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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냉소주의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포장하는 방식이다. 냉소주의자는 자신이 쉽사리 속지 않고 멍청하지 않다는 점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내가 곧잘 접하는 냉소주의는 오히려 둘 다에 해당할 때가 많다. 염세적 경험을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이 종종 순진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은 냉소주의자들이 실질보다 스타일을, 분석보다 태도를 앞세운다는 것을 말해준다.

(...)

단순화가 무언가를 그 본질로만 압축하는 일이라면, 지나친 단순화는 그 본질까지 내던지는 일이다. 지나친 단순화는 여간해서는 확실성과 명료성을 허락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쉼없이 그것들을 추구하는 일이고, 섬세한 뉘앙스와 복잡성을 명쾌한 이분법 속에 욱여넣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순진한 냉소주의가 걱정스러운 것은 그것이 과거와 미래를 납작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공공의 삶과 공공의 담론에 참여할 동기는 물론이거니와 지적인 대화에 참여할 동기마저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이때 지적인 대화란 여러 단계의 중간 상태들, 모호함과 양면성, 불확실성, 미지의 것, 기회 등을 인식할 줄 아는 대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신 보통 전쟁같은 대화를 나누고, 암울한 확신이라는 중화기는 전쟁 같은 대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무기다.

(...)

순진한 냉소주의자는 가능성을 격추시킨다. 상황의 복잡성을 온전히 탐구해볼 가능성까지 말이다. 냉소주의자가 겨냥하는 것은 자신보다 덜 냉소적인 사람이므로, 냉소주의는 방어 태세이자 이견을 회피하는 전략이 된다. 냉소주의자들은 잔인함으로 신병을 모집한다. 만약 당신이 순수함과 완벽함을 목표로 설정한다면, 거의 필연적으로 모든 것이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체계를 갖게 될 것이다. 완벽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짓이다. 불가능한 기준을 적용하는 바람에 엄연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더 순진한 짓이다. 냉소주의자는 실망한 이상주의자나 비현실적 기준이 소유자일 때가 많다. 그들은 승리를 불편하게 여긴다. 승리는 거의 늘 임시적이고, 불완전하고, 타협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희망의 개방성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점이나, 전쟁에서는 자기방어가 최우선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순진한 냉소주의는 절대주의다. 그 실행자들은 우리가 무언가를 개탄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것이라 다름없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무언가가 덜 완벽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도덕적으로 타협해버린 것이라고 비난하는 일은 어떤 장소나 체제나 공동체에의 참여가 아니라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과시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일이다. 

(...) 

순진한 냉소주의는 세상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 세상을 방어하는 대신 자신을 방어한다. 나는 그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고, 그들이 들려주는 말에 관심이 있다. 그 말은 날마다 달라지고 주제마다 달라진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는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복잡성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

우리가 희망을 품으려면, 불확실성을 끌어안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결과가 측정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결과가 여태 펼쳐지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로는 결과가 간접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희망이란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그런 연결들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최악의 사건뿐 아니라 최선이 행동에서 나온 영구적 영향으로 짜여진 현수막이라고 여기자. 세상의 모든 것은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 있기에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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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Sunset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주일... 이상하게 떠올라서 돌아왔어요 주도 이상한 면이 있는지 저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찾아 그 사람들의 책을 읽곤 해요. 요즘도 그런 책을 찾지만 쉽지 않네요.. 쓰셨던 산티아고 책이 문득 떠올라 들어왔는데, 비교적 최근 글이 올라와있어 반갑네요. 솔닛은 저도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너무 똑같은 하루입니다. 2019.01.04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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