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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위(왼쪽)와 리밍 주연의 '첨밀밀'. -동아일보 자료사진
-“사람에겐 이상이 있어야 해”(이교·장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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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여소군·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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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돈을 벌어 애인을 홍콩으로 데려오는 게 이상이잖아”(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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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도 이상인가?”(여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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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단지 작을 뿐이지”(이교)
- 영화 <첨밀밀>에서 -

언제 봐도 똑같은 영화가 있는 반면 볼 때마다 달라지는 영화가 있다. 후자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보는 이와 교감할 게 풍부하다는 증거일 테니까. 내겐 ‘첨밀밀’(DVD·리스비젼 엔터테인먼트)이 그런 영화다.

처음엔 애잔한 사랑 이야기로 보였다. 10년을 두고 이어졌다가 끊겼다가 결국 맺어지는 두 사람. 저런 걸 두고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하는가보다 싶었다.

두 번째 볼 땐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첨밀밀’의 끝 장면은 모든 엇박자를 뚫고 결국 맺어진 두 사람의 인연이, 사실은 처음 홍콩에 도착할 때부터 자신들도 모르게 시작된 거라고 보여준다. 그러니까 인연은 따로 있다는 건가?

시나리오 작가 심산씨는 이를 두고 “잔인한 영화”라고 쓴 적이 있다. “삶의 어느 길목에서 그런 인연을 놓쳐버렸거나 아예 코빼기도 구경 못한 대다수의 사람은 도대체 무얼 바라고 살아가란 말이냐”면서. …맞는 말씀이다.

두 사람은 각각 아내와 헤어지거나 정부가 죽고 난 뒤 뉴욕에서 만나 둘만의 온전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때가 오기 전까진, 서로를 다시 만날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연이 시작될 땐 몰라보거나 착각한다. 영화 ‘동감’에서 나온 말마따나 “인연이란 말은 시작할 때가 아니라 끝날 때 하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봤을 땐 두 사람의 ‘이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교의 이상은 돈벌어 집을 사고 중국 본토의 엄마를 모셔오는 것. 여소군의 꿈도 돈을 벌어 본토의 애인을 데려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친구로 만나 충동적으로 같이 자고, 다시 친구였다가, 헤어졌다가를 반복하는 세월 동안 둘은 꿈을 이뤘다. 마침내 “꿈꾸던 사람”이 되었지만 둘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여소군에겐 고모가 있다. 영화 촬영차 홍콩에 들렀을 때 만난 미국 배우 윌리엄 홀든에게 푹 빠져 죽을 때까지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은 고모를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손가락질한다. 죽는 순간까지 꿈만 꾸었으니, 고모의 일생은 행복한 것이었을까.

두 주인공과 여소군의 고모를 보며 나는 헷갈렸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 꿈을 이뤘으되 그것이 진정으로 바라던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 무엇이 더 불행할까.

…그래도 어쩌랴. 어떤 시인은 ‘나이를 먹어 늙는 게 아니라 이상을 잃어서 늙어간다’고 했다. ‘첨밀밀’의 빛나는 순간들은 두 사람이 꿈을 이루고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보다,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고 사랑한다는 자각 없이 헐벗은 서로의 곁을 지켜주었던 시절에 있었다. 행복은 꿈의 실현보다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드높은’ 이상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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