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해당되는 글 2건
- 2008/11/28 심술궂은 철학자의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10)
- 2006/06/24 몬스터-진짜 희망이란 무엇일까
재앙들은 그때부터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밤낮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쳤다. 그러나 상자에서 단 하나의 재앙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그때 판도라는 제우스의 뜻에 따라 뚜껑을 닫았고, 그래서 그 재앙은 상자 속에 남게 되었다. 인간은 영원히 행복의 상자를 집안에 두고 어떤 보물이 그 안에 들었는지 신기해 한다. 인간은 판도라가 가져온 상자가 재앙의 상자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재앙이 행복의 최대 보물인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인간이 다른 심한 재앙에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면서 계속 새로운 고통에 잠길 것을 바랐다. 그래서 그는 인간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희망은 실로 재앙 중에서도 최악의 재앙이다. 왜냐하면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중에서 -
(첫 문장 '희망'을 굵은 글씨로 쓴 것은 책의 표기대로이고, 아랫 부분 굵은 글씨는 여기에 옮겨 적으며 제가 임의대로 표시한 것입니다)
뭔가를 쓰다 다시 찾아본 글. 희망에 대해 이토록 비관적이고 시니컬한 정의는 본 적이 없어서 오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위의 인용문을 찾기 직전 쓰던 글은 희망과 정당한 체념 사이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가 적정하다고 할 수 있을지 (각자 자기 밖에 모르는 문제이긴 해도..) 난감해지는 군요.
그냥 여기 오시는 분들 생각을 듣고 싶어 화두를 던져봅니다. (요즘 폭탄 돌리기, 화두 던지기....주로 투포환 방식의 블로깅만 하는군요....-.-; )
이를테면 '하면 된다'같은 말. 사실 이 말은 해로울 때도 많습니다. '하면 되는' 사람은 실제로 10명 중 1명 있을까 말까 한 게 현실에 가깝지 않은가요? 때론 체념과 비관도 희망 못지 않게 중요한 (우리가 거기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태도 아닐까요?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희망이 재앙이라는 이 심술궂은 철학자의 시니컬한 해석에 동의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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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28 11:15
희망을 버리라는 것이 체념과 비관에 빠지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없게 보입니다. ㅎㅎ 말장난 같지만, 종교적, 내세적 희망을 적극적으로 버리고 현재의 순간을 버틴다? 싸운다? 라는 것이 니체의 메세지가 아닐까요?
영원의 돌굴리기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에게서 희망을 버린 자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발견하는 까뮈의 경우가 던지신 화두의 답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굴러떨어진 돌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희망 따위는 철저하게 버린 채로 또다시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에게서 인간적 승리의 미소를 발견하는 것이 니체에서 출발한 까뮈의 정신이 아닐까요.-
sanna 2008/11/28 21:57
남겨주신 글을 보니 어떤 책 제목이 떠오르는군요.
'사랑하라, 희망없이'.
니체도 후기 저작에선 ..님이 지적해주신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요.
피할 수 없는 숙명, 내던져진 우연한 상황들을 단순히 감당만 하는 게 아니고,
사랑하라는, 자기자신을 위한 필연적 상황으로 승화시키라는,참 실현하기 어려운 조언 말이죠.
그러고보면 앞날이 잘 될 거라는 기대인 '희망'보다 더 절실한 것은 용기 라는 생각이 듭니다.
희망은 쉽게 사라질 수 있지만 용기는 희망없는 상황에서도 긴 호흡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이니까요.
좋은 생각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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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2008/11/29 23:54
음... 전 희망이 재앙이라는 정의는 비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헛된 희망은 재앙이지요. '헛된'의 정의는 개별적으로 기대치와 현실감의 함수구요.
결국 이도 맞고 저도 맞는다는.. ^^;;;;;-
sanna 2008/11/30 23:07
희망이 재앙이니 하는 시니컬한 생각들을 단번에 쓸어버리는 동영상이 있더군요.
http://www.journalog.net/jmtruth/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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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ka58 2008/11/30 15:55
글세요, inuit님 말씀의 '헛된 희망' , 사실 '희망'이란 말 자체에는 이미 현실을 넘어선 기대치가
어느 정도는 있지않나 싶어요. 속담에'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란 말이 그걸 말해준다
라구 하면 오버인가요? 음~ 그렇다고 희망을 재앙이라 한다면 넘 우울해요, ㅠㅠ~
산나님을 글을 보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케 되었네요. 땡스!-
sanna 2008/11/30 23:10
lebeka58님께도 이 동영상을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던진 질문이 (동영상 속에 나오는) 이런 경우엔 헛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http://www.journalog.net/jmtruth/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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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tina 2008/12/01 13:30
현실성 없고 자기 위안적인 망상과 냉철하고 용기를 요하는 희망 사이, 겁에 질려 맹목적으로 저지르는 포기와 아프지만 생산적인 단념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들을 구별해 적절하게 인생에 배치할 수 있다면 기특하겠다 싶지만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이미 그런 경지에 달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긋지긋한 희망에 매달리는 상황도 만들지 않으리라 싶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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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 2008/12/03 00:03
내가 아는 ustina님이 맞겠지요?^^ 호호~
망상과 희망 사이, 겁에 질린 포기와 생산적 단념 사이를 갈짓자로 오락가락하다
어느새 한 생이 끝나버릴지도....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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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몬스터>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에일린의 마지막 내레이션 -
오랫동안 완치되지 않는 질병을 되풀이해 앓는 사람이 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병이 도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안타깝지만 마땅한 위로의 말이 생각나질 않아 “앞으론 괜찮아질 거야”를 반복하던 내게, 그는 “나도 그렇게 생각해”하면서 시니컬하게 덧붙였다. “더 나빠질 수가 없거든. 이제.”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지 않았느냐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그냥 삼키고 말았다. 그건 바닥까지 떨어져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하는 말일는지도 모른다. 기어 올라가다 몇 번씩 다시 떨어지면 그 바닥은 점점 더 아득해질 것이다. 시련 뒤에 기쁨은커녕 더 큰 시련을 거듭 만나는 경험을 한 사람들 앞에서 희망이니, 사랑이니 하는 말들은 별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에일린의 비웃음처럼 미사여구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몬스터’(DVD·마블엔터테인먼트)를 보는 것은 괴롭다. ‘이래도 희망이 있다는 둥 그딴 소릴 계속 할래?’라며 보는 이를 고문하는 영화 같다. 더군다나 이건 실화다. 미국에서 여섯 명의 남자를 연쇄 살인한 혐의로 2002년 사형당한 에일린 워노스의 삶을 영화로 옮겼다.
영화를 보기 전엔 제목 (monster·괴물)이 흉측한 여자 주인공에 대한 묘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영화에서 그건 에일린이 놀이공원의 회전차를 가리켜 한 말이었다. 어린 시절에 놀이공원의 울긋불긋한 회전차가 예뻐 보였는데 사람들은 그걸 ‘몬스터’라고 불렀다고, 무척 타고 싶었는데 막상 타고 보니 한 바퀴도 못 가 멀미가 나더라고…. 살아남으려고 몸을 팔았고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적응하지 못했으며, 사랑에 희망을 걸었지만 그 애인에게도 번번이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기만 한 에일린에게 인생은 ‘몬스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에일린을 동정하다가도, 그가 선량한 사람까지 살해하는 대목에 이르면 더 이상 그의 불행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몬스터’와 싸우다가 그 자신이 ‘몬스터’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에일린처럼 완벽한 절망에 갇혀 ‘내 입장이 되어 겪어보기 전엔 안다고 말하지 말라’고 절규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희망에 대해 중국 사상가 루쉰(魯迅)은 이런 말을 했다. ‘희망이란 본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말을 밝은 미래를 긍정하며 걸음을 내딛는 자의 결의로 종종 인용하지만, ‘소년의 눈물’을 쓴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는 루쉰의 이 말에서 어두움을 읽었다.
그의 다음과 같은 해석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고 절망하는 나의 친구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루쉰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할 때 그는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거의 없다’라고…. 인간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걸어가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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