴거야.ㅎㅎ
      친절이야 차고 넘치니 고민 붙들어 매삼~ ^^

2010/02/28 01:56

부러운 사람

".....우리 테이블에는 최근 대학을 졸업한 젊은 여성도 있었는데 중미의 촌락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간호학교에 막 입학한 이였다. 그녀가 부러웠다. 사회에 대한 기여가 너무 간접적이고 불확실한, 글을 쓰거나 가르치고 법을 업으로 삼고 설교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나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이들에 관해 생각했다. 자기 손으로 무엇이든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빗자루 하나라도 만들고 싶다는 평생의 바람에 대해 시를 쓴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나는 떠올렸다.”

-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

 

오랫동안 내팽겨쳐 둔 세 번째 책을 위해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돌아다니고 원고를 쓰는 중이다. 얼마 전에 만났던 한 여성의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말을 다루는 일을 하다가 아주 구체적으로 사람을 돕는 일로 전업하게 된 그가 “땅에 발을 딛고 몸으로 부딪혀 세상을 배우는 구체적인 삶”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얼마나 기쁨에 차 있는지를 말보다 눈빛을 보고서 알았다. 새로 시작한 일을 들려줄 적마다 그의 눈은 유난히 반짝거렸고 덤덤한 표정에도 생기가 돌았다. 번번이 기억의 시계를 되돌려 이미 지나온 과거를 들려달라고 청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하워드 진의 에세이집에서 읽었던 위의 구절이 떠올랐다. 미국의 실천적 지식인으로 손꼽히던 하워드 진조차 간호학교에 입학하는 젊은 여성을 부러워했다. 추상적 개념을 다루거나 글과 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회의하며 ‘구체적 삶’을 동경한다.


집에 돌아온 뒤 나는 오래전 밑줄을 그어둔 이 구절 옆에 한 마디를 더 적어놓았다. ‘구체적 삶’이 변화시키는 대상은 다른 사람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고. “타자지향적인 목표와 가치, 연결선이 명확하게 보이는 일을 하게 되면서 나 자신이 달라진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서다.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만큼 그가 고양된 것은 커다란 보상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도 낮아졌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일이 얼마나 목적을 달성할지도 알 수 없다. 충만함은 그런 데에서 오는 게 아닐 것이다. 다시 하워드 진의 말에서 한 대목.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보상은 미래의 승리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는, 함께 위험을 무릅쓰며 작은 승리를 기뻐하고 가슴 아픈 패배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얻는 고양된 느낌이다.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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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tobeortohave BlogIcon 지아 2010/02/28 06:00 address edit & del reply

    구구절절 공감이예요. 언니 새 책은 그 전에 실었던 turning point에 대한 건가 보죠? 아흐... 저도 빨리 turn하고 싶은데 ㅋㅋㅋㅋ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2/28 22:11 address edit & del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좀 쉬어도 되지 뭐~ 너무 조바심갖지 말고 느긋하게 지내.

  2. lebeka58 2010/03/01 12:19 address edit & del reply

    살면서 깜빡깜빡 잊고 있던 걸 다시금 일깨워주시는 글이네요.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다름으로 해서 구체적 삶의 방법이 다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말과 글의 힘은 정말 크고, 이또한 아무나 하고자 한다해서 할 수 있는건 아니거든요. 그런면에서 전 산나님이 넘 부럽사와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3/03 00:39 address edit & del

      말과 글의 힘에 대해 회의적이라서...레베카님 댓글 보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3. Gomy 2010/03/02 16:39 address edit & del reply

    반갑습니다. 돌아오신 것을 확인하니 제 얼굴에도 아래 동자와 같은 미소가 (물론 그 정도로 귀엽지는 절대 않으나 ^^) 퍼지는군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3/03 00:40 address edit & del

      Gomy님은 언제 돌아오셔서 저도 동자처럼 웃어보는 기회를 갖게 해주실라나요? ^^

  4. 경심 2010/03/03 02:01 address edit & del reply

    선배가 책 글귀를 옮겨 놓으실 때마다 궁금한 게 있어요. 늘 다 외우고 계신 걸까, 한 단어나 맥락을 기억하다가 옮겨 놓으시는 걸까. ^^선배가 여기저기 흩어놓은 조각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리운 마음이 듬뿍 일어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3/03 15:22 address edit & del

      '기억력'보다 '망각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내가 그걸 다 외울리가 있니~^^
      막연하게 생각나면 찾아보는 정도야.찾아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경우가 훨씬 많고.
      그건 그렇고,잘 지내지? 봄에 꼭 만나자.

  5. Favicon of http://elwin.tistory.com BlogIcon 엘윙 2010/03/07 13:12 address edit & del reply

    왠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실체가 없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ㄱ-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10/03/09 01:38 address edit & del

      헐~뭘 그렇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