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3 00:49

마음껏 저지르고 후회하라

If의 심리학8점


인생의 마지막까지 가져가지 말아야 할 유일한 감정이 있다면, 그건 ‘후회’라고 생각했다.
혼자 떠올린 기특한 생각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파울로 코엘료 등 지혜로운 분들이 먼저 생각해내고 그렇게 권했다.
그 조언을 착실히 따르려 애쓰면서, 뭘 할까 말까 고민할 때마다 판단 기준으로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잘 산 인생의 전범이 아닐는지.

그런데 ‘IF의 심리학’을 쓴 미국 심리학자 닐 로즈는 후회가 그렇게 기를 쓰고 피해야 할 부정적 감정이 아니란다. 후회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뇌의 반사작용이므로 막으려 해봤자 소용없고 되레 유익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문학의 영역에선 곧잘 비장하게 다뤄지는 후회라는 감정을 ‘뇌의 기능’이라는 각도에서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행복, 사랑의 열정에 과학의 돋보기를 들이대면 우습고 초라해질 때가 종종 있는데, 후회의 감정을 그 돋보기로 들여다보니 좀 다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후회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건강한 삶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므로 후회한다고 자책할 필요도, 후회할까봐 주저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저자는 후회를 ‘사후가정 counter-factual 사고’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만약 ~했더라면’ ‘~할 수도 있었는데’ ‘거의 ~할 뻔 했는데’처럼 실제와 다른 결과를 상상하는 생각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통스러운 후회는 그에 따른 감정적 부산물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후회는 빠르게 생겼다가 없어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우리를 발전시킨다”고 설명한다. 다음번에 더 나은 대처방안을 생각해내도록 돕고 삶에 대한 통제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후회의 목록을 살펴보면 자신이 인생의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히는 어떤 종류의 후회는 “아직 남아있는 기회를 잡으라는 경고의 소리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후회가 계속 남아있는 이유는 뭔가를 할 기회가 계속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성인 수천 명을 대상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많이 하는 후회 1위는 학업에 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언제든 학교에 돌아가 다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후회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합격했을텐데’처럼 더 나은 상황과 비교하는 상향적 사후가정과 ‘죽을 수도 있었는데 다리만 부러져 다행’처럼 더 나쁜 상황과 비교하는 하향적 사후가정이다.
둘 다 나름의 기능을 갖는다. 상향적 사후가정은 뭔가를 해서 상황을 바꾸려는 개선의 시작이며 하향적 사후가정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안도하게 만들고 마음을 위로한다.

상향적 사후가정은 스스로 의식하면서 하는 생각이지만 하향적 사후가정은 거의 자동으로 일어난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향 비교를 할 대상을 만들어낸다. ‘세상을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서 마음을 편하게 위로하는’ 건 인간 마음의 뛰어난 능력 가운데 하나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를 쓴 하버드대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이같은 마음의 작동을 ‘심리적 면역체계’라고 개념화했다.

심리학 연구결과 사람들이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는 경우가 이미 한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월등히 많은 까닭도 심리적 면역체계 때문이다. 심리적 면역체계엔 이미 저지른 일을 더 강하게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마음의 작동 기제에 대한 설명과 사례가 적절히 포함돼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후반부엔 사후가정사고의 작동 방식을 이용해 후회의 고통을 더는 방법, 물건을 잘 사는 기법, 협상을 잘 하는 기법, 시험장에서 답이 헷갈릴 때 기억해둘만한 요령 등 실용적인 팁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 모든 팁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그냥 저질러라’였다. 탁월하게 진화해온 우리의 뇌는 우리가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리건 간에 결국은 그 결과에 만족하도록 스스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에서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뇌의 작용을 저자는 ‘존엄한 능력’이라고까지 불렀다.

물론 나쁜 후회, 심리적 면역체계를 압도해버리는 비극적 후회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경우에조차 과거 대신 미래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일이면 그게 무엇이든 저질러야 한다고 권한다.

그게 무엇이든, 희망이 있든 없든, 뭐라도 해야 한다. 고통이나 절망보다 더 나쁜 최악의 상황은 인생이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걸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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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테라의 생각

    Tracked from terra's me2DAY 2008/11/03 10:37 delete

    그게 무엇이든, 희망이 있든 없든, 뭐라도 해야 한다. 고통이나 절망보다 더 나쁜 최악의 상황은 인생이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걸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삶이 아닐까.

  2. Subject iron의 생각

    Tracked from ironyjk's me2DAY 2008/11/03 13:00 delete

    그냥 저질러라

  1. Favicon of http://mitan.tistory.com BlogIcon 미탄 2008/11/03 10:45 address edit & del reply

    마지막 문장 두 줄에 밑줄 쫙 긋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11/04 00:01 address edit & del

      얼마 안되는 제 생각에 밑줄 그어주셨군요. 캄사~ ^^

  2. Favicon of http://elwing.co.kr BlogIcon 엘윙 2008/11/03 20:14 address edit & del reply

    요즘 가슴이 답답한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저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후우. 그냥..말해야겠어요. 화이팅!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11/04 00:01 address edit & del

      아,그럴땐 저지르라던데요. 홧팅! ^^

  3. Favicon of http://songkang.tistory.com BlogIcon 구월산 2008/11/04 03:26 address edit & del reply

    저지러면 후회할 것 같고...않해도 후회할 것 같은 상태에 오래 빠져있다면........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11/06 17:50 address edit & del

      해도 후회,안해도 후회라면, 저같음 하겠습니다.^^

  4. 사복 2008/11/05 20:07 address edit & del reply

    요며칠... '저지름'(지름신은 아님다) - '몰아치는 후회' - '더 저지름' - '더 크게 몰아치는 후회'...의 무수한 반복을 하고 났더니... 어질어질... 한 지경이 됐습니다 -_-; 그 책에.. 혹시.. '적당히 저지르시오' 그런 말은 없었나요? ㅠ_ㅠ;;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11/06 17:52 address edit & del

      아,물론 있지요.냉정히 상황 평가해가면서 제대로 선택하라는.사실 하나마나한 말이지만요.^^

  5. Favicon of http://www.ufosun BlogIcon UFO 2009/10/20 17:56 address edit & del reply

    통계를 매볼까?
    저지르고 후회한 것들
    저지르고 웃었던 기억들...
    아마도 뒷쪽이 많다고 주장할거쥐???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9/10/20 21:08 address edit & del

      당근이쥐 ^^

2008/07/14 00:31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지요. 매일 아침 양치질을 하면서,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고.

멀게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가까이는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까지, 현명한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인생의 상담자로 삼으라고 충고합니다. 나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자각을 의식적으로 일상에 끌어들일 때, 내게 절실한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취지에서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잡스의 흉내를 내어 얼마 전부터 아침에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이 일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해보니, 참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더군요. 며칠 내리 물어도 제 대답은 늘 ‘아니오’이거든요. -.-;
지금 하는 일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걸 안다면 전 어떤 종류의 일상적인 일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보다는 내 흔적을 내 손으로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걸 감사하며 흔적들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내가 살아있음을 체험하게 해준 공간을 찾아가 기억 속에 담는 일 등등을 하려들 것같아요. 좌우간 문제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질문을 아침에 던졌을 땐 늘 오늘의 일이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다가 궁즉통이라고, 같은 질문을 다른 시간대에 다른 방식으로 던져보기로 했습니다. 즉, 밤에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나의 하루를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이 달라지더군요....조삼모사에 희희낙락하는 원숭이가 된 것같은 기분이 좀 들긴 하지만 ^^;, 어쨌건 아주 사소한 일 하나가 생애 마지막 날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준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 잔뜩 화가 났을 때 슬슬 구슬려 달래고 기분 좋게 해주려 애를 썼던 사소한 노력 하나라도 했다면 그날 하루가 마지막 날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100km를 가야 하는데 1km라도 걸었다면, 목표지점 근처엔 가보지도 못했지만 적어도 움직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생애 마지막 날을 후회하지 않게 되더군요.
물론 '후회한다'고 자백하며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은 날도 꽤 됩니다. 또 후회하지 않는 날조차 하루를 잘 살아서라기보다 이미 벌어진 일을 합리화하려고 애를 쓰는 마음의 작용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꼭 합리화만은 아닌 것이, 이런 질문을 통해 그날 하루 한 일 중 어떤 일이 지속적으로 내게 만족감을 주고, 어떤 일이 지속적으로 불만족의 원천이 되는가를 스스로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만족감을 주는 일을 늘리고, 불만족스러운 일을 의식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고 말이죠. 그러다 보면 혹시 압니까. 언젠가는 아침에 질문을 던졌을 때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어도, 난 이 일을 하겠다'고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올는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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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물결의 생각

    Tracked from waterscale's me2DAY 2008/07/15 21:41 delete

    오늘 하루를 후회하지 않게 보냈는가?라는 질문은 나름 답하기 쉽지만,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게 보낼까라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 죽기전에 해봐야 하는 것들은 너무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렵거나, 너무 거창해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다..

  1. 동생 2008/07/14 15:49 address edit & del reply

    사진에서 가슴이 콱 막혔다는...저는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비행기를 타겠사와요, 한 시간이라도 땅을 밟아 봐야지...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07/15 00:32 address edit & del

      멋지다! ^^ 갈 날이 얼마 안남았구나.

  2. 이쁜이 2008/07/14 20:07 address edit & del reply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사과나무를 심으리라....크하핫.
    마지막 날을 상정하고 사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 경우 선배 말처럼 소소한 일상 혹은 반복되는 업무(예를 들면 출근, 조출 당번...이런 거)에 시큰둥해지는 문제점이 있자나요. 마지막 날을 마지막 날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런 일상이 차곡차곡 아름답게 쌓이는 거라던데.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07/15 00:33 address edit & del

      그러니깐 나처럼 해봐. '마지막 날'이라고 아침에 생각하면 매사가 시큰둥해지지만 밤에 생각하면 시시한 일들도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

  3. Favicon of http://inuit.co.kr BlogIcon inuit 2008/07/14 23:35 address edit & del reply

    참 예리한 관찰이시네요.
    아침에 묻는거하고 밤에 묻는거하고 사뭇 느낌이 다르죠.
    산나님 정말.. 여행에서 득도하신듯 해요. ^^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07/15 00:51 address edit & del

      허걱~득도라뇨...그저 어케하면 맘 편히 살까를 욜씨미 궁리할 따름입죠.^^

  4. Favicon of http://crazia.fiaa.net BlogIcon 광이랑 2008/07/16 08:53 address edit & del reply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점이 많다는 것은 정말 동의합니다. 죽을뻔 했다고 착각했던 경우에도 효과는 비슷하게 나타나더군요. 저에게 나타난 반응은 사소한 일에도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 ,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07/16 19:15 address edit & del

      "죽을뻔 했다고 착각했던 경우"를 겪으셨군요.쉽지않았을 거라고 짐작합니다.동시에 잊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도요.

  5. Favicon of http://mitan.tistory.com BlogIcon 미탄 2008/07/16 11:10 address edit & del reply

    블로그이웃이 나를 쳐다보고 있고,
    나의 새로운 포스트를 기다리고 있고,
    선한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고 있다는 자각이
    다시 한 번 포스트거리를 찾아 머리와 몸을 움직이게 하고
    그런 작업이 쌓여 하나의 변화가 되고 성과물이 된다면,

    영화 '타인의 삶'에서 보여주는 상황이 우리에게도 가능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07/16 19:16 address edit & del

      그러니까 미탄님, 홧팅!!! ^^

  6. Favicon of http://www.ilifelog.net BlogIcon Memory 2008/07/16 21:23 address edit & del reply

    전 가끔 좀 더 범위를 줄여서 지금이 바로 죽는 그 시간이라면 나는 뭐를 해야할까? 라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역시 뚜렷한 답은 잘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하지만 지금이 죽기 5분전이라면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겠습니다..이건 조금 간단하군요 ^^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07/18 21:40 address edit & del

      5분전...전 시계 들여다보며 4분, 3분, 2분...땡! 하고 카운트다운이나 하고있을 듯.^^;

  7. Favicon of http://dangunee.com BlogIcon 당그니 2008/07/19 00:15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속세에 미련이 많아, 아직 득도까지는 ㅜ.ㅜ / 당장 쓸 원고에 늘 허덕인다는 이 무신!!

    • Favicon of http://www.bookino.net BlogIcon sanna 2008/07/20 12:24 address edit & del

      속세에 미련없다,죽기밖에 더 하냐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 치고 정말 미련없는 사람 못봤습니다.^^ 당장 쓸 원고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